[근현대 한의학을 빛낸 인물11] 古松 許燕 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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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 한의학을 빛낸 인물11] 古松 許燕 선생
  • 승인 2003.04.18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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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간측정법에 의한 체질판별법 창안

사진설명-한의사들의 모임에 참석한 허연 선생(앞줄 왼쪽에서 두번째).

한의학은 오랜 동안의 임상경험이 축적된 결과물이다. 개별적인 경험들이 상위의 체계적인 학문의 틀 안에서 통합되고, 이 원리가 다시 다양한 임상치료법으로 응용되면서 학문적 기틀이 단단해지기를 반복해 왔다. 이 과정에서 역사를 이끌어 가는데 괄목할만한 업적으로 현재까지 인용되는 소수 위인들의 눈부신 활약상도 있었지만, 다수 無名醫들의 존재도 부인할 수 없다.

이들 임상이 소수 위인의 학설만으로 메울 수 없는 임상의 타당성을 증명했고, 반대로 새로이 형성될 학문의 모티브를 제공하기도 했다.

이렇게 역할을 구분해 보자면, 故 古松 허연 선생(1921~ 1995)의 행로는 무명의에 가깝다. 학자로서 평가되기에 그는 생전에 자신의 작품(書)도 남기지 않았을 뿐더러, 교수직 등 다른 직책의 청에도 스스로 학문의 부족함을 이유로 사양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가 발견해 임상에서 활용했던 체간측정법이 현재 그의 아들 허만회(53·서울 제원한의원)씨 대에 이르러 복원됐고, 최근에는 허만회 씨를 중심으로 이를 공부하려는‘체형사상학회(회장 고학준)’가 발족됐다. 고 허연 선생 본인은 임상의로 진료에만 전념했지만, 그 속에서 새로운 학문의 출발점이 됐던 것이다.

◎ 새로운 체질판별법

허만회 씨에 의해 복원된 체간측정법은 동의수세보원의 장부론을 근거로 체간에서 다섯개의 직선거리를 측정해 체질을 판별하는 방법이다.

허만회 씨가 이 거리를 수치화해서, 도식화하려는 작업을 진행중이다. 학회원들은 체간측정법을 통해 체질감별의 객관성과 재현성을 확보하여 임상효율을 높일 수 있다는 기대를 갖고 있다.

1921년 충남 당진에서 출생한 허연 선생은 해방 직전 상경해 일을 하던 중, 동상으로 엄지발가락이 썩어 들어가자 이것을 스스로 치료해 보려는 생각으로 한의학을 독학하게 됐다.

결국 발가락을 절단하게 됐지만 한의학이라는 새로운 학문에 눈뜨게 됐다.

한의사 양성을 위한 체계적 교육제도가 미비한 시절, 국가가 한의학 종사자를 대상으로 자격을 주기 위해 마련한 검정고시에 응시해 1956년에 한의사 면허를 취득하고 서울 왕십리에 제원한의원을 열게 됐다.

허연 선생은 1995년 74세의 나이를 마감하기까지 진료를 계속했는데, 특히 외부 활동 중에서는 화요한의학연구회(현 대한청구한의학회)에 열정을 쏟았다. 이 모임은 1969년 한의사 10여명이 학술 및 친목도모를 위해 ‘재경충남한의사회’라는 이름으로 출발해 이듬해 화요한의학연구회로 변경한 것이다. 이 명칭은 이들이 매주 화요일 진료가 끝난 저녁에 모여 공부해서 붙여진 이름이며, 배원식 대한한의사협회 명예회장·박인상 전 대전대 교수·전병순·이병행·홍순용·한희석·권영식 선생 등 한의계의 권위자·원로라 일컬어지는 인사들이 이 곳에서 교류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여기서 허연 선생은 창립멤버로 2대 회장을 역임했다.

◎ 체간측정법에 몰두

여기서 그는 사상의학 연구에 몰두했는데, 당시 임상에서 체질을 판별하는 방법으로 골도법, 척도법, 두부측정법 등 나름대로의 다양한 방법이 활용됐다. 70년대, 허연 선생이 체간을 측정할 때는 지금처럼 자로 재거나 통계 처리한 것은 없고, 환자의 체간을 가슴에서 부터 골반까지 자세히 관찰해 그 흐름을 살피는 것이었다.

이 때 권영식 선생이 사상방약합편을 인용해, 유두와 배꼽을 기준으로 그 기준선의 상하 1치를 살펴 체질을 판별하는 방법에서, 폐·신장 등의 해부학적인 위치를 보태 그 기준선을 확대한 것이다.

그리하여 몸 전체의 음양의 흐름을 살펴서 ▲골반이 크게 발달하여 복부의 선이 들어가 있는 체간은 소음인 ▲상체가 발달되어 있고 그러한 선이 골반까지 매끈하게 빠진 체간은 소양인 ▲상체가 위축되고 복부의 선이 최대로 발달되어 있으면 태음인 ▲상체가 사자가슴처럼 발달되어 있고 하체 골반에서 심하게 위축돼 상체 가슴의 발달이 우람하게 되어있 는 체질은 태양인 등으로 체질을 판별한 것이다.

이러한 방법을 활용한 결과 동의수세보원대로 성질 재간과도 일치했다. 아들 허만회 씨는 허연선생의 임상을 1988년 경희대 대학원 석사과정에서 논문화했고, 1988년 석사중간발표 논문 ‘사상인의 형태학적 도식화에 관한 연구’로 내놓았다. 이 논문은 사상체질학회 학회지 창간호에 실렸다. 이후 5개의 측정선을 만들고 체질판별 통계를 구축한 석사학위논문으로 발표했고, 2001년 경희대 대학원에서 ‘체근측정법에 의한 체질분류에 따른 두면부 형태에 관한 연구’라는 제목으로 박사논문으로 인정받게 됐다.

동의수세보원의 장부론을 적용하여, 체간측정법이라는 명칭과 지금처럼 5개의 기준선을 설정한 것은 허만회씨가 체계화한 것이다.

허만회 씨는 “아버지는 홍가정진비전과 동의사상신편을 손에서 놓지 않으셨다”고 회고하면서 “체질을 신중히 판별한 후, 사상첩약에는 가감을 않고 원전대로 처방할 것을 강조하셨다”고 말했다. 허연 선생은 사상의학에 믿음이 있었고, 이를 실제 적용하기 위한 방편으로 체간측정법을 사용했을 때 적중률이 높아 사상의학의 치료효과를 체험했기 때문에 원전처방에 대한 확신도 가졌던 것 같다고 설명했다.

◎ 화요한의학연구회의 조력자

화요한의학연구회 5대 회장을 역임한 박인상 전 대전대교수(현 서울양재동일한의원)는 “회비수납 등 학회운영이 체계적이지 않던 시절, 허연 선생은 물심양면으로 학회의 기반을 조성했다”고 회상했다.

학회장에서 물러난 뒤에도 기꺼이 자신의 한의원을 학회모임터로 열어 놓고, 직접 강사를 찾아다니며 강의를 청탁하고 사비를 털어넣는 것이 다반사였다는 것이다.

오진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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