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학은 나의 삶14] 한대희(한대희한의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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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학은 나의 삶14] 한대희(한대희한의원장)
  • 승인 2003.04.18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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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준 선생 고증작업에 열정 바쳐
한의협 40년史 편찬, 無에서 有를 창조하듯

사진설명-허준묘역성역화사업 준공식에서 추모제를 올리고 있는 허준기념사업회 관계자들과 한의계 인사(1995년)

지난달 과학기술부와 한국과학문화재단은 사회적으로 귀감이 될 만한 과학기술인의 업적과 발자취를 항구적으로 보전·전시할 ‘과학기술인 명예의 전당’헌정 대상에 허준 선생을 선정했다.

허준 선생의 선정은 한의계 전체의 기쁨이지만 한대희(62·서울 한대희한의원)원장에게는 더욱 각별한 감회가 있다.

하지만 한 원장은 이런 감회에 젖어있을 틈도 없이 허준의 출생년도가 잘못 기재된 각 언론사에 정정 요구를 하고 보완자료를 보내느라 분주할 뿐이다.

최근에는 브리테니커 백과사전에 나온 허준 출생년도가 잘못 알려진 그대로 기재된 것에 대해 정정을 요청하고 있다.

그는 “현재 의성허준기념사업회 이사직과 구암학회장직을 사임한 상황이지만 허준에 대한 잘못된 부분은 눈에 띄는 대로 고쳐 보자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한 원장이 허준기념사업회 일에 발을 담그게 된 것은 ‘大韓韓醫師協會40年史’ 편찬으로 진료 이외에 한의계를 위한 일에 뛰어 들었을 때부터 시작된다.

1960년에 동양의약대학(현 경희대)에 입학한 한대희 원장은 입학 후 4년 동안 문교부에서 주는 대여장학금을 받으며 공부했다.

한 원장은 “대한민국에서 단 하나밖에 없는 한의대에서 단 한사람만 장학금을 받았으니 국가, 사회, 한의학계와 같이 다니는 동료들에게 늘 미안한 마음이 있었다”며 “그래서 그때부터 쭉 한의계를 위해 무언가 해야겠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있었다”고 밝혔다.

그 사명감은 한의학회 이사로 재직 중이던 1984년 서울시대의원총회에서 서울시한의사회사 발간을 제안하게 됐고, 성원미달로 부결됐으나 다음해인 85년 다시 제안해 채택됐다.

그러나 이 제안은 다시 전국적인 성격을 띤다해 86년 한의사협회로 이관, 정기대의원총회에서 한 원장 등 83명 대의원의 공동 발의로 통과돼 88년 그는 편찬위원회 위원장에 선임됐다.

한대희 원장은 “대의원으로 있다보니 의사, 치과의사, 약사 등은 협회사가 있는데 한의사만 없는 것이 늘 안타까웠다”며 “내가 기여해야 할 일은 바로 이것”이라고 확신했다.

협회사 작업은 현재 한의신문의 건물 지하실에서 진행됐는데 지하실 청소부터 시작해 곰팡이가 핀 30년 된 서류들을 정리해 가면서 초안을 잡았다.

역대 회장들의 인터뷰도 빠질 수 없었다. 일일이 돌아다니며 취재까지 맡게 된 한 원장은 처음 작업을 시작할 때는 오전에만 편찬 일에 매달리던 것을 일에 푹 빠지게 되면서부터 하루종일 매달려 한의원에 찾아오는 환자를 부인이 돌려보내기 일쑤였다고 한다.

이렇게 해서 20개월만에 기획·원고작성, 편집까지 해가며 무사히 책을 발간했다.

그 때 그의 나이 48세로 편찬 일을 맡았던 그에게 나이도 어린 것이 뭘 아느냐고 욕한 사람도 부지기수였지만 대학시절부터 품었던 사명감이 그를 협회사 완성으로 이끌었다.

한 대희 원장은 협회사를 제작하며 “잘못됐던 일을 들춰내는 것이 가장 곤란했다”며 “그래도 ‘무’에서 ‘유’를 만들어 냈다는 점에서 뿌듯했다”고 회고한다.

하지만 지난해 50주년을 맞이했던 한의협이 50년사 편찬을 하지 못한 것에 대해 짙은 아쉬움을 토로했다.

자신이 편찬했던 40년사에서 가장 중요한 한의협 정관 변천사가 빠졌고 또 지금 보면 오·탈자 등 부족한 점이 많아 학회나 협회 일을 자신보다 더 많이 아는 사람이 보완해 제작해 주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다.

협회사 편찬으로 지쳐 있던 한대희 원장에게 어느 날 문종화 경희대 한의과대 동문회장에게서 허준 선생의 업적을 조명해 보자는 연락이 왔고, 처음엔 수 차례 거절했지만 그의 사명감은 또 한번 총동문회 학술이사로 재직 중이던 그의 마음을 움직였다.

허준 선생의 조명은 사망 장소를 찾아내고 고증하는 일로 시작됐다.
한대희 원장은 일단 허준의 유적지가 서울 강서구 가양동 일대라는 것을 서울시사편찬위원회의 자료에서 발견하고 이를 고증해 경희대 한의대 동문회 이름으로 대통령, 서울시장, 총리, 문화부장관 등에게 강서구 가양동 일대가 허준 선생의 문화 유적지이므로 ‘허준 공원으로 지정하도록 탄원하는 글’을 내용증명으로 제출하고 9월이 동의보감 편집을 완료한 달인만큼 9월을 ‘허준의 달’로 정해달라고 문화부에 요청했다.

한달 만에 문화부로부터 9월을 ‘허준에 대한 문화의 달’ 결정 통보를 받았으며, 서울특별시로부터도 강서구 가양동에 ‘구암공원’을 조성하기로 결정했다는 통보를 받았다.

이때도 물론 한 원장에게 진료는 뒷전이었다.

또한 일요일이면 문종화 회장과 함께 양천 허씨 족보를 근거로 허준 묘소가 있다는 경기도 파주의 민간인 출입금지 지역을 수 차례 방문, 결국 91년 9월 30일 허준의 달 마지막날에 ‘陽平君 聖功臣’의 비석을 발견하기도 했다. 국방부를 끈질기게 설득한 결과였다.

그 날 저녁 이 사실이 KBS방송에 보도되고 바로 문화부에 보고, 문화재 관리국에 묘소확인과 문화재 지정을 요청한 끝에 92년 6월 5일 경기도로부터 기념물 제128호로 허준 선생의 묘 1基가 지정됐다.
한대희 원장은 “경희대 한의대 동창회 차원에서 시작된 허준 선생 조명 작업이 일이 점점 커지면서 사단법인 의성허준기념사업회를 출범하기에 이르렀다”며 “한의사 한사람으로서 허준기념사업회 일을 했다는 것에 자부심을 갖는다”고 말했다.

한 원장은 허준기념사업회 중에서도 학술분과위원회인 구암학회에서 회장을 맡아 학회지 발간 등 학술적 업무에 매진했다.

그는 허준의 생애에 대해 쉴새없이 자료를 검증해 나갔다. 허준에 대한 한가지 사실이 나올 때마다 관련 자료를 찾아서 검증하는 일이 그의 생활에 일부가 되어 버린 것은 그 때나 96년 중풍을 맞은 이후로 왼쪽 손이 불편한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이런 정열로 중풍의 몸이던 한 대희 원장은 7~8년간 모은 자료를 바탕으로 허준의 출생년도를 새로 밝히는 등 허준의 생애를 조사·연구해 ‘실록 허준은 살아있다’(2000년)을 펴냈다.

허준의 출생년은 그동안 1546년으로 알려지고 있었으나 한 원장은 ‘태평회맹도’ 병풍에 허준이 기해생으로 기록돼 있는 것으로 보아 허준의 출생년은 1539년으로 정정돼야 하며 또한 조선 선조 때 학자인 최립이 저술한 간이문집 8권 휴가록의 내용을 보면 필자인 최립(1539~1612)과 허준이 동갑이란 문구가 나오는데 이를 보아서도 허준의 출생년은 1539년이라는 것이다.

한 원장은 “책을 만들다 보니 자료를 갖다주거나 정보를 제공해 준 사람이 많이 생겼는데 이런 일의 가치를 오히려 비한의사들이 더 알아주고 협조를 잘 해준다”며 아쉬운 감정을 드러냈다.

또한 그는 “한의사 수는 늘어가고 있지만 공적인 일에 기여하려는 마인드는 예나 지금이나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한의대 지원 당시 동양의약대가 유일한 한의대라 희소가치가 있어서 지원했다는 한대희 원장은 1남2녀 자녀 중 한규철(32·규림한의원)씨에게 한의사의 길을 물려줘 무엇보다 뿌듯하다고 했다.

한규철 씨는 “아버지가 허준기념사업회 일에 열정을 쏟으셨을 때가 예과 1학년 시절이라 그때는 일의 가치를 잘 몰랐는데 한의사가 되고 보니 아버지가 허준 선생을 재조명했다는 것에 대해 자랑스럽고 존경하는 마음이 생긴다”고 말했다.

그리고 허준 선생 관련 일에서 보듯 매사에 무엇이든지 열심히 하시는 성격이라며 자신도 ‘인술을 펼치는 아버지의 모습’에서 한의대 지원을 희망하게 됐다고.

한대희 원장은 마지막으로 “한의사협회나 한의대나 40년사를 편찬했던 10여년 전에 비해 거의 달라진 게 없다”며 “한의사가 만명이 넘는 시대가 됐으면 그만큼 질적으로 무언가 달라지는 게 있어야 할 것”이라고 지적하고 허준기념사업회, 40년사 편찬 등은 혼자서는 못했을 일이라며 공적인 일의 가치에 대해 한의사들의 바른 이해와 참여가 있기를 기대했다.

양두영 기자

● 약??력 ●
△1964년 동양의약대학 한의학과 졸업 △1991년 대전대 대학원(한의학 석사) △1996년 경산대 대학원(한의학 박사) △대한한의학회 이사, 대한한의사협회 40년사 편찬위원장, 의성허준기념사업회 사무처장 및 상임이사, 구암학회장 등 역임 △저서: ‘건강과 한의학’, ‘한국한의학술총람’, ‘대한한의사협회 40년사’, ‘실록 허준은 살아있다’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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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화 2021-07-05 18:48:28
훌륭하신 업적을 남기셨는데 몸이 불편하시니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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