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현대 한의학을 빛낸 인물6] 일묵 채인식 선생(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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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 한의학을 빛낸 인물6] 일묵 채인식 선생(上)
  • 승인 2003.04.18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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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儒醫·전통의학자”

근현대 한의학사를 유심히 살펴보면 그래도 학자가 있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대학의 강단에서, 개원가에서 최선을 다하는 전통한의사가 적지 않게 있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그들이 성장하고 활동하던 시대가 한의학 말살정책을 폈던 일제에서 해방후 혼란한 격동기라는 점에서 사회적 위치가 결여되었다는 점에 비추어 보면 개인의 노력과 삶의 철학, 그리고 그가 처한 가정적 사회적 배경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 이 점에서 一默 蔡仁植 선생은 儒醫로서 선비적 삶을 살아간 한의계의 거목으로서 오늘날 우리가 한번쯤 되돌아봐야 할 인물이 아닌가 한다.

그의 호는 일묵 혹은 구암이라고 불린다. 호는 원래 일묵인데 어느날 꿈에 어떤 사람이 구암 두 자를 호라고 지어주었다 해서 구암학인이라고 지었다. 硏眞은 그의 서재명이다. 진리를 연마한다는 뜻이 담겨 있다.


한학의 명문집안 출신

일묵 선생은 1908년(융희 2년) 경상북도 상주군 이안면 안룡리에서 태어났다. 이 곳 상주는 그의 18대 조상인 蔡壽선생 당시부터 터전으로 삼아온 곳이다. 蔡壽선생은 조선 성종조에 예조참판과 대사헌을 역임했으나 연산군 때 상주로 낙향해 살던 중 중종반정의 공으로 인천군에 봉해지고 예문관대제학에 추증되었다. TV사극 여인천하에서 비중있게 그려지는 김안로가 그의 사위라고 말하면 보다 가깝게 느껴질 것이다.

조부 道鉉은 당신의 아들이자 일묵선생의 부친에게 항상 질책하기를 “道는 天에서 나오고 天은 변하지 않고 道 또한 변하지 않으니 洋倭의 妖敎에 물들지 말고 仁·孝· 忠·信으로 세상사에 꺽이지 말라”고 당부하셨을 만큼 정통유학의 맥을 잇고 있었다.

이런 전통한학자 집안에서 자란 일묵 선생은 어려서부터 조부로부터 한학을 배웠다. 자라면서 양정서숙과 함명강습소에서 한학을 배우다가 惺菴 박유형 문하에서 心性理氣學 등 동양철학을 수학했다. 선생이 한의학에 뜻을 둔 것은 24세에 이르러서다. 이때부터 한의학을 독학하여 1956년에 한의사면허를 취득했다.

만년에 박호풍 학장이 와중하였을 때 상한론의 고수였던 박 학장 스스로 “나 자신 질병을 진단하고 치료하는 데 신통술이 있다고 자부하지만 유의가 가장 낫다는 생각을 뒤늦게 하게 됐다”고 말해 은연중 일묵 선생을 흠모했다.


易과 河洛의 이치 궁구

선생은 의학입문의 저자 이천 선생이 ‘易을 배운 이후 醫를 말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한 말을 거울삼아 易과 河圖洛書의 이치를 궁구하고 三墳四家書 외 수천권을 탐독하고 상한론을 더욱 갈고 닦아 최고의 경지에 이르렀다.

이렇게 갈고 닦은 결과 선생은 금궤요략 정해, 태백미내과학, 의학입문, 시씨방제학, 의방집해 등을 번역하고, 순환기내과학, 상한론 역전, 한방임상학, 한방의학용어사전 등은 저술했다. 이중에서도 한의학의 이론을 이해하는 데 가장 중요한 상한론 역전은 선생의 대표적 저서로 알려져 있다. 그는 1971년에 발간된 상한론 역전 서문에서 “상한론 연구는 20년전부터 착수했다”고 밝혀 상한론 역전 저술에 얼마나 많은 공을 들였는지 짐작케 했다. 실제 상한론은 원문이 워낙 간결·심오하고 역대의 註說이 워낙 분분하여 역전을 시작한 지 4년만에 완성할 수 있었다.

선생은 경희대 한의대를 정년퇴임한 뒤 제기동 천혜당한의원을 개설하였다. 그때 이곳을 찾아 공부하였던 유기덕(서울 유한의원) 원장은 상한론 역전을 “누구보다 체계있게 집대성했으며 정확한 해석을 내리고 있다”면서 “외감성 질환에 국한해서 상한론을 해석하거나 적용하는 데 머물지 않고 내상성 질환이나 잡병에도 적용할 수 있는 이론과 임상체계를 갖춘 책”이라고 평가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그래서 부제를 ‘附 임상응용’이라고 처리한 듯하다.


학문의 체계의식 가진 분

임상가로서의 선생의 면모를 드러낸 책은 역시 ‘漢方臨床學(1987년)’이다. 평소 임상을 하면서 적어놓았던 것과 古今醫學會 강의를 하면서 써놓았던 원고를 간추려 놓은 책이다. 이 책의 감수를 맡아던 강병수(동국대 본초학교실) 교수는 한방임상학을 “의방유취, 동의보감, 의종손익, 의문보감, 사상의학, 사암침법으로 이어지는 한국 전통의학의 맥을 이은 大著“라고 평가했다.

특히 선생은 한의학의 기초이론은 태허-태극-음양오행-삼음삼양으로 전개하여 자기의 독특한 이론체계를 주장하였다.

각 질환의 발전사적 이해와 한방적 생리와 병리학적 요령도 상세하게 정리되어 있다. 병증에 대한 辨證施治의 개요와 증상의 허실과 개인의 체질을 중시하여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서술방식은 동양의학을 연구하는 학자는 물론 한의임상가들에게도 좋은 길잡이가 되었다. 이렇듯 일묵의 한의학은 자기 학문의 체계의식을 갖고 있었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다.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선생의 공적은 안병국 선생과 함께 번역한 ‘국역 편주의학입문’이다. 세인들은 이 책을 일러 ‘더이상 완벽하게 번역할 수 없는 번역의 금자탑’이라고 부르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일묵 선생도 토로한 바 있듯이 번역이란 그 나라 그 시대에 관용되던 문법 어휘, 방언, 풍속, 정치의 영향, 그 학문의 주도적 사상, 생활양식 등등이 다각도로 포괄된 내용을 면밀하게 파악해야 하는 속성상 창작보다 어려운 일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더 이상 번역을 손댈 필요가 없게 만들었으니 그의 한학에 대한 이해의 수준이 얼마나 높은 지 새삼 느낄 수 있다.

김승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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