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현대 한의학을 빛낸 인물5] 安秉國 선생(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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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 한의학을 빛낸 인물5] 安秉國 선생(上)
  • 승인 2003.04.18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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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字典’ 한문해독 정확

“난해한 의학입문 해박한 지식으로 번역” 평가

원전학계에서 故 안병국 선생(1919∼1996)은 독보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다. 한의학의 불모지에서 해박한 한문실력을 바탕으로 원전학의 기초를 다진 공로가 인정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의 업적에도 불구하고 세인들의 뇌리에서 서서히 잊혀져 가고 있다. 그분의 삶이 조명되지 않고 있다는 느낌도 든다.

설사 알고 있다 하더라도 많은 한의계 사람들이 그에 대해 단편적으로 알고 있었고, 일부는 그의 특이한 성격과 연관지어 폄하하는 경향마저 보여 안타까움을 더해 주었다.

저서가 적다(?)

선생의 역작은 뭐니뭐니해도 ‘國譯編註 醫學入門’(전 7권)이라 할 수 있다. 청강 김영훈 선생이 “기초는 입문이요 임상은 보감이다”고 했을 정도로 의학입문을 소중히 여긴 바로 그 책이다. 10년에 걸친 역작이다. 그렇지만 안 선생은 의학입문 번역서 이외에는 별다른 저서를 남기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원광대 박경 교수(대한한의학원전학회장)에 따르면 “남들이 다 연구한 것을 내가 뭘 남길 게 있다고 책을 쓰느냐”고 반문하셨다고 한다. 다만 그가 남긴 글은 채인식 선생과 공동으로 번역한 의학입문 본초분야 번역과 박경 교수가 낸 ‘빈호맥학’ 번역서의 서문을 딱 한번 써준 것 말고는 없다 한다.

의서에서 사서삼경까지 통하지 않는 것이 없는 대학자 치고 유작은 다소 적다는 생각도 든다. 후학자는 대개 저서를 바탕으로 평가하기 마련인데 그의 빈약한 저서가 업적에 걸맞은 역사적 평가를 인색하게 만드는 배경이 되는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반드시 선생의 저서가 없다고 말할 수 없다는 견해도 있다. 안상우 한국한의학연구원 선임연구원은 “그분의 저서는 뚜렷이 없지만 책에 빼곡하게 주석을 달아 놓아 그 자체가 저서일 정도”라고 말해 저서 유무에 대한 새로운 견해를 제시했다.

이 점에 대해서 선생의 아들인 안정훈(66·서울 송학대약국)씨는 “그 당시 한의학의 체계가 부족해서 각과 모두 지도하다 보니 당장 내일 가르칠 강의자료 챙기기도 바빴다”고 전한다. 한 마디로 선생은 후학을 양성하는 일이 급하지 저작은 후학의 몫이라고 생각한 듯 하다.

안병국 선생의 원고 중 일부는 발간직전에 작고해 빛을 보지 못한 부분도 있어 이 점이 고려돼야 할 것 같다. 안정훈씨는 자신의 집 지하에 보관중인 방대한 서적 가운데 선생의 친필 원고를 보여준다. 끈으로 묶어 인쇄되기 직전의 상태로 있는 이 원고뭉치는 평소 강의를 준비하면서 정리한 자료라고 한다.

이렇듯 제자와 가족들조차 저서가 없음을 인정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으나 경희대에서 발간한 東洋醫學大辭典 권6에는 ‘1970년 《내과총론》, 1974년 《한의학총론》을 지었고, 《의학입문》을 번역하였다’고 기록되어 있어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이 기록이 사실이라면 그의 저서가 없다는 일반의 인식은 수정되어야 마땅할 것이다.

한자를 많이 안 정도라고?

혹자는 말한다. 그가 한의학이 학문적으로 정리되기 이전에 한자를 많이 아는 정도 말고는 그리 대단한 사람이 아니라고. 그러나 과연 그럴까? 그의 수제자라고 일컬어지는 홍원식 교수(경희대)는 말한다.

“사람들은 책을 많이 읽었다는 사실이 얼마나 중요한지 잘 모르는 것 같아요. 단순히 ‘한자를 많이 아는 사람’ 정도라고 비하시키는 사람은 본초의 약성 하나하나 모르면 의학입문을 번역할 수 없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입니다. 지금 의학입문에 나와 있는 까다로운 의학한자를 정확하게 우리말로 읽을 수 있는 것은 안병국 선생 덕분이지요.”

놀라운 것은 ‘어느 책, 어느 판본은 읽지 말라’, ‘어느 책이 오자가 많더라’ 라고 말할 정도라는 것이다.

그는 한자만 많이 아는 것이 아니었다. 홍 교수는 내경이면 내경, 상한론이면 상한론 모르는 게 없어서 그 시대의 가장 해박한 한의학자였다고 평가한다. 그는 일제시대 의생강습소에서 한방과 함께 양방도 같이 공부했는데 기억력이 워낙 출중하여 그때 배운 내용을 수십 년의 세월이 흐른 뒤에도 완벽할 정도로 다 기억했다고 한다. 그런 폭넓은 그의 학식을 두고 홍 교수는 “어느 학파의, 누구를 계승했다고 말할 수 없을 정도”라고 표현했다.

안병국 선생에게서 강의를 받은 바 있는 안상우 한국한의학연구원 선임연구원은 그분에 대한 기억이 새롭다고 한다. “2주정도의 강의를 들은 데 불과하지만 중국 청대 서적을 예로 들어 원전과 하나하나 비교하면서 ‘남의 책은 절대 베끼지 말라’고 강조하신 말씀을 지금도 의사학을 하면서 철칙으로 삼고 있다”고 회고하였다.

유아적 성정 타고나

총 7권에 달하는 ‘國譯編註 醫學入門’은 처음에는 韓方醫友會에서 시작했다. 적지 않은 사람이 시작은 했지만 나중에 남은 사람은 채인식 선생과 안병국 선생 두분 뿐이었다. 채인식 선생은 첫권인 상한론을 번역하시고 나머지는 안병국 선생이 다 번역하다시피 했다. 그런데 의학입문은 문학적 표현이 많아서 字句解 등을 꼼꼼하게 번역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따라서 자구의 해석, 자구의 典據 등을 중시한 국역편주 의학입문에는 선생의 성격, 실력이 농축되기 마련이다. 어떤 점에서 보면 세밀하다 못해 지엽적이라는 평이 어울릴 정도였다. <계속>

김승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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