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학은 나의 삶7] 전탕방식의 신기원 마련 권영민 (주)메디캡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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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학은 나의 삶7] 전탕방식의 신기원 마련 권영민 (주)메디캡 대표
  • 승인 2003.04.18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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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른 투약은 치료의학 가는 외길"

한.약 분쟁 과정 느꼈던 고뇌가 약탕기 개발로...

조금 과한 표현으로 권영민 원장(39·메디캡 대표·대구 영지한의원)은 약탕기에 미쳐있다.

한약의 전탕 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이는 것만이 치료의학으로서의 한의학 위상을 되찾을 수 있고, 한의학의 저변을 확대시킬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하기 때문이다.

권 원장은 오늘도 신농씨 흉내를 내어가며 전통적 방식으로 달인 약과 새로 개발한 약탕기로 탕전한 약의 맛을 비교해 본다. 그리고 어떻게든 개선점을 찾아내려 노력한다. 현재 개발돼 있는 약탕기는 완전한 것이 아니고 아직 개선해야 할 점이 수두룩하다고 생각하고 있어서다. 따라서 권 원장은 오늘도 동료 선·후배 한의사의 조언을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바램과는 달리 자신이 개발한 약탕기를 다른 측면에서만 바라보는 한의사가 안타깝기만 한 것이다.

나도 할 수 있다는 약사의 말에…
87년 한의대를 졸업하고 잠시 수련의 생활을 하다가 개원을 했지만 한의학이 뭔지 잘 몰랐다는 것이 권 원장의 솔직한 표현이다.

한의사이기 때문에 한약재와는 불가분의 관계라는 핑계로 한약재를 찾아 여기저기 놀러 다니기에 더 바빴었다. 그러나 덕분에 한약재를 직접 안아볼 수 있었고 애정을 키웠다고 말한다.

그러던 88년 한의계를 항상 궁지에 몰아 넣는 중금속·잔류농약 문제가 또 터져 나왔다. 이때 권 원장이 했던 결심이 “한약재에 중금속이 들어가 있고, 농약에 오염돼 있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이 문제는 우리 한의사가, 아니 내가 해결해야 할 문제다”라는 것이었다.

이때 터져 나온 것이 한약조제 약사를 만들어 내고 한약사를 탄생시킨 한약분쟁의 시작인 약사법 개정논의였다.

한의학은 잘 몰랐지만 한약의 전문가는 한의사이고 국민보건을 위해 전문가가 아닌 약사가 한약을 취급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믿었기에 다른 동료들과 함께 한의학에서의 의·약 분리, 비전문가의 한약취급이 얼마나 잘못된 주장인가를 알리기 위해 힘을 쏟았었다.

이 당시 같은 지역에서 형·동생 할 정도로 가까운 선배 약사 한 사람이 있었다. 과거에 한약을 복용할 때면 늘 자신을 찾아와 진단을 받고 하던 것이 한약분쟁 이후 한약에 대해 조금 공부를 하고는 태도가 완전히 바뀐 것이다. 한의사가 환자에게 지어주는 수준의 한약은 자신도 할 수 있고, 한약도 약이니 약의 전문가인 약사가 한약을 취급하는 건 당연하다는 주장이다.

전문가가 취급하는 것과 비전문가가 취급하는 한약의 차별성을 찾아내기 위해 권 원장이 진료 이외의 영역인 약탕기 개발에 전력하게 만든 한 요인이다.

해결의 열쇠를 찾아
한약분쟁이 본격적으로 거세지기 몇 해전에 권 원장이 개원한 한의원은 지역에서 환자가 많기로 손꼽히는 수준에 올라왔었다.

그러나 한약분쟁을 거치면서 자신이 진료하고 있는 모습에 대해 일종의 회의를 느끼기 시작했다.

“내가 왜 이래야 하는 걸까?”
“사람들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한 의사로 최선을 다하고 있는가? 아니, 한의학 원전에 나와 있는 것만큼이라도 그대로 실천하고 있는가?”

현재 한방의료기관의 진료 관행으로부터 시작해 미래 한의학의 비전까지 많은 것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한의학이 치료의학으로 자리잡고, 한약을 아무나 넘볼 수 있는 건강식품 수준으로 평가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이 해답을 찾기 위해 대학이나 도서관 돌아다니기를 한참.
“빨리 다려줄 수 있는 것만이 한의학의 살길”이라는 쉬우면서도 평범한 진리를 찾아낼 수 있었다.”

이미 작고한 경희대 한의대 윤길영 교수나 정년 퇴임한 이상인 경희대 한의대 교수 등이 앞서 주장한 내용들이다.

현실 임상에서 이것을 실현시켜보겠다는 것이 권 원장의 포부였다.

높아져 가는 한의원 문턱
아픈 환자가 진료를 받기 위해 한참 기다려 진찰을 받고, 하루나 이틀이 지나서야 패키지에 포장된 한약을 받아 복용한다.

또 반제 정도 투약하면 될 환자에게도 환자가 집에서 직접 달이는 것을 번거로워 하기 때문에 한제를 투약한다.

또 투약에 따른 환자의 상태 변화를 보고 약재를 가감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어쩔 수 없다고 자괴하는 것이 오늘의 한의사 모습이다.

이러한 현실은 침 치료만으로 회복이 가능한 환자를 제외하고 투약이 필요한 환자에는 적극적인 대응을 할 수 없게 만들었다. 또 으레 한의원에서는 약을 다려주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는 환자들에게 경제적 부담을 줘 한방의료기관의 접근을 어렵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러한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는 한의학이 치료의학으로 인정받을 수 없으며, 한약재를 매개로 한 한의사 직무에 대한 도전은 계속될 것이라는 것이 권 원장의 생각이다.

따라서 전통적 탕전 방식이 간접열에 의한 것이라는 점을 응용해 가속열수추출방식을 통한 15분대의 전탕이 가능한 기기를 만들어 냈다는 것은 높게 평가할 만한 일이다.

전탕기의 품질 기준은?
권 원장이 전탕기를 개발한 후 가장 어려워하는 부분은 주변의 선입견이었다.
약재에 들어있는 유효 성분을 15분만에 추출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전제로 ‘장사속’에 지나지 않는다고 평가하는 부분이다.

현재 시중에 유통되고 실제 한의원에서 사용하고 있는 전탕기가 전통적 방식으로 약을 달인 것과 어떠한 차이가 있는지는 깊게 생각해 보지 않고 하는 말이다.

권 원장은 정부출연연구기관인 ‘기초과학지원연구소‘와 경산대·경희대에서 실험한 자료를 내 놓으며 이렇게 한탄한다. 분명 경희대 한방병원에서 제시한 탕전 방식에 따른 함량의 비교에 따르면 권 원장이 개발한 탕전기에서 달인 한약에서 주요성분이 더 많이 검출됐다고 나타나 있다.
(본지 315호 9면)

한약재의 지표물질이나 한약의 특정 물질이 한약의 효능을 그대로 대변해 주지는 않는다고 생각하지만 아직까지는 이 방식으로밖에 탕전 방식에 따른 효능을 평가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또 최근 잦은 사고와 한의사들의 전탕기에 대한 불신 문제가 불거져 한의사협회가 직접 나서 전탕기를 인증해줄 기준을 마련하자는 여론이 높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그 방법으로 제시할 수 있는 것은 기계의 안전성과 함께 한약의 특성성분 추출에 의존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탕제 이외의 한약을 한의원으로…
나사 하나 바꾸면 될 수준의 미약한 고장신고에서부터, 자신이 생각하기에 부족하다고 느끼는 부분이 생기면 밤새 한숨도 자지 못하고 뜬눈으로 밤을 지새운 것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권 원장이 요즘 湯劑뿐만이 아닌 다른 제법들, 사라져가고 있는 한약의 제형들을 어떻게 하면 다시 한방의료기관에 가져올 것인가에 대한 고민으로 잠을 설치고 있다.

한의학에는 한약의 제형에 따라 湯·酒·丸·散·膏·丹·錠·片·露·霜·膠·茶· 등 다양한 형태가 있었으나 현재 한방의료기관에서 사용하는 것은 탕제를 위주로 산·환제가 조금 투약되고 있을 뿐이다.

한방의료기관에서 짧은 시간에 전통적 방식으로 제조한 여러 제형의 한약을 만들어 낼 현대적 기기가 보급된다면 한의학 발전을 위한 큰 업적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또 1700년전 장중경 선생이 휘발성 물질이 들어있는 肉桂가 들어가는 약인 五散은 散藥으로 투약하라고 했는데도 平胃散 등과 함께 湯劑로 투약되는 것을 안타까워하고 있는 이상인 교수의 근심도 사라질 것이다.

짧은 시간 내에 탕제를 만들어 낼 수 있어 환자의 질환 정도에 따라 처방이 달리하고, 急治에는 湯劑를, 緩治에는 散·丸제를 투여하는 한의학의 원칙이 다시 자리를 잡게 되는 날 한의학은 새롭게 비약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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