歷代名醫醫案(185)- 許浚의 醫案(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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歷代名醫醫案(185)- 許浚의 醫案(1)
  • 승인 2010.05.19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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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일

김남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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心熱肝火案
歷代名醫醫案(185)- 許浚의 醫案(1)

許浚(1539~1615): 조선 선조, 광해군 년간에 어의를 역임한 名醫. <東醫寶鑑> <纂圖方論脈訣集成> <諺解胎産集要> <諺解救急方> <諺解痘瘡集要> <新纂癖瘟方> <癖疫神方> 등 의서를 편찬하여 후세 의학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특히, <東醫寶鑑>에는 많은 醫案이 기록되어 있어 후세 임상의학 발전에 기여를 하였다고 평가된다.

心熱肝火案

내용: 약방제조(藥房提調) 홍진(洪進), 부제조(副提調) 유희서(柳熙緖)가 아뢰기를, “신들이 의관(醫官)과 상의한 내용은 이러합니다. 상의 증후는 본디 심열(心熱)이 쌓여서 생긴 증세이므로 침을 맞아서 경락이 맺힌 곳을 뚫어야 하는데 일기가 추워지고 있고 침의(針醫)도 다 모이지 않은 상태입니다.

게다가 근일 거동이 잦아서 노열(勞熱)이 필시 많을 것이니 침을 맞기 전에 우선 삼미도적산(三味導赤散)을 조금 달여서 좌금환(左金丸) 30여 환과 함께 복용하는 것이 합당하겠습니다. 이 약은 생지황(生地黃)· 목통(木通)· 생감초(生甘草) 세 가지 종류인데 성미(性味)가 달고도 담담하여 수시로 진어하실 수가 있습니다.

좌금환은 황련(黃連)을 불에 구워서 고한(苦寒)한 성질을 변하게 한 것이어서 진어해도 무방합니다. 이 약을 다섯 번 복용하도록 지어 올리게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아뢴 대로 하라고 전교하였다(<조선왕조실록> 선조 33년, 서기 1600년, 1월9일).

설명: 위의 醫案은 당시 御醫였던 許浚(1539-1615)의 것일 가능성이 높다. 그 근거는 “의관(醫官)과 상의한 내용”이라는 발언이다.

辨證分析: 이 무렵 내의원에서 선조를 문안한 기록에는 선조의 질병에 대한 기록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앞뒤로 20여일을 살펴보았을 때 질병 치료에 대한 내용이 없는 것으로 보아 이 무렵 선조의 오랜 지병을 묘사한 것으로 판단된다.

허준이 선조의 질병을 진단한 바로는 心熱과 肝火이다. 근거는 導赤散, 左金丸을 처방하고 있기 때문이다. 두 처방에 대한 주치를 고찰해 본다면 導赤散을 쓰는 心實證은 “胸中痛, 脇支滿, 脇下痛, 膺背肩胛間痛, 兩臂內痛”(<東醫寶鑑· 內景· 心臟>의 ‘心病虛實’)이다. 左金丸을 사용한 肝火의 증상은 “肝火燥盛,左脇作痛,呑酸吐酸,筋疝痞結”(<醫方集解>)이다. 이 두 처방의 주치증의 공통점은 脇痛이다.

선조는 임진왜란, 정유재란이 끝난 지 2년이 지난 이 무렵 전쟁후유증과 전쟁 재발 방지를 위한 각종 현안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었으며 이로 인해 御醫들은 心熱肝火를 질병의 원인으로 지목한 것이다.

治療分析: 三味導赤散이란 처방은 導赤散을 말한 것이다. 이렇게 명명한 것은 十味導赤散과 혼동하지 않기 위해서다.

三味導赤散은 生地黃, 木通, 甘草에 竹葉 7片이 들어가는 처방으로서 生地黃은 涼心血, 竹葉은 淸心氣, 木通은 降心火入小腸, 甘草는 達中而止痛,以共導丙丁之火(<醫方集解>의 해석)의 역할이다. 左金丸은 <丹溪心法>에 나오는 처방으로서 黃連과 吳茱萸로 구성되어 있다.

心藥인 黃連을 사용한 것은 實則瀉其子의 원칙에 따라 肝火를 瀉하기 위해서이며, 吳茱萸는 “辛熱,能入厥陰,行氣解鬱”(<醫方集解>)의 의미이다. 左金丸이라 명명한 것에 대해선 <醫方集解>에서 “肝居於左,肺處於右. 左金者, 謂使金令得行於左而平肝也”라고 설명한다.

金南一/ 慶熙大 韓醫大 醫史學敎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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