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현대 한의학을 빛낸 인물2] 배원식 한의협 명예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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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 한의학을 빛낸 인물2] 배원식 한의협 명예회장
  • 승인 2003.04.18 1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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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일·미 넘나든 한의계의 국제통
광범위한 해외인맥 구축, 한의학 위상 제고에 일등공신
난치병·부인병 전문가…중국 명의 95명으로 선정

아침 10시. 서울 명동 지하철역 부근 고가도로 진입로 옆에 자리한 배원식한의원에는 환자들이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했다. 모두가 예약시간에 맞추어 온 환자들이다. 이 가운데는 3달전에 예약한 환자도 적지 않았다. 이러기를 매일 저녁 6시까지 반복한다.
환자가 끊이지 않는 한방의료기관이 배원식한의원만의 현상은 아니지만 미수의 나이에 하루 8시간을 쉬지 않고 진료한다는 사실은 여간 예사로운 일이 아니다. 지금도 한의협 국제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제11차 국제동양의학학술대회(ICOM)를 주도적으로 준비하고 있으니 영원한 현역인 셈이다.

영원한 현역
배 회장은 1914년 경남 진해에서 출생했다. 머리가 좋아 보통학교를 1등으로 졸업하고 진주사범에 진학하려 했으나 온 몸에 피부병이 번져 포기하고, 부친의 친구인 의생 김민구가 운영하던 동제한의원(당시 의원)에 들어간 것이 한의학을 하게 계기가 되었다.
여기서 6개월간 '의학입문'을 공부한 청년 배원식은 다소 부족함을 느껴 서양의학을 공부하고자 평양에 있는 기성 의학 강습소에 들어갔다. 그의 나이 17세였다.
의학강습소에서 4년간 배운 그는 무의면 지역에 결원이 생긴만큼 선발하는 의생시험에 응시하려 하였으나 마땅히 지망할 지역도 없어 포기하고 주위의 권유로 만주 新京(지금의 長春)으로 건너가 1년 후 약종상시험에 합격하였다. 그의 한의사 이력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그러나 5년 뒤인 1938년에 치러진 제1회 만주국 한의사국가고시에 합격하여 정식 한의원을 개원하였다. 한의원이름은 '대륙한의원'. 한의원 개원시점부터 따지면 그의 한의사 경력은 63년이 된다. 약종상시절까지 치면 그의 임상경력은 장장 68년에 이른다.
중국에서의 진료는 이후의 삶에 큰 변화를 가져오게 된다. 하나는 그의 인생전환점이라 할 수 있는 육당 최남선을 만난 일이고, 또 하나는 국제교류에 눈을 뜬 일이다. 육당은 후기에 친일행적이 있었지만 만주시절까지만 해도 당시 민족 최고의 지성이었다. 육당은 진료받으면서도 늘 '우리 민족이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를 이야기했다'고 배 회장은 회고한다. 한 마디로 헛소리를 안하고 실천을 몸소 보여 배운 바가 많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배 회장은 언제 어디서나 마음에서 우러난 진실된 이야기만 한다. 그가 199년 중국 당국으로부터 95인의 '20세기 최고의 명의'가 될 수 있었던 것도 8년간 中醫로서 활동한 데다가 지금까지 중국과 학술교류를 꾸준히 한 공로를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한의계의 국제통'이란 별명도 그냥 얻어진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한의학 재건의 주역
해방이 되자마자 귀국한 배원식은 박호풍, 김영훈, 박성수 등과 함께 한의사들의 모임인 '의생협회'에서 '동양학관'이라는 강습소를 만들었다. 그의 나이 30세였다. 같이 참여한 사람 중 가장 어린 나이였다.
이들은 한국전쟁이 터져 1.4후퇴로 피난지 부산에서 부산 주재 한의사들과 힘을 모아 천신만고 끝에 국민의료법을 통과시킨 뒤에 한의과대학의 전신이라 할 수 있는 서울한의과대학을 설립하게 된다. 배 회장은 강사를 맡아 50∼60명의 학생들에게 의학입문, 동의보감 등을 가르쳤다. 서울한의과대학은 서울이 수복되자 동양의약대학으로 명칭을 바꿨다. 배 회장은 54년에 실시된 한의사국가고시에서 한의사면허를 취득했다. 월간지 『의림』을 발행한 것도 이 해다. 68년에는 한의협 회장을 연임하였다. 말하자면 한의사제도의 격동기에서 한의사제도의 수호자로서의 온갖 풍파를 다 겪은 백전노장이라 할 수 있다. 그를 가리켜 '행정의 달인'이라고 말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한의학 국제교류의 대부
그러나 그의 이력은 한의학 재건의 주역으로서보다 한의학 국제교류의 개척자로서의 이미지가 더 강한 것이 사실이다. 그의 국제교류의 역사는 1961년 일본동양의학회 한국대표로 참석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우리 한의계가 국제적으로 얼마나 고립되어 있는지는 1964년 일본에 가서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일본 한방계를 시찰하면서 일본침구학회 이사장과 담소하던 중 우연히 그 다음해(1965년) 동경에서 개최되는 세계침구학회 초청국에 한국이 빠져 있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항의를 했지만 '한국은 한방 수준이 낮으니 북한을 초청하기로 결의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물안 개구리처럼 외부와 담을 쌓고 지낸 결과 화를 자초했다고 생각하니 서글픔이 솟구쳐오더군요."
이때부터 배 회장은 충격을 받고 절치부심 한 끝에 1976년 국제동양의학회(ISOM)을 창립하여 국제활동의 불모지 한국에 교류의 불을 지필 수 있었다. 그는 한편으론 의림지를 발행하면서 발굴한 해외 知人을 활용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사재를 털어 해외 지인들의 행사참여를 고무시켰다. 국내 한의사가 해외 학술교류를 할 때에도 성원을 아끼지 않았다. 선우기(서울 수동한의원) 원장은 이렇게 말한다.
"제가 77년에 루마니아에 갈 때 배 회장님이 베풀어준 환송회를 잊을 수 없습니다. 젊은 한의사에게 환송회 해주는 일은 그리 흔치 않은 일이지요. 배 회장님은 후학도의 대외활동에 음양으로 용기를 주셨지요. 그분의 열정이 없었으면 중·일과의 유대가 어렵지 않았나 생각될 정도입니다."
국제교류에 대한 그의 집념은 국내 한의학전공자의 일본 유학시 추천서를 써주기도 하고, 해외 한의과대학 유학생에게는 배원식장학금을 주는 식으로 반영되기도 했다.
또 한편으로는 ICOM 행사에 대비해 초청장 발송대상자와 발송시기를 일일이 지정해 줄 정도로 개개인의 신상과 특성을 정밀하게 꿰고 있다.

낫게 하는 게 의학
배 회장은 난치병과 부인병의 대가로도 소문나 있다. 모두 음양오행에 입각한 전통적 방법을 고수하고 있다. 이에 대해 배 회장은 한의학은 경험의학이라고 단언한다. 그는 본질보다 곁가지에 매달리는 요즘의 세태를 꼬집는다. TV에 출연하거나 컴퓨터나 영어 좀 한다고 한의학이 발전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젊은 한의사는 경험있는 선배 한의사와 접촉해야 하고, 나이 든 한의사는 자기가 경험한 사실을 그대로 후학에 전수시켜야지 헛된 사술을 가르쳐서는 안된다고 강조한다. 이를테면 선후배간의 조화가 중요하고, 임상적으로는 이론보다 낫게 하는 게 중요하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배 회장의 임상경험은 조만간 서적으로 출간될 예정이다. 기존 경험방의 잘못된 부분이 배 회장의 손을 거쳐 교정될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현재 초안이 완성되어 퇴고 단계에 있다. 인세는 물론 동양의학회 장학금으로 조성된다.
그의 학문은 한국동양의학회를 중심으로 전수되고 있다. 한국동양의학회는 매월 26일 세종호텔에서 저명한 임상가들을 초청하여 강의를 하고 있다. 회원으로는 맹화섭, 이종형, 신재용, 박창곡, 신천호 등이 있다. 배 회장은 이와는 별도로 동양의학회의 신진반이라 할 수 있는 허준의학회도 이끌고 있다. 여기에는 선우기, 윤병화, 임석정, 조홍건, 조병욱, 이종안, 왕충조, 김준범(총무) 등이 참여하고 있다.
한국동양의학회 총무를 맡고 있는 이종안(경기 분당 혜초한의원) 원장은 배 회장의 업적과 인간적 풍모를 한 마디로 "이 시대의 허준"이라고 표현한다. 한의학에 대한 열정이나 후학에 대한 관심, 난치병에 대한 도전 등으로 보아 허준 못지 않게 추앙받을 요소가 많다는 것이 이 총무의 생각이다.
배 회장은 건강의 비결을 묻는 기자에게 "정수를 아껴라"고 조언한다.
김승진 기자

<약력>
1914년 경남 진해 출생
1934년 평양 기성 의학 강습소 수료
1952년 서울 한의과대학 강사
1954년 한방의학 월간지 『의림』 발간
1956년 동방의학회 회장
1960년 동방장학회 회장
1968년 대한한의사협회 회장(연임)
1970년 한국동양의학회 회장
1976년 일본동아의학협회 고문
제1회 국제동양의학학술대회(ICOM) 대회장
1983년 주식회장 대도제약 회장
1984년 대한한의사협회 국제위원장 피선
1998년 북경 주의연구원 배원식장학회 설립
1999년 국제동양의학회 회장
20세기 중국 명의 95인 중 한 사람으로 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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