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간 한방건보 ‘정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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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간 한방건보 ‘정체’
  • 승인 2010.05.07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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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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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험정책, 패러다임 변화 필요
보험정책, 패러다임 변화 필요
수가에 매몰돼 10년간 한방건보 ‘정체’ 

1987년 2월1일 전 국민 한방건강보험이 실시된 지 이제 23년이 지났다. 한방건강보험 역사를 돌이켜 보면 대략 3단계로 나눠볼 수 있다. 우선 1987년 2월1일부터 1990년 2월까지는 건강보험의 제도적 시작기로, 졸속으로 시작된 한방건강보험이 틀을 잡는 과정이다. 이 시기에 단미엑스산제 처방이 확대됐고, 그동안 진찰‧입원료를 양방 수준에 맞추고 침‧구‧부항의 시술료 수가를 현실에 맞게 조정하고 특수경혈을 확대하였다.

이런 과정을 거쳐 2단계로 1990년 2월1일부터 2001년 1월까지 11년간 한방건강보험은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화려하게 꽃 피는 확대 과정을 거친다. 이 시기 주로 이루어진 조치는 이체 가산료 신설, 양도락‧맥진도‧경락기능검사 등 검사료 신설, 관절강내 등 침술 고난이도 항목 개발, 전기침술‧레이저침술 신설, 입원 진료 처치료 신설, 처방 투여시 가감 인정, 변증기술료 신설, 사암침‧오행침‧화침‧분구침 등 신설 등이 주요 내용이다. 그야말로 한의계가 주장하는 많은 내용이 정책에 반영되었다.

이런 과정을 거쳐 한방건강보험은 급속도로 발전하였으나, 2001년 1월 이후 현재까지 10년간 한방건강보험은 정체기를 맞는다. 돌이켜 보면 알 수 있듯이 지난 10년간 한방건강보험은 상대가치 점수, 수가 인상 등 주로 수가에 초점이 맞춰져 있고, 1990년대와 같은 확대 조치는 한방물리요법 신설이 유일하다.

“보험급여 확대하려면 표준화가 선행되고 안전성‧유효성 검증이 필요


그렇다면 과거 10년간 왜 이런 일이 생겼는가? 단순히 협회 집행부의 능력이나 노력이 부족했기 때문인가? 노력 부족보다 변화된 환경에 적응하지 못한 한의계의 인식 부족 탓이 더 크고 커다란 인식 전환이 있지 않으면 앞으로 한방건강보험 확대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더 늦기 전에 변화된 환경을 분석하여 적절한 대책을 수립해야 한다.

가장 먼저 고려해야 할 것이 정부 정책의 변화다. 특히 정부는 급속히 증가하는 의료비를 통제해야 할 필요성 때문에 급여 확대에 상당히 미온적인데, 이것이 첫번째 원인이다. 그런데도 양방에 대해선 CT를 포함해 식대‧병실료가 급여화되고 본인부담금 상한제‧암 등 중증질환의 급여가 확대되었다. 한의계가 이런 정부 정책에 제대로 부응하지 못한 것이 두번째 원인이다. 보건복지부와 심평원과 건강보험공단 같은 정부기관, 소비자 관련 단체, 시민단체 등 건강보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여러 조직을 수준에 맞게 효과적으로 설득하지 못한 것이 세번째 원인이다. 그리고 이런 외부 상황을 인지하지 못한 채 단순히 한의계가 열심히 주장하면 수용될 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인식이 네번째 원인이다.

앞으로 보험급여 확대를 위해선 표준화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하고 안전성‧유효성이 검증되어야 한다. 과거에도 이런 과제가 꼭 필요했지만 현 상황에서 더 부각되는 이유는 외부 환경이 의료의 보편적인 수준에 맞는 조건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뜸을 급여화하려면 우선 뜸을 뜨기 위한 재료의 규격이 정해지고, 일정한 품질로 생산할 수 있는 회사가 있어야 하며(표준화), 어느 정도 시술해야 안전하고 부작용은 무엇인지에 대한 가이드 라인이 있어야 하며(안전성), 주로 효과가 있는 질환이 무엇인지(유효성)에 대해 연구가 나와야 한다.

더블어 뜸 놓는 시술시간, 재료대 등을 근거로 상대가치 점수를 산출하는 과정도 밟아야 한다. 과거에는 뜸을 뜬다는 자체만으로도 시술료를 인정해 주었으나 이제는 아니다. 뜸을 예로 들었지만 연구결과가 없이는 정부기관, 소비자 관련 단체 어느 누구도 설득할 수 없다. 노력은 그 다음이다. 그리고 항상 외부의 정책 변화에 민감하게 대응하고 준비해 나가야 한다.

“본인부담금 상한선 18,000원 정책 추진이 왜 실패했는지 곱씹어 봐야

65세 이상 본인부담금 상한을 18,000원으로 하는 정책 추진이 왜 실패했는지, 한약제제 급여 확대가 왜 번번이 좌절하는지 곱씹어 봐야 한다. 한의계가 하는 주장의 타당성보다는 외부 단체들이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를 더 중요하게 여겨야 한다. 정부 정책에 부합되지 않을 경우 한의계의 어떤 정책도 채택될 수 없다는 현실을 냉정히 직시할 필요가 있다. 급여 확대를 하고자 한다면 국제적 수준의 관련 연구결과물을 축적해 놓지 않고선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국민을 설득해야 하고, 객관적인 연구가 선행되어야 하고, 정부 정책에 발 빠르게 대응하기 위해 지금부터 발 벗고 나서자. 그렇지 않으면 잃어버린 10년은 계속 반복될 수밖에 없다.

박용신/ 밝은눈한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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