醫家정치인들 국민의료법 제정 맹활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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醫家정치인들 국민의료법 제정 맹활약
  • 승인 2010.05.01 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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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연규

황연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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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대구지역 한의계 열전(3)
醫家정치인들 국민의료법 제정 맹활약
조헌영‧ 방주혁 선생 등 한의사제 산파 역할

경북 대구지역 한의계 열전(3)-
의가 정치인 

1951년 9월25일 한의사제도가 국회의 통과가 있기까지 입법부에서 활동이 중요하였다. 그 대표적인 한의계 인물로는 1949년 10월12일 ‘대구 동양의학강습회 창설’등 대구 한의학 부흥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1대, 2대 국회의원이며 헌법 기초위원인 조헌영 의원의 국회에서 활동이다. 국회의원으로서 한국전쟁 이전 그의 ‘한의학 부활의 토대’와 입법부 활동들은 평가 받아 마땅하다. 그리고 구한말 ‘팔가일지회’의 여러 한의사 선배와 일제 의생제도 아래에서 한의사 부활의 역할에 일익을 담당하면서 ‘국가보안법 제1조 위반’의 서약서를 쓴 지석영(의생번호 6번)과 여러 선배의 노력 또한 조명돼야 한다.

아울러 당시 정치인 중에는 親한의계 인사가 많았는데, 그 중에는 영남 출신이며 독립운동가, 정치인, 한의사(대한한의사협회 1950년대 고문)인 구한말 侍醫였던 慈渡韓醫院의 방주혁(의생번호 5번: 한의사면허 680번: 참봉 / 운현궁 흥친왕의 侍醫)이 있다. 그는 민주국민당의 고문으로 활약한 당대 정치가인데 관련 글은 ‘醫家정치인 방주혁 선생(1955년 의림지 28호)’와 ‘우리나라 원로 대가를 찾아서(1955년 의림지 31호)’에 실려있다. 특히 그는 前 국회의원 이종찬 의원의 증조부인 太醫院卿 李裕承과 친하였다.

또한, 이유승의 아들인 대한민국 1대 부통령이며 조선시대 太醫院 부제조를 지낸 이시영과 함께 방주혁 선생은 독립운동을 했던 분으로 유명하다. 그는 당시 73세의 나이로 정치가로서 활약했으며 그의 이력을 보면 당대 정치가들이 한의사 제도 설립에 도움을 많이 주었으리라 짐작된다. 그는 50년대 말에는 81세의 나이에도 한의계 원로모임인 ‘銓衡위원회 7인 위원’으로 활동하였는데 당시 이런 분의 정치적 역량도 간과해서는 안된다.

“방주혁 선생은 대한민국 초대 부통령인 이시영과 독립운동을 했고 81세에도 ‘銓衡위원회 7인위원’으로 활동한 점으로 미뤄볼 때 한의사제 설립에 적잖게 공헌했으리라 짐작된다


방주혁 선생.
출처= 의림지
대한민국 의료법의 최초의 탄생은 많은 진통을 겪었는데 48년 제헌국회에서 의료법이 제정되지 못하고 1950년 이전에는 일제의 한의사 말살정책이 반영된 1944년 일본 법령인 ‘조선의료령’을 답습하였다. 한의사(중국인과 중국에서 살았던 한의사)들 중에서 소수는 미군정이나 과도정부의 면허를 취득하기도 하였다.

한의사제 설립 위한 입법부 노력= 한의사제도에 가장 큰 역할을 하신 입법부 인물은 ‘6.25전쟁’ 때 납북된 ‘동의학 박사’인 조헌영 의원(1900~1988년: 1, 2대 국회의원)이다. 아울러 1944년 일본법령 ‘조선의료령’에서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처음으로 제정된 의료법 ‘국민의료법(1951년 9월25일 제정)’에 이르기까지는 경북 안동 지역의 金翼基 의원(1916~1992년: 1, 2, 3, 4, 6대 국회의원)의 역할이 컸다.

조헌영의 노력이 오늘날 한의사제도가 있게 한 근본이 되었는데 그와 함께 대구 지역의 초창기 ‘동양의학강습회’ 고문으로 참여하고 음으로 지원해 주신 서상일 의원(1887~1962년: 1, 5대 국회의원), 1954년 양의 측의 한의에 대한 불리한 결의를 한 것에 대한 영남일보에 게재된 ‘반박 성명서’를 도와준 54년 당시 대구 국회의원 이우줄(한국 한의학의 儒醫 석곡 이규준의 손자: <석곡산고> 참고) 등이 있다.

제헌국회에서 활약한 대구 경북지역 국회의원 중에는 과거 한의사(의생)를 하신 분이 2분 있는데 일제시대 한의사(의생)이던 이범교(의생번호 1105번- 1914년 면허자: 평생면허 / 제헌국회 영천 출신)와 권병로(한지의생: 7859번 / 1, 2대 국회의원 의성)가 있는데 권병로(송원무광)는 1928년에서 1944년(16년간)까지 한의사(의생)를 하다 1944년 5월 한지 의업면허(1303번)를 받고 양의사가 되었다.

북한 ‘동의학 박사’ 조헌영= 그는 경상북도 영양군 일원면 주곡리에서 태어났으며 본관은 한양이고 號는 應文, 海山이다. 그의 아들은 청록파 시인 조지훈이며 조부는 의병대장 趙承基이다.

경북고와 와세다대학 영문과 출신으로 신간회 토쿄지부장과 신간회 사무 간사, 신간회 중앙 검사위원회 상무위원을 한 독립운동가이며 조선 理療회장, 동의학 박사(북한)인 한의학자이고 임시정부 및 연합군 환영준비위원회 사무차장, 한국 민주당 조직부장, 비상국민회의 대의원, 헌법기초위원, 반민족회의 특별조사위원과 제1대, 2대 제헌국회 의원을 한 정치가이며 1931년 이후에는 ‘東洋醫藥社’등 근대 한의학을 개척하고 한의학 기초 수립에 노력하였다.

“조헌영 선생은 반민족회의 특별조사위원과 제1대, 2대 제헌국회 의원을 지냈고 1931년 이후에는 ‘東洋醫藥社’등 근대 한의학을 개척하고 한의학 기초 수립에 노력하였다.

조헌영 선생.
한편으로는 일제의 민족문화 말살정책에 대항하고 한의학을 천시하는 것에 대해 한의학 특성과 우월성 등에 관해 집필하였다. 1935년에는 조선어학회 표준말 사정위원과 ‘큰 사전’편찬 전문위원으로 우리말 사랑에도 앞장서 활동하였다. 1935년에는 <東洋醫藥: 동서의학연구회>를 발행 ‘팔가일지회’의 전광옥, 김영훈 등과 함께 한의학 관련 논술 및 이론을 실었다.

1949년 동양의학강습회 창설 고문을 하였으며 1948년 이후 1, 2대 국회의원이 되었다. 이후 북한에 납북되어 북한에서 활동을 하였는데 1956년 재북평화통일협의회 상무위원, 1967년에 북한의 <동의학연구소> 연구사, 1980년에는 서기장(?)이었다고 한다.

그의 대표적인 저서인 <통속 한의학 원론>은 구한말 황도연의 <방약합편>과 더불어 오늘날까지 한의사들에게 사랑받는 책이다. 제헌국회에서 ‘의료법’을 제정하지 못하여 1951년에 ‘국민 의료법’이 처음 제정되었는데 50년까지의 국회의원 활동을 한 조헌영과 親한의계 분들께 감사드리며 아울러 부산의 ‘오인동지회’의 활동에도 깊이 감사드리며 다음 호에는 최해종과 그의 문학세계와 관련 한의사들의 활동에 관해 기술하겠다.

황연규/ 마산 성신한의원 원장

<저술로 본 조헌영 한의학 세계>

조헌영 선생의 저술과 논문은 아주 많다. <통속 한의학 원론>을 비롯해 <동양의학총서 5종>, <민중의술 리요법>, <한의학의 비판과 해설>, <폐병 치료법>, <신경쇠약 치료법>, <부인병 치료법>, <위장병 치료법>, <한의학의 비판과 해설>, <물질문명은 어디로>, <海山수필집 : 未刊>, <의회연설집 : 未刊>이 있다.

논문으로는 <위장병의 요법 : 충남의학>, <이질의 증과 치료 : 한방의약>, <소아병 요법>, <한방 맥학의 신 연구>, <본초약리학과 기백초설>, <본초약리학과 기미론>, <한약법제는 왜 하는가?>, <의상으로 본 다산 선생: 신조선 제8호 1935년 1월1일>, <감기는 만병의 근본 예방과 치료법 : 동아일보 1936년 1월7일 5회 연재>, <음양 오행설에 대하여 천대산인의 蒙을 啓함: 동아일보 1936년 2월14일 6회 연재>, <불면증은 왜 생기나 원인과 치료방법: 동아일보 1936년 3월14일 5회 연재>, <임신 마흔 봄철에 낙태는 어떻게 막을까?: 동아일보 1936년 4월10일>, <젊은이들의 정신이상 원인과 치료방법 특히 청춘남녀가 많이 걸리는…: 동아일보 1936년 8월1일, 4일>, <인삼 녹용 왜 영약이라 하는가?: 동아일보 1937년 6월19일 4회>, <우습듯 하면서 맘 놀 수 없는 각기와 부종 덥다고 방에 불 안 때는 것: 동아일보 1937년 6월23일>, <환절기 위생이 절기에 제일 많은 감기와 토사증 한방에서…: 동아일보 1937년 9월21일>, <이번 겨울에 유행하는 감기의 치료법: 동아일보 1938년 2월23일>, <이른 봄부터 많이 나는 중이염 치료법: 동아일보 1938년 2월26일>, <환절기 위생: 부인병에 제일 많은 화와 냉의 증세: 동아일보 1939년 11월18일> 등이 있다.

북한에서의 저술로는 <심장병과 뜸치료법을 비롯한 동의치료법 발표>, <북한의 동의사 양성사업과 동의처방학 집필>, <醫方類聚 : 국역>, <東醫寶鑑 : 국역> 등의 국역화 사업에 크게 기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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