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담- 떠나는 자, 그대 뒷모습이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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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담- 떠나는 자, 그대 뒷모습이 아름답다
  • 승인 2010.03.12 1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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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득권 버리고 불출마 선언한 김현수 한의협 회장

떠나는 자, 그대 뒷모습이 아름답다… 진정한 승부사 각인

김현수 회장이 재임기간 겪은 희로애락을 열렬히 토로하고 있다. 

기득권 버리고 불출마 선언한 김현수 한의협 회장  

특별대담= 강근주 편집국장


진퇴, 결코 쉽지 않은 선택이다. 지혜가 요구된다. 통찰력이 필요하다. 진정한 용기를 원한다. 게다가 집착은 진퇴양난의 산실이다. 그래서 누군가는 때를 놓쳐서, 누군가는 방법이 서툴러 망신살이 뻗친다. 반면 누군가는 명확한 진퇴로 귀감을 산다.
김현수 한의협 회장이 제40대 회장선거에 불출마했다. 재선도 아닌 초선인 점을 감안하면 쉽지 않은 결정이 분명하다. 기득권 포기로 그는 적잖은 비판에 재갈을 물렸다. 진정한 승부사로 거듭났다. 지도자로서 진면목을 보였다. 떠나는 자, 그대 뒷모습이 아름답다. 또 다른 비상이 기대된다. 

-제40대 회장선거에 불출마한다. 쉽지 않은 결단인데, 그 배경이 궁금하다.
“회무 인수인계가 원활하게 이뤄지는 전례를 남기고 싶다. 신·구 회장 사이가 좋아야 회무의 연속성도 살리고 경험도 나눌 수 있지 않겠나. 몸도 많이 상했다. 사실 재선 생각은 1년 전부터 버렸다. 인기에 영합하지 않고 소신껏 일을 처리해 나가려면 방법이 없었다.”

-후임자가 계승할 사안으로는 무엇을 꼽을 수 있나.
“전부 다 아닐까. 한의사가 국내외에서 의사로서 지위를 확고하게 다지는 게 궁극적 목표이고, 이에 대한 각론을 역대 회장들이 추진해 왔다. 우리가 희망하고 기대하는 부분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전력 투구를 해왔는데, 아직 가시적 성과가 나오지 않은 것은 없나.
“본인부담금 문제가 곧 풀리지 않을까 싶다. 신임 회장이 잘 마무리할 것이라 믿는다. 유통구조의 혁신도 아직 진행형이다. 기존 제약회사나 도매상이나 생산자나 한의사나 사사로운 이해관계에서 벗어나 서로 뭉쳐야 국민에게서 사랑 받을 수 있다.” 

“재선 생각은 1년 전부터 버렸다. 인기에 영합하지 않고 소신껏 일해 나가려면 방법이 없었다”

-취임 당시 슬로건이 한의사의 사회적 위상 강화였다. 뜻대로 잘 됐나.
“한의사는 병을 고치는 의사다. 해외에서도 닥터로 대우받고 치료에 나서야 한다. 몇몇 한의대는 지금도 미국의 의사시험을 치를 수 있지만 실재로 지원하면 거부당한다. 한국표준질병사인분류 체계를 국가가 수용하고 고시하고 관리하고 있느냐, 이것도 매우 중요한 문제다.”

-KCD를 둘러싸고 일선 개원가는 여전히 혼란스러워 한다. 이용 방법의 미숙함 때문이 아니라 한의학적 고유 상명명이 없어질 수도 있다는 불안감에 사로잡혀 있다.
“우리는 KCD를 보다 전략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KCD를 국가가 수용하고 고시하고 관리하는 것은 국내외에서 한의사 위상을 확고히 하는데 필수적인 요소다. 그리고 U코드는 절대 없어지지 않는다. WHO 산하 ICD 11차 개정안에 패밀리 상병코드로 동양의학 상병명이 들어갈 계획이다. 중국은 그것을 선점하기 위해 국가적으로 작업하고 있다. U코드 보완은 학회의 몫이다. 교수들이 연구하고 합의해서 통계청에 얘기하면 매년 추가와 삭제가 가능하다.”

-공청회 등을 통해 이런 흐름을 회원들에게 알려주지 못할 저간 사정이라도 있나.
“중앙회는 많은 교육을 진행했다. 다만 시도지부까지 내려가는 데는 한계가 있지 않았나 싶다. 이제 우리도 시간 내서 공부도 하고 토론도 하고 연구도 해야 되는데, 참 안타깝다.”

-한의사에게 보건소장의 문호가 많이 열릴 듯하다. 공공부문 진출은 사회적 위상을 높이는 일 아닌가.
“한의사 보건소장 임명은 곧 풀린다. 국무총리실 하고 규제개혁위원회와도 이미 얘기가 됐고 보건복지부 등 정부 내적으로도 합의된 걸로 안다. 이는 단순히 일자리를 늘리는 차원을 넘어 의사로서 정체성을 확고하게 매듭을 짓는 것이다.” 

“회무 인수인계가 제대로 되는 전례를 남기고 싶다. 전 집행부의 인맥이 다음 집행부로 연결이 안되니 시너지 효과는 고사하고 맨날 제자리걸음일 수밖에 없다”

-지난 2년간 많은 일을 겪었을 터이다. 그래도 보람 때문에 견디는 것 아닌가.
“한 번도 만족스럽게 매듭을 지은 사안이 없다. 욕심이 많아서인지, 왜 이것 밖에 못했나 하는 아쉬움 속에서 지냈다. 아, 언론 관계자 수십 명을 만나 설득하고 한의학 특성을 이해시켜 부정적 보도가 많이 줄어든 점은 그나마 보람이다.”

-그럼 아쉬움을 들어보자.
“한의계 이익을 대변하고 한의학 발전의 기틀을 마련하려면 국민적 지지를 끌어내고 정부 당국과 국회에 우리의 역할을 각인시켜야 한다. 이런 일에서 제일 중요한 게 사회적 네트워크다. 헌데 전 집행부의 인맥이 다음 집행부로 연결이 안되니 시너지 효과는 고사하고 맨날 그 타령에 그칠 수밖에 없다.”

-인적 관계망은 협회의 자산 아닌가. 단절되고 축적되지 않을 만한 이유라도 있나.
“마음을 다 비워야 한다. 회장은 명예을 먹고 살지 경제적 이득을 취하는 자리가 아니다. 밀어주고 당겨줘도 인맥이 부족한 게 한의계다. 소탐대실에 빠지지 말고 마음을 열고 허심탄회하게 한의계 전체를 끌어안으면 좋겠다.”

-간혹 억울하다는 생각을 가졌을 법하다. 소문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는 속언도 있잖은가.
“정책 수립이 진행될 때 정확한 팩트를 확인하는 시스템이 좀 더 체계화됐으면 싶다. 보통 허위사실이 소문으로 나도는데, 그 소문은 다른 목적 때문에 증폭되는 것 같다. 정책 홍보나 설명회를 자주 열었으면 잘못된 팩트의 확산은 많이 줄었을텐데…. 그런데 워낙 회무가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그래도 시간이 지나면 바로 잡아진다.”

-김 회장이 한방가정의학과를 만들고 학회장까지 지내 이해에 얽힌 나머지 한방가정의학과 과목 신설을 통과시켰다는 풍문도 돌아다녔다.
“사실과 다르다. 가정의학과 전문의 제안은 복지부가 했다. 개인적으로는 경쟁력 있는 임상 분야를 모두 전문화시킬 것을 제안했다. 치료가 필요한 환자가 많으면 추나, 약침 등이 전문의 과목으로 들어가는 게 당연하다. 이외 무슨 명분이 필요한가. 물론 개원의를 무장시켜 개원가도 살려야 한다. 어쨌든 나는 임상수련기관 다양화를 전문의 과목 신설의 전제조건으로 내걸었다.”

-답답하겠지만, 현직 회장으로서 짊어져야 하는 멍에 아닌가.
지친다. 비난을 위한 비난, 내용도 모르면서 하는 비난에 일일이 대응할 필요가 있겠나. 전문의 표방 금지도 국회를 상대로 움직여 1년 연장을 이끌어냈다. 당시 전문의들이 국회에 가서 난리를 쳤다. 섭섭했다. 자기만 살자는 것 아닌가. 회장은 1천명의 전문의 의견도 수렴해야 돼지만 나머지 1만9천명의 회원들이 잘 돼는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일특위, 뜸사랑 등 외부 공격에 미온적 태도로 일관했다는 비판도 있다. 나름 복안을 가지고 불만의 소리를 묵과한 것인가.
“한의 정책은 많다. 모두가 중요하다. 그러나 회장이 볼 때는 조화와 선후가 필요하다. 불법의료행위, 김남수 때문에 난리칠 때 말했다. 같이 해나가자. 그러나 그거 N분의 1이다. 그래서 게릴라전을 택했다. IMS 대응도 마찬가지다. 의협과 전면전을 펼치려다 참았다. 전면전으로 얻을 게 별로 없기 때문이다. 대신 물밑작업에 나섰다.”

-전략도, 전술 구사도 일면 현실적이다. 회원들이 이런 사실을 알았다면 이해의 폭이 좀 더 넓어지지 않을까 싶다.
“아마추어를 벗어나야 한다. 어짜피 뺏지 않으면 뺏기는 제로썸 게임이다. 의협과도 이제는 전면전을 고려할 때다. 물리치료 보험급여가 어느 정도 끝나면 나머지는 첩약 등이다. X-ray 급여도 시급한 문제다. 시도지부 임원들 만큼은 정책 전문가이자 로비의 달인이 돼야 프로의 세계에서 많은 걸 얻어올 수 있다.”

“언론 관계자 수십 명을 만나 설득하고 한의학 특성을 이해시켜 부정적 보도가 많이 줄어든 점은 그나마 보람이다”

-인사가 잦아 협회의 전문성이 약화됐다는 지적도 있다.
“전혀 동의할 수 없다. 보험이사를 8년간 하면서 직원들을 알아왔기 때문에 능력에 따라 필요에 따라 적재적소 인사했다. 역동적인 구조를 만들고 직원들의 장점을 뽑아내기 위한 방책이었다. 소신 있고 논리 정연한 분들을 삼고초려해 이사진도 다양하게 구성했다. 한 파트를 총괄하는 부회장에게는 주간업무 보고를 받도록 했다. 이사 또는 부회장이 결재한 내용만 회장이 결재하는 방식도 협회 창립 이래 처음 도입했다. 회장의 역할은 방향을 결정하는 것이다.”

-상근이사를 늘려야 한다는 얘기에 대해선 어찌 생각하나.
“전적으로 동감한다. 그런데 재정이 너무 취약하다. 일을 시키려면 능력 있는 사람이 와야 하고, 그러면 먹고 살게 해줘야 한다. 회장도 월급이 없는 구조여서 오래 하기 힘들다.”

-회장에게 봉급을 주면 어떤가. 회장 스스로 자기 지갑을 열면 좋지만 언제까지 희생과 헌신만 강요할 수는 없지 않은가.
“작년 말에는 너무 바빠 두 달간 한의원에 한 번도 못 갔다. 차라리 한의원을 접고 들어와 회무에만 전념하는 편이 나을 수도 있다. 차기 집행부가 진중하게 고민해볼 대목이다.”

-회장 출신 국회의원이 없다. 아쉬운 대목이 아닌가.
“회장을 하다 보면 정치적 역량이 커지기 때문에 정치를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정치를 하려고 회장을 하면 한의계도 자신도 불행이다.”

“아마추어를 벗어나야 한다. 어짜피 뺏지 않으면 뺏기는 제로썸 게임이다. 의협과도 이제는 전면전을 고려할 때다”

-이제 객관적 입장이 됐는데, 이번 회장선거에 대한 단상이 있을 법하다.
“정책토론이 좀 더 활발했으면 좋겠다. 그래야 선거가 축제의 장이 되고, 당선자나 낙선자나 모두 승자가 될 수 있다. 정책경쟁이 실종되면 선거 이후 분열만 남는다.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때가 됐다.”

-시대가 지도자를 만든다는 말이 있다. 현 상황이 요구하는 차기 회장은 어떤 상이라고 분석하나.
“이제는 협회 방향성을 정립할 때가 온 것 같다. 통합의 강력한 리더십이 필요하다.”

-대의원총회에서 부결됐지만 회원들 사이에선 직선제 요구가 많다.
“직선제든, 미국식 선거인단 제도든, 회원이 참여할 길이 열려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정책대결은 공염불에 불과하다. 비용은 차후 문제다. 참여하고 소통하면 단합은 절로 이뤄지기 마련이다.”

-그동안 쌓은 경륜을 한의계를 위해 어떻게든 활용해야 하지 않겠나. 퇴임 후 계획은 무엇인가.
“일단 인수인계가 급선무다. 보험은 머잖아 격변을 맞을 것이다. 양방이 수가를 계속 만들어 내고 있는데 정부가 뭔가 단안을 내리지 않으면 폭발할 수도 있다. 이때 신임 회장을 적극 도울 것이다. 그걸 잘 하기 위해 출마 안했다.”

정리= 박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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