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혜정 칼럼- 물리의 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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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혜정 칼럼- 물리의 의학
  • 승인 2010.02.26 1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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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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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의 의학

“한의학의 인체관과 언어에 대한 이해는 과학적 진위 여부보다 경험적 직관적으로 얼마나 납득할 수 있는가와 관련 있다”

시골에서 자란 분들은 어떤 논에서 벼가 잘 크는지. 물을 대는 것과 일조량의 관계 바람의 관계. 퇴비가 많으면 씨앗이 썩고 적으면 윤기 없이 나오게 되는 것들을 본능적으로 잘 알고 있고, 어떤 토양에서 발아가 효율적으로 일어나는지 그런 이치로 불임과 유산을 설명하면 쉽사리 납득을 한다. 과수원에서 봄마다 꽃을 따는 과수원 농부들은 다낭성 난소가 어떻게 불임을 유발하는지를 직관적으로 쉽게 이해한다. 꽃이 많이 달린 가지에 상품성 있는 과육이 맺히지 않는다는 걸 당연하게 알고 있는 것이다.

아마도 냉장고도 없이 반찬을 보관해야 했던 선조들은 바람과 통풍과 아궁이의 연기가 지나가는 길과 부엌의 높이에 따라 반찬이 어떻게 쉬 상하고, 쌀에 벌레가 잘 설거나 단단하게 한해를 넘기거나 하는지를 잘 알고 있었으리라. 또한 집과 부엌의 위치뿐만 아니라. 집 주변의 산마루나. 병풍림이나 집 앞의 개천이 집안의 습도와 반찬의 유통기간에까지 영향을 준다는 걸 체득하고 살았을 것이다.

작금의 아파트 생활에서는 부패의 원인은 밀폐가 되지 않아서 냉장을 하지 않아서 이고 공기가 탁해짐은 공기청정기가 가동되지 않아서 이다. 더 이상 아파트 주변의 환경과 환기와 배수가 주는 온도 습도 압력의 조화를 현대인에게 설명해서 납득시키기란 어려운 일이 되었다.

가상심장의 개발로 유명한 옥스퍼드 교수 데니스 노블은 그의 저서에서 시스템생물학을 기존 생명의학계에 설득하는 것이 얼마나 버거운 작업인가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한의학의 인체관과 언어를 이해시킨다는 것은 그것이 과학과 실험으로 증명되느냐의 문제보다, 그것의 진위 여부보다 얼마만큼 대다수가 경험적 직관적으로 연계지어 납득할 수 있을 것인가와 관여 되어있다. 생명의학계는 더더욱 그러하다.

로버트 베커는 그의 저작 <생명과 전기>의 서문에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오늘날의 생화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생명현상은 무시되거나 잘못 해석되었다. 사실상 과학적 의학은 중요한 과학의 원칙, 즉 새로운 자료와 정보에 의한 수정을 포기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물리학을 그토록 생명력 있게 만든 끊임없는 영역의 확대가 의학에서는 일어나지 않았다.”

고층빌딩 교각의 건축에 있어서 해류와 바람은 중요한 변수이고, 조선해양공학에도 유체 시스템은 중요한 변수이다. 건축 해양 환경 기상학자들에게 온도 습도 밀도 압력의 상호 영향은 보이지 않는 기능적인 것만으로도 충분히 인정 납득되는 것이며, 그들은 생화학을 근간으로 하는 생물의학자들보다 한옥의 구조와 지형지물 온도 습도가 보관 곡식에 미치는 관계에 대해 더 쉽게 이해한다. 한의학을 과학의 언어로 바꿀 때 ‘생명과학’의 언어일 필요가 있을까? 수학 물리학 지구과학 기상학 지리학은 이미 우리 한의학과 충분히 비슷한 언어와 사고체계를 가지고 있다.

장혜정/ 봄내한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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