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성의 진료의 기술(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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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성의 진료의 기술(39)
  • 승인 2009.11.18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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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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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 많이 보는 비결, 희망
진료의 기술(39)- 환자 많이 보는 비결, 희망

'긍정과 희망'의 노래에 환자 춤춘다
불안, 환자 영혼 잠식하는 ‘나쁜 독’
최악의 상황 가급적 거론하지 마라

모 은행 VIP들을 대상으로 건강강좌를 했던 적이 있습니다. 강의가 끝난 후 은행의 임원들과 식사를 하는 자리를 가졌는데, 자연스럽게 의료업계와 관련된 화제가 만발하였습니다. 은행 상무님께서 왈, "저희 시골에 정말 잘 되는 병원이 하나 있는데요, 제가 보기엔 그 원장님이 그렇게 잘 고치는 것 같지는 않은데 이상하게 병원이 잘 되더라고요. 제가 보니 원장님이 잘 하시는 것이 딱 한 가지 있습디다. 그 원장님은 진료가 끝날 때쯤 환자의 손을 꼭 잡으면서, '꼭 낫게 해드리겠습니다'라고 꼭 하더라고요." 상무님의 그 말에 저는 박수를 치면서 맞장구를 쳤습니다. 맞습니다. 그게 비결이었습니다.

저는 1993년도에 경희의료원 한방병원에서 인턴생활을 했습니다. 아침마다 교수님 및 담당 레지던트와 함께 회진을 하는 것이 인턴에게는 매우 중요한 시간이었죠. 교수님들의 다양한 회진 멘트를 구경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당시 꽤 많은 입원환자를 두었던 교수님의 회진 에피소드를 잊을 수가 없습니다.

교수님께서는 어떤 환자를 회진하건, 살짝 맥을 짚으시고는 "좋아지셨어요"라는 멘트를 항상 하셨습니다. 그런데 한 번은 담당 레지던트의 브리핑을 주의 깊게 듣지 않은 바람에, 전날 밤 중풍 발작이 재발한 환자에게, "좋아지셨어요"라는 말을 해버리는 웃지 못 할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보호자는 물론 수련의들도 얼마나 당황했는지 모릅니다. 교수님의 무성의한 회진 내용이야 별로 배울 것이 없었지만, 환자에게 전해야 할 한마디를 '긍정과 희망'으로 정리하셨다는 것은 크게 배울 점이었습니다. 중풍 환자들은 팔다리를 맘대로 가누지 못하고, 대소변도 남의 도움을 받아야만 하는 신세이기 때문에, 그 심경이 참담하기 그지없습니다. 매일 아침 회진시간은 그들에게 희망을 건네주는 시간이 되어야 마땅합니다.

의사들은 환자에게 만에 하나라도 있을 최악의 상황을 얘기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지금 시한폭탄과 같은 상황이라느니, 오래 살기 힘들다느니, 다음에 한 번 더 중풍이 오거나 또는 심장발작이 생기면 그땐 죽을 수도 있다느니, 저승사자가 바로 뒤에 와있다느니, 심지어 위중한 질환을 앓고 있는 남편을 둔 부인에게 과부가 될 수도 있다느니…. 실제로 저희 아버님이 심근경색으로 쓰러지셔서 큰 수술을 앞두고 있던 전날 밤, 담당 레지던트가 저희 가족을 불러 수술의 위험성과 사망 가능성을 아주 정 없이 사무적으로 설명하더군요. 저희 어머님이 그 앞에서 얼마나 우셨는지 모릅니다. 그 레지던트를 한 대 때려주고 싶었습니다.

환자의 가슴에 못을 박아버리고, 아주 심각한 상태인 것처럼 얘기하면 환자들은 다른 데로 갑니다. 자기가 생각하기에 그 정도는 아닌 것 같다고 생각할 수 있지요. 그리고는 다른 병원서 다시 진찰 받고서, 그렇게 심각한 상황은 아니라는 얘기 들으면, 이전에 만났던 원장을 사기꾼이라고 욕합니다.

환자를 많이 볼 수 있는 비결이 있습니다. 바로 나을 수 있다는 희망을 전하는 것입니다. 환자는 그런 얘기를 해주는 의사를 찾아다닙니다. 물론 무조건 낫게 해주겠다고 허풍을 치자는 말이 결코 아닙니다. 그러나 최소한 환자에게 독을 심지는 말아야 합니다. 불안은 환자한테 최고로 나쁜 독입니다. 희망에 관한 얘기, 다음 호에 한 번 전하겠습니다.

이재성/ 한의사. LK연구소 소장(lkmri.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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