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성의 진료의 기술(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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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성의 진료의 기술(37)
  • 승인 2009.11.04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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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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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시보를 주의하십시오

이재성의 진료의 기술(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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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 말 한마디 환자 죽음으로 몰수도
설명없이 ‘풍’ 자만 들어도 중풍 착각
부정적암시 환자에게 부정적효과 안겨

<치유의 예술을 찾아서>라는 책이 있습니다. 버나드 라운이라는, 노벨평화상을 받은 의사가 쓴 책입니다. 이 책에 나오는 일화를 나누고 싶습니다.

어릴 때부터 삼첨판 협착증을 앓고 있던 여자환자가 있었습니다. 아시다시피 삼첨판은 우심방에서 우심실로 넘어가는데 있는 밸브입니다. 심장 좌측에 있는 이첨판(승모판)이 좁아지면 폐울혈, 폐부종이 생기면서 호흡 곤란이 생길 수는 있어도, 삼첨판 협착은 그렇지 않습니다. 다만 삼첨판이 좁아지면 혈액이 우심실로 제대로 못 들어가고, 그래서 역류가 생기면 혈액이 고이면서 복수가 차거나, 다리가 붓게 될 수 있지요.

이 여자환자가 버나드 라운의 교수에게서 진료를 받았습니다. 환자가 어릴 때부터 계속 그 교수에게 진료를 받아왔기에 교수는 이 환자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날따라 그 교수가 바빴습니다. 그래서 서둘러 진료를 했지요. 교수는 좇아다니던 수련의들에게, “이 환자는 지금 TS다”라고 한 마디 툭 던지고는 다른 방으로 휙 가버렸습니다.

TS는 삼첨판 협착(Tricuspid Stenosis)의 약자입니다. 그런데 이 여자환자는 이 말을 듣고 불안해 하고, 초조해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더니 “이제 모든 게 끝났다”는 말을 떨며 중얼거렸습니다. 병실에 남아있던 버나드가 환자에게 왜 그렇게 불안해 하느냐고 묻자, 그 여자환자는, “교수님이 제가 TS라고 했어요”라고 대답했습니다. “네, 부인은 TS 맞아요”라고 버나드 라운이 말하자, 그 부인은 이제 울기 시작했습니다. 버나드는 당황하여 “아니 TS인데 왜 우세요?” 했더니, 그 부인 왈, “그건 말기(terminal stage)라는 말이잖아요. 흑흑.”

버나드가 환자에게 TS는 Tricuspid Stenosis의 약자라고 설명을 했지만, 환자의 상태는 점점 나빠졌습니다. 호흡이 거칠어지고, 빨라지고, 호흡 곤란이 생기고, 청진을 해봤더니 환자의 심장에서 잡음이 들렸습니다. 급하게 X레이를 찍어봤더니 폐부종까지 생겼답니다. 그래서 교수에게 보고를 했는데, 담당 교수는 “그 환자가 TS인데 왜 그런 증상이 생기나?” 하면서 별 일 아닐테니 나중에 가보겠다고 했다는 겁니다. 결국 담당의사의 적절한 조치가 늦어졌고, 환자는 불안 속에 죽게 되었다고 합니다.

환자는 원장님의 한마디, 한마디에 신경을 곤두세웁니다. 원장님이 고개만 갸우뚱 해도 마음 속에서 온갖 상상이 일어납니다. 원장님은 컴퓨터 화면이 흐려서 “이상하네”라고 혼잣말을 했을 뿐인데, 환자는 자신의 상태가 이상한 것으로 오해할 수도 있습니다. 두통이나 어지러움증의 원인을 설명하면서 '풍'이라는 용어를 쓰고 그것에 대한 설명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환자는 '중풍' 오는 줄 알고 두려움에 빠집니다.

의사가 던지는 말 중에 환자에게 가장 큰 공포를 남기는 말이 뭐라는지 아십니까? “큰 병원에 가보셔야 하겠습니다” 랍니다. 그저 단순히 더 자세한 검사를 받아 보시라는 말이었을 수도 있건만, 환자는 자신이 중병이라도 걸린 줄 알고 두려워 합니다. 그리고는 환자에게 노시보 효과가 나타나지요. 노시보는 플라시보의 반대현상입니다.

의도했건 안했건 간에, 의사가 던진 부정적인 암시는 환자에게 부정적인 효과를 만들어 냅니다. 환자의 이해 수준을 잘 고려하여 눈높이를 꼭 맞추시기 바랍니다.

이재성/ 한의사. LK연구소(lkmri.org) 소장
전 MBC 라디오동의보감 진행자

091104-칼럼-진료의기술-노시보-이재성.t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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