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성의 진료의 기술(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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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성의 진료의 기술(36)
  • 승인 2009.10.28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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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성

이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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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방통행은 금물
환자 궁금증 시원히 풀어줘야 평생 주치의
환자는 스스로 납득할 원인을 알고자 한다
한의학 용어 사용 환자 중심으로 풀어써야

원인을 말해주는 법

진료의 끝부분에서 환자의 문제를 정리해 줄 때 병명(혹은 변증명), 원인, 현재 상태, 이 세 가지를 분명히 해야 한다고 지난 호에서 말씀 드렸습니다. 이 중 원인을 말해주는 것이, 보통 기술이 요구되는 것이 아닙니다.

예를 들어, 결국 스트레스가 원인이었다고 환자에게 말해 주면, 어떤 환자는, “아, 그랬구나. 스트레스가 원인이었구나” 하면서 내심 안도의 한숨을 쉽니다. 그러나 어떤 환자는, “이런, 원인을 알고 싶다니까, 고작 스트레스가 원인이라고 하네” 하며 불만스러워 합니다.

한의학적으로 “습열(濕熱)이 원인입니다” 라고 하면, 그 한의학 용어를 잘 받아들이는 사람도 있고, “뭐 그런 원인이 다 있냐”고 하는 환자도 있습니다. 어떤 환자는 꼭 오장육부 중에 어디가 나빠서 그러는가를 묻습니다. 간이 안 좋아서 그렇다, 혹은 폐가 안 좋아서 그렇다는 식의 설명을 들어야 수긍을 하는 거죠.

어떤 환자는 간기능이 나빠서 그렇다고 원인을 설명하면 결코 그 선에서 만족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왜 간이 나빠졌는지 또 궁금해 합니다. 그러다 보면 결국 왜 태어났는가까지 들어가야죠. 그러나 우리는 인내를 가지고, 그 환자가 원인을 찾았다는 느낌이 드는 수준까지 같이 걸어가 줘야 합니다. 환자는 자기의 병을 찾는 길에서 원장님을 만난 겁니다. 함께 손 잡고 가주셔야 합니다.

원장님의 한의학적 사고 속에 있는 용어가 안 통하는 경우가 꽤 많을 겁니다. 원장님에게는 익숙하여, 습, 풍, 담음, 어혈 등 용어가 입에서 쉽게 나오지만, 환자의 귀에는 좀처럼 들어가지 않습니다. 환자는 서양과학 패러다임 속에서 공교육을 받은 21세기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더군다나 환자들은 저마다 상식의 배경이 다릅니다. 때로는 한의학 용어로 설명하는 것보다 동시대의 용어로 의사소통을 하는 것이 말이 더 잘 먹힙니다. 물론 한의학 용어를 환자가 이해하기 쉽게 잘 풀어주신다면야 금상첨화지만요. 언제나 환자 중심으로 생각하십시오.

원인에 대한 얘기를 풀어갈 때는 환자가 처한 환경적 요소, 심리적인 문제까지 따라가 보십시오. 그래야 그 환자의 진짜 문제를 끄집어 낼 수 있게 됩니다. 물론 초진 시간에 이 모든 것을 다 찾아내기는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환자와 만남의 횟수를 더해갈 수록, 그 환자에게 영향을 미치는 주변에 대해서 점점 더 알게 되셔야 합니다. 원장님은 그 환자가 느끼기에 ‘나에 대해 가장 잘 아는 의사’가 되셔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평생 주치의가 되는 길입니다.

환자의 얼굴 표정과 말의 느낌에 민감해 지십시오. “나는 필요한 말 다 해줬다”며 일방통행하지 마십시오. 환자의 느낌에 민감해 지면 평소 20분에 끝낼 것을 5분 안에 끝내고도, 환자가 무척 만족해 하는 의사소통을 하실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원장님의 속이 아닌, 환자의 속을 풀어줘야 한다는 것입니다.

변증구인을 통해서 환자의 문제점을 원장님이 알게 된 것은 어디까지나 원장님 편에서의 처방과 치료방향에 중요한 것일 뿐입니다. 환자에게 중요한 것은 환자 스스로 이해가 되는 원인, 그것을 아는 것입니다.

한의사. LK연구소(lkmri.org) 소장
전 MBC 라디오동의보감 진행자

091028-칼럼-진료의기술-변증명-이재성.t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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