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歷代名醫醫案169] 李惟聖(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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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歷代名醫醫案169] 李惟聖(4)
  • 승인 2009.10.21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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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일

김남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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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惟聖의 醫案(4)
李惟聖(1581-?): 李惟聖은 1518년에 출생한 후 선조 39년인 1606년에 丙午 增廣試에서 生員 3등 12위를 하여 찰방을 지냈고, 光海君 8년인 1616년에 丙辰 增廣試 乙科에 3위로 합격하여 관리로 성공한 인물. 의학에 뛰어나 논리정연한 醫論을 전개하고 있다.

紅腫案

○ 侍藥廳에서 다음과 같이 아뢰었다. “慈殿의 원래 증상은 大熱이 上升하지 않았고 戰掉寒縮의 증후도 또한 다시 일어나지 않았으니 가히 그 大勢가 이미 멈추었고 목적에 중요하게 여겨야 할 것은 咽喉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은 痛處가 붉게 부어올라 심해지고 있고 덜해지지 않고 浮氣도 項頸에서 발하고 있으니 만약 급히 치료하지 않는다면 그 기세가 반드시 고름이 잡히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될 것입니다. 臣等이 李惟聖 등 諸醫官과 柳後聖 등과 商議해 보니 모두 消散腫熱시킴에 鍼보다 좋은 것이 없다고 합니다. 만약 때에 맞추어 施鍼한다면 고름 잡히는 형세만은 막을 수 있을 것이고 만약 고름 잡히는 것을 막지 못한다 하더라도 熱氣를 消散시켜 痛勢를 감소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내부적 사정을 알지 못하므로 감히 확실하게 위로 청하지 못하겠습니다.” 이에 아뢴 말이 매우 합당하므로 그 말대로 하라고 답하였다. 慈殿이 침을 맞은 후에 二品 以上인 자들이 問安하니, 상태가 비슷하다고 대답하였다. 침을 맞은 다음에 菉豆粥을 올렸다. (<承政院日記> 인조 9년 1월23일 1631년)
○ 侍藥廳에서 다음과 같이 아뢰었다. 오늘 다시 다른 약을 쓸 것에 대해서 李惟聖과 諸醫들과 더불어 상세하게 商議하니, 모두 증세를 吉兆로 여기고 있습니다. 頭痛이 비록 감소하였지만 아직 상쾌하게 줄어들지는 않았고 咽喉의 증세도 한 가지입니다. 그러므로 잠시나마 이전의 약을 계속 사용하는 것이 마땅할 듯합니다.” 이에 이전의 약에 질렸으므로 다시 먹고 싶어 하지 않는다고 대답하였다. 이에 다시 다음과 같이 아뢰었다. “李惟聖과 모든 醫官들과 다시 商議하니 餘熱이 아직 상쾌하게 줄어들지 않았으므로 淸涼한 약물을 갑자기 중지시켜서는 안된다고 하였습니다. 凝神散이 胃氣를 수렴시키고 肌表를 청량하게 하는 공이 있으니, 이 약재를 한두 번 복용하고 지금의 분명한 증후를 보고 다시 상의하는 것이 합당할 듯합니다.” 이에 아뢴대로 하라고 하였다. (<承政院日記>인조 9년 1월25일 1631년)

설명: 慈殿(임금의 어머니)을 치료한 醫案이다. 慈殿인 인목대비는 紅腫으로 咽喉가 부어올라 浮氣가 頸項까지 이르게 되었고, 이에 침치료를 논의하여 시행하였다. 이틀 후에는 약물을 논하여 凝神散을 쓰게 된다.

辨證分析: 인목대비의 증상은 大熱上升, 戰掉寒縮 등의 發熱證과 火極似水의 증상이 함께 나타났지만 이 날은 증상이 경감되었다. 咽喉의 증상에 초점을 맞추어 고름이 잡히기 전에 消散腫熱시킬 것을 말한 것이다. 이틀이 지난 후에 頭痛이나 咽喉의 증상이 감퇴되기는 하였지만 餘熱이 남아있어 새로 약물을 의론한 것이다.

治療分析: 여기에서 침치료를 하였다고는 하지만 어떤 혈자리에 어떤 방법을 사용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그러나 혈자리가 나오지 않은 것으로 보아 放血法을 사용한 것이 아닌가 한다. <東醫寶鑑>에서는 “喉痺因惡血不散故也砭出惡血最爲上策”라고 하여 瀉血로 惡血을 제거하는 것이 상책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틀 후 사용한 凝神散은 傷寒差後不食에 쓰는 약으로서 傷寒後遺症을 치료하는 약물이다. <東醫寶鑑>에는 “內傷熱中收斂胃氣淸凉肌表”라고 주치를 밝히고 있고, 人蔘 白朮 白茯苓 山藥 各 一錢, 白扁豆 粳米 知母 生地黃 甘草 各 五分, 地骨皮 麥門冬 竹葉 各 三分으로 구성되어 있다.

김남일/ 慶熙大 韓醫大 醫史學敎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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