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규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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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규 칼럼
  • 승인 2009.10.07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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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학의 의료윤리와 ‘징사실론(徵四失論)’

음양이치 四診합참 여전히 주요 틀
윤리의식 전문가 사이비 구분 잣대

통합강의로 진행되는 한의전의 수업에 그렇게 못하지만, 매년 한의학 전공과목의 첫 강의시간에 반드시 <황제내경>의 ‘징사실론(徵四失論)’을 강의하였다. 네 가지 실수를 경계하는 내용인데 현대에도 어느 것 하나 소홀히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지난 25일 한의학미래포럼에서 한의사의 의료윤리에 대한 토론회 소식을 접하면서 ‘징사실론’의 내용이 새삼스러웠다.

첫째 음양역종(逆從)의 이치를 모르고 진료하는 것, 둘째 스승에게서 다 배우지도 않고 함부로 잡술을 쓰고 요상한 단어를 마치 도(道)처럼 포장하여 이름을 바꾸어 자신의 공(功)으로 여기고 침치료를 함부로 하여 후유증을 남기는 것, 셋째 빈부·귀천이나 타고난 상태와 몸의 한온(寒溫), 음식, 감정 등의 특성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것, 넷째 진료를 시작할 때 확인해야 할 사항인 스트레스, 음식, 주거환경, 다른 약의 복용 등을 질문하지 않고 맥(脈)만 잡고서 무슨 병이라고 말하면서 함부로 병명을 만드는 것이 그 내용이다. 한의학의 이론에서부터 임상에 이르기까지 늘 염두에 두어야 할 내용이다.

토론에서 이야기된 “명문화된 윤리는 관련 분야의 지식과 경험에 대하여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는 틀을 구성원과 대중에게 제공하는 것으로, 한의사에게 올바른 판단은 작게는 환자의 진료과정에서, 크게는 사회 속에서의 역할 가운데 존재한다”고 하였는데 ‘징사실론’의 내용은 이에 대한 답이 될 것 같다.

현대의 한의학 교육에서 양의학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에 한·양방 교육이 동시에 실시되는데 양의학에 경도되는 경우 양진한치(洋診韓治) 혹은 중서의결합(中西醫結合) 방식을 선호하는 경향이 심화되고 심지어 한의학의 기본이론에 대한 회의론마저 일면서 내적 체계의 혼란이 나타나는 상황에 대한 지적을 듣는 듯하다. 한의학적 진단과 치료가 서양의학적 진단과 치료와 맞서든 보완적이든 관계 없이 한의사는 한의학 이론과 임상의 전문가가 되어야 함은 기본이다. 따라서 음양의 이치, 환자의 전인적인 관찰, 사진(四診)의 합참(合參)은 오늘날에도 중요한 틀이 아닐 수 없다.

최근의 위기상황을 극복하는 활로를 개척하는 과정에서 특정인을 앞세운 프랜차이즈, 네트워크, 연구회라는 방식도 혹여 학계의 객관적 검증을 받지도 않은 채 자신만의 이름으로 마치 새로운 기술인 것처럼 함부로 이름을 짓고 환자들에게 후유증을 남기거나 치료율도 높지 않아 광고의 태풍이 지나간 자리에 동료 한의사들의 부담만 남기지 않는지 자기 반성이 필요한 시점에 ‘징사실론’의 지적은 되새길 만해 보인다.

최근의 우리 한의계는 교육에서부터 임상에 이르기까지 새로운 변혁기를 앞두고 있는 듯하다. 물론 경기가 직접적인 변혁의 계기가 되겠지만 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자기반성처럼 보인다. 이러한 자기 반성적 위기의식은 바로 전문가 집단이 가지고 있는 윤리의식의 발로이며 이 점이 바로 전문가가 사이비로부터 구분될 수 있는 근거가 되기도 한다. 이번 토론을 계기로 미래의 한의학은 어떠한 가치를 가지며 우리 시대의 한의사는 어떠한 가치관으로 무엇을 대상으로 치료 및 예방활동을 하여 국민건강과 인류에게 봉사하고 이바지함으로써 얼마나 정당한 대가를 획득할 것인지를 정립하는 기회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권영규/ 부산대학교 한의학전문대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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