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규 칼럼] 개원의 최고의 기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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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규 칼럼] 개원의 최고의 기쁨
  • 승인 2009.07.31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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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서 기초를 전공하고 있으면 다양한 개원의를 만날 수 있다. 개원한 동료도 경쟁자도 아니기 때문인지 자신의 사소한 경험까지 상세하게 이야기를 들을 기회가 많다. 예를 들어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처방집이나 진료기록, 난치성 질환을 치료하면서 겪은 양방의사와의 담판, 환자의 불신을 이겨내고 꾸준하게 한약을 복용시켜 치료가 잘된 케이스, 양약도 체질에 따라 달리 복용시켜 암 치료를 성공시킨 자신의 이론, 뜸 치료만으로 양방치료의 후유증을 해결한 임상경험, 민간의술을 체계화시켜 새로운 치료법으로 검증한 경험, 동의보감의 수치법을 그대로 재현하면서 경험한 대학교육의 개선점에 이르기까지 살아있는 경험을 듣는 날이면 개원의의 고충과 함께 개원의의 보람을 읽게 된다.

이야기를 듣다 보면 개원의의 가장 큰 고충은 외로움인 것 같다. 교과서적이지 않은 환자를 상대로 특히, 양방에서도 포기하여 예후를 짐작하기 어려운 환자 치료에서 겪을 외로움이 느껴진다. 원래 의학이라는 학문 자체가 진행형이고 불완전하므로 현재까지의 지식을 근거로 불완전한 치료를 해야 하는 모순이 있으니 이로 인한 외로움은 숙명적으로 봐야 할 것 같다.

그런데 더 큰 외로움은 자신의 뛰어난 경험과 기술을 함께 더불어 나눌 수 없는 상황에서 오는 것처럼 보인다. 왜냐하면 기초를 전공하고 있는 나에게 그동안 쌓였던 경험을 폭발적으로 쏟아내고, 간간히 주변 동료 한의사들에 대한 평가와 안타까움을 토로하는 모습에서 혼자만의 고심이 짐작되기 때문이다. 동료 한의사를 비롯하여 주변 의료인들과의 치열한 경쟁, 자신의 관심사에 대한 주변 동료들의 몰이해, 모든 한의사 수준이 함께 향상되지 못하는 데 대한 안타까움 등이 뒤섞인 하소연을 듣다보면 혼자 해결할 수 없지만 매일 고뇌하는 외로움이 엿보인다.

그 외로움에 대하여 나는 늘 논문을 쓰라고 답을 한다. 대학을 다닐 때 만들었던 족보처럼 다른 동료들이 복사하여 공부하고 싶은 논문을 쓰면 효율적으로 경험을 나눌 수 있고, 족집게 족보로 시험을 잘 치르고 난 뒤 고맙다는 인사를 들을 때처럼 논문은 외로움을 견디는 힘이 된다고 닦달한다.
하지만 개원의는 역시 고충보다는 보람이 더 큰 직업으로 보인다. 세월이 흐르면 어느새 환자들은 가족처럼, 혹은 팬클럽 회원이 되어 인간적 유대를 나누는 것 같다. 어떤 사람을 치료하였다는 이야기에서는 늘 뿌듯함이 전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개원의들은 감사의 인사를 받는 사람들에 대하여 유명 저널처럼 가중치(impact factor)를 부여하는 것 같다. 무릇 남녀노소, 빈부귀천, 지위고하를 가리지 말고 치료에 임하라고 하였는데, 광고시대를 사는 현대의 의료인들 대부분은 연예인, 국회의원, 검사, 회사임원 등 유명인 치료를 자랑한다. 물론 까다롭고 조심스러울 수 있는 그들을 상대로 제대로 치료를 하였다면 환자를 대하는 ‘의사소통론’에 통달하였다고 볼 수는 있지만 치료율과 무관함을 지적하고 싶다.

특히, 객관적인 평가를 통한 동료의 인정을 받으려면 치료 그 자체가 중요한데 사회적 지위에 따라 가중치를 부여한 한 두 사람의 치료경험을 과장한다면 평범한 이웃을 상대로 높은 치료율을 가지고 있는 동료로부터 인정받기 어렵다.
방송과 신문 때문에 온 나라가 들썩이는 지금 우리 한의사부터라도 언론에 기대어 자신의 경험을 홍보ㆍ광고하지 말고, 객관적으로 평가받는 논문으로 자신의 경험을 동료들과 나누길 기대해 본다. 아마 짐작하건대 개원의에게 최고의 기쁨은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으로 자신이 예측한 예후에 딱딱 맞아 떨어지게 환자를 치료했을 때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최전방 개원의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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