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성의 진료의 기술(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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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성의 진료의 기술(26)
  • 승인 2009.07.03 1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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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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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찰과 검사의 목적

진료실에서 환자를 진찰하는 가장 중요한 목적은 환자가 가지고 있는 문제와 그 원인이 무엇인지 찾는 것입니다. 그러나 단지 이것만 생각한다면 성공적인 진료로 마무리하기 어렵습니다. 진찰을 하는 또 다른 중요한 이유는 환자를 설득하기 위함입니다. 진단의 목적과 소통의 목적, 이 두 가지 측면을 항상 함께 생각해야 합니다.

환자는 이성을 통해서건, 느낌을 통해서건 원장님께 설득되어야만 원장님을 따릅니다. 어떤 원장님은 불문진단의 고수라서, 별 진찰을 하지 않아도 한 눈에 환자의 문제점을 간파하실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러나 진찰이라는 성의 있는 과정을 환자에게 보여주지 않으면, 환자는 어지간해서 잘 따라오지 않습니다.

마치 점쟁이처럼 간단한 단서 하나만을 붙잡고 환자의 문제를 진단해내는 것, 이것이 틀렸다는 뜻은 아닙니다. 원장님 편에서는 가능하지만, 환자 편에서는 이렇게는 설득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명심하십시오. 환자가 원장님 면전에서는 수긍의 몸짓을 하지만 정작 속내는 다를 수 있습니다. 환자는 집에 가서 곰곰이 생각해보고는 더 이상의 치료를 받지 않기로 결정할 수 있습니다. 취소해 달라는 전화를 걸어오기도 합니다. 아줌마와 아저씨가 다르고, 도시인과 시골 사람이 다릅니다. 원장님의 스타일만을 고집하지 마십시오.

양방의료 시스템에는 다양한 진찰 도구와 검사 방법들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X레이, MRI 등 눈으로 보여주는 영상진단법이 있고, 또 각종 다양한 항목의 혈액검사 등을 시행합니다. 물론 환자는 사진을 판독할 수도 없고, 그 검사 결과의 의미 또한 제대로 듣지도 못합니다. 그러나 의사가 그 검사 결과를 근거로 자신의 치료 지침을 성실히 따라야만 한다고 하면 환자는 순순히 의사를 따릅니다.

마치 점쟁이처럼 환자의 문제점을 말해주는 것인가, 아니면 근거와 자료를 가지고 이해시킬 것인가? 이 두 가지 기술 사이에서 줄타기를 잘 하셔야 합니다. 환자도 알고 있고, 느끼고 있는 ‘증상’에 대해서는 점쟁이처럼 알아 맞히셔도 됩니다. 그러나 반면, 환자는 전혀 모르는 ‘변증’ 혹은 ‘병인’을 별 진찰도 하지 않은 채 선언해버리면, 환자는 수긍하기 어렵습니다.

원장님이 환자를 제대로 치료하기 위해서는 그 환자가 원장님을 신뢰하고 따라주어야만 합니다. 환자를 치료할 수 있는 실력은 충분히 갖추었지만, 환자로 하여금 믿고 따르게 만드는 능력을 갖추지 못하면 원장님은 결국 그 실력발휘를 할 기회를 잃게 됩니다. 물론 환자 편에서는 치료 받고 나을 수 있는 기회를 잃게 됩니다.

그러므로 환자를 설득하기 위한 목적의식을 견지하고 진찰과 검사를 하십시오. 설득의 목표는 의사와 환자가 모두 좋은 기회를 얻기 위함입니다. 망문문절로 요약되는 한의학의 전통적인 진단법은 물론이거니와, 각종 이학적 검사, 그리고 새로 개발된 다양한 진단기기들을 적절히 사용하는 것은 환자를 얻는 데에 큰 도움이 됩니다. 다만 환자와 나누는 느낌을 항상 염두에 두십시오. 자칫 진찰과 검사를 매개로 이루어지는 대화는 딱딱한 커뮤니케이션만 담겨 사람 냄새를 잃기 쉽습니다.

이재성
한의사, LK의료경영연구소 소장
(w ww.lkmri.org)
前 MBC 라디오동의보감 진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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