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성의 진료의 기술(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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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성의 진료의 기술(25)
  • 승인 2009.06.26 1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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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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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의 유형을 파악하라②

지난 호에 이어 환자의 커뮤니케이션 유형을 파악하는 것의 중요성에 대해서 다뤄보겠습니다. 앞으로의 치료계획에 대해서 환자에게 말해주기 위해서는 환자가 프로세스를 중시하는 타입인지, 아니면 비전을 중시하는 타입인지를 살피는 것이 중요합니다. 원장님이 제시하는 치료계획에 환자가 동의를 해야만 진료가 성공적으로 마무리됩니다.

들어와서 인사를 나누기 무섭게, 자신의 증상이 어떻게 시작되었고, 왜 생겨났고, 지금은 어떠한지를 모조리 말하고 싶어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환자는 병자호란 때부터 시작합니다. “제가요, 10년 전에 무슨 일이 있었냐면요, 그러니까 그게 일천구백구십오년도 10월5일이었습니다…”로부터 시작해서, 몇 년도 몇 월 며칠에 어느 병원에 갔었고, 담당 의사 이름, 처방받았던 약 이름, 치료기간까지 기억하면서 그동안 지나간 히스토리를 세세하게 말씀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이거 어떻게 해야 합니까? 다 들어줘야 합니까? 원장님은 이럴 때 어떻게 하십니까?
“아, 잠깐만요! 이제부터 제가 묻는 말에만 대답하세요!” 이렇게 말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으실 겁니다. 우리가 듣고 싶은 건, 그래서 지금 제일 불편한 게 뭔지, 그래서 오늘 뭘 고쳐달라고 온 건지, 이거잖아요.

그런데 환자의 말을 딱 끊고, 그래서 결론이 뭐냐부터 물으면 환자는 속이 풀어지지 않습니다. 진료실 밖을 나서서는 원장이 자기 얘기를 다 듣지도 않고 대충 진료했다고 생각합니다. 이 환자는 과정을 중시하는 프로세스형(process type)일 수 있습니다.

다 들어줘야 합니다. 그래야 성의 있고, 좋은 의사라는 느낌을 줄 수 있습니다. 지금껏 그 환자는 여러 병원을 두루 거치면서 ‘비호감’이라는 냉대를 받아왔는지도 모릅니다. 말 많은 환자 누가 좋아합니까. 그러나 환자는 어쩌면 그동안 냉대로 인한 거절감 속에 상처받으며 이곳저곳을 돌고 돌아 결국 우리 앞에 앉게 되었는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일단 그분을 품어줘야 합니다. 다만 주구장창 하품하면서 듣기만 하면 안 되고요, 적당히 맞장구치면서 환자가 내용의 줄기를 찾아가도록 교통정리를 해줘야 합니다. 그게 바로 대화의 기술입니다.

프로세스를 중시하는 사람은, 그래서 앞으로 자신을 어떤 단계를 거쳐 차근차근 치료할 수 있겠는가에 관심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에게는 지금까지 얘기한 바를 딱 정리해주고, 귀납적으로 결론을 맺어주고, 앞으로의 치료계획에 대해서 번호를 매겨가면서 설명해드려야 합니다. 그래야 환자는 만족해하고 좋은 느낌을 갖게 됩니다. 그냥 무조건 3개월 약 먹으라는 식의 두루뭉술한 계획에는 불신감을 갖습니다. 이런 환자분들은 의외로 충성도가 높고, 다른 환자를 소개하는 능력도 강합니다.

반면 비전형은 예후가 어떤가, 자신을 낫게 해줄 수 있는가, 없는가에 집중합니다. 들어와서 긴 소리 안합니다. 넥타이를 풀어 제쳤거나, 자유분방한 옷매무새로, “그래서 나을 수 있어요?” 이게 가장 중요한 관심사입니다. 이런 분들에게는 병의 원인에 대해서 자세하게 설명해주는 것이 꼭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병이 나을 수 있다는 희망과 그로 인한 유익을 설명하는 데 비중을 두면, 환자는 원장님의 치료계획에 쉽게 동의할 것입니다.

이재성
한의사, LK의료경영연구소 소장
(w ww.lkmri.org)
前 MBC 라디오동의보감 진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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