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점] 한약재이력추적관리제 도입의 전망과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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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한약재이력추적관리제 도입의 전망과 평가
  • 승인 2009.06.12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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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약 품질향상·위해성 논란 돌파구 기대
도매상 자가규격 폐지·제조업 기준강화 선행돼야

안전성 문제가 발생했을 경우 원인을 규명하기 위한 조치의 하나로 한약이력추적제에 관한 법률안이 발의됐다.

■ 위해 한약재 문제 돌파구

4일 윤석용 의원(한나라당)이 대표 발의했고, 1일 전혜숙 의원(민주당)은 한약재 원산지 위·변조를 막기 위한 ‘한약재 이력추적제 도입을 위한 입법공청회’를 열어 여·야가 이 법률안에 반대하고 있지 않아 국회 일정만 순조롭게 진행될 경우 입법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위해 한약재 문제가 반복적으로 여론의 도마 위에 올라 곤욕을 치르고 있는 한의계로서는 하나의 돌파구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위해 가능성이 있는 한약재가 발견되면 이를 차단하고 대처할 수 있는 수단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연 현실성이 있을까라는 질문에 대한 업계의 의견은 대부분 부정적이다.
윤석용 의원이 대표 발의한 법률안에는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한약을 생산·수입·제조·유통하는 자는 식품의약품안전청장에게 등록해야 한다”고 규정돼 있다.
생산만 빼고 수입·제조·유통은 이미 한약재 유통관리관련 규정에 의해 관리되고 있다. 굳이 새로운 규정을 만들 필요가 없을 정도로 규정자체는 허술하지 않다.
다만 이 법이 확정·시행되면 한약재이력추적제에 대한 경비를 정부에서 지원받을 수 있어 국산한약재 생산에 조금이나마 숨통이 트일 수 있을 전망이다.
이력추적제를 한다고 해도 확실한 통제가 불가능하다는 게 문제다.

■ 식품 둔갑·보따리상 차단이 관건

중국 보따리상, 일명 따이공이 하루에 국내로 들여오는 물품은 5톤 정도로 추정된다. 이중 참깨 등 식품류가 많은 량을 차지하고 있지만 한약재도 만만치 않다. 현재 중금속 카드뮴 문제로 정상적인 통관이 어려운 한약재는 모두 이쪽으로 들어오고 있다는 게 관계자의 말이다.
중국도 한약재 안전성 관리를 하고 있으나 우리와는 차이가 있다. 중국은 약 6개월 전부터 한약재를 수출했는데 상대국 검사에서 불합격해 반품되면 해당 업체에 강력한 행정처분을 하고 있다. 덕분에 우리나라 업체들은 반품도 못하고 소각해버릴 수밖에 없는 신세가 됐다. 그리고 카드뮴 기준치를 넘는 약재는 거래조차 하지 않는다.

중국은 이렇지만 않다. 광메이약업주식회사의 경우 직원이 2000명 수준이며, 한약재 제조기술 수준도 우리보다 훨씬 앞선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포장단위를 10g에서 1kg까지 판매하고 있다는 것으로 보아 이 업체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물론 이런 선진적인 업체는 전체 한약 시장의 10%도 안 된다.
안전성 검사기준은 우리와 거의 같지만 대상한약재가 몇 가지 안 돼 의미가 없다고 볼 수 있다. 규정상 중금속은 구리까지 포함시켜 우리보다 엄격하지만 대상품목은 감초·금은화·단삼·백작·서양삼·황기 등 6 품목이다. 잔류잔류농약 검사 대상약재도 감초·황기뿐이다.
중국은 한약재를 쓰자는 데 목적이 있어 현실을 그대로 인정하고 있는 반면, 우리나라는 쓰지 말자는 식이라는 지적이다.

■ 수급조절제도 폐지 딜레마

한약이력추적제도는 현실적으로 국산 한약재만을 대상으로 할 수 밖에 없다. 수입→제조→도매→한의원에 대한 유통경로는 이미 확인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수입업체가 어떻게 생산된 약재를 구해왔는지 확인이 되지 않는 상태에서 수입한약재까지도 이력추적제 대상에 넣는다는 건 의미가 없다고 볼 수 있다.
같은 품목의 수입과 국산한약재가 동시에 유통되는데 이력추적제가 얼마만큼 위력을 발휘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현재 구기자·당귀·맥문동·작약·산수유·오미자·천마·택사·천궁·황기·백수오·시호·지황·황금 등 14개 품목이 수급조절품목으로 지정돼 수입제한을 받고 있다. 그러나 대형 할인마트의 구기자·오미자 가격과 비교하면 이 한약재가 정말 국산인지 의심스럽다. 제조업체들은 백수오·시호·지황·황금 네 가지 품목은 국내에서 자급할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나머지 부족한 양은 다 식품으로 들어와 한약재로 팔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수급조절제도는 일부 업체의 부당이익을 챙기는 수단으로 전락했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지배적 의견이다. 그렇다고 수급조절제도를 당장 없애자는 것도 문제가 있다.
지황·당귀·황기 등이 수입돼 들어오는데 한약이력추적제를 한다고 국산이 과연 경쟁력을 가질 수 있을지 의문이다. 한의사는 가격이 비싸 국산한약재를 쓰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나올 빌미만 제공할 가능성이 있다.

국내에서 한약재는 일부 품목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부수 작물로 재배되고 있다. 보건복지부에서 이력추적제 시행에 필요한 경비를 지원할 수 있다는 안을 법에 넣는다고 해도 이러한 영농규모와 인건비로는 수입산과의 가격 차이를 극복하기 어렵다.
따라서 허울 좋은 이력추적제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불법행위의 소지를 차단하는 것이 필요하다. 우선 한약도매업소의 국산한약재 자가 포장 폐지, 한약제조업소에 대한 시설기준 강화가 선행돼야 한다. 한약의 제조 유통관리 시스템만 갖춰지면 한약재 이력추적제를 대체할 수 있다고 볼 수 있다.

최종소비자인 국민이 직접 선택해 구매를 하는 콩나물과 의약품인 한약재와는 의미가 다르다. 규격화돼 이미 정보를 알 수 있는 한약재에 또 다시 이력을 추적하겠다는 것은 이론적으로는 좋은 발상이나 어쩌면 부작용만 가중시킬지도 모른다. 의료인에 대한 불신을 조장하고, 결국 치료효율 저하로 귀결될 수도 있다.
한약재이력추적제의 현실적 가능성과 한약재 품질향상에 미치는 효과를 객관적으로 평가해야 할 시점이다.

민족의학신문 이제민 기자 jemin@mj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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