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歷代名醫醫案160] 李馨益의 醫案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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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歷代名醫醫案160] 李馨益의 醫案①
  • 승인 2009.05.29 1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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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馨益(인조년간) : 조선 침구술의 전통을 잇는 鍼灸專門醫의 한 사람. 충청도 대흥 출신으로 인조 10년(1632년)에 內醫院의 추천으로 서울에 초청되어 인조의 질병을 침구술로 치료하였는데, 燔鍼術로 유명하였다.

■ 제목 : 中氣極虛案

■ 내용 : ○ 藥房都提調 金瑬, 提調 崔鳴吉, 副提調 李景憲 등이 다음과 같이 아뢰었다. “臣等이 入侍한 醫官들의 말을 들어보니 임금께서 中氣가 極虛하여 駝酪粥을 계속해서 드시지 않을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春間에 傳敎를 停止하였기에 내일부터 다시 올리고자 합니다. 감히 아룁니다.” 이에 알겠다고 대답했다. (『承政院日記』 1633년 인조 11년 10월 5일)

○ 午時에 임금께서 養和堂에서 침을 맞았다. 藥房提調 崔鳴吉이 閤門밖에서 承旨 李景憲, 編修官 柳昌文, 假注書 尹瀁, 記事官 兪榥이 窓外에서 入侍하였다. 御醫 申得一, 鍼醫 李馨益, 柳連이 入侍하여 執鍼하였다. 李馨益은 間使左右二穴, 人中一穴, 手大指端(일곱글자 빠짐) 大淵二穴, 申脈二穴, 風(몇글자 빠짐), 承漿一穴, 大陵二穴, 上星一穴, 曲池二穴, 內庭二穴 등에 침을 놓았다. 申得一이 내일에 또 계속 침을 맞으시겠냐고 묻자 임금께서 하루 사이를 두고 맞겠다고 말씀하셨다. (『承政院日記』 1633년 인조 11년 10월 6일)

■ 설명 : 李馨益이 인조의 中氣不足을 치료하기 위해 침을 놓은 醫案이다. 조선 중기 침구학의 참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자료이다. 李馨益이 놓은 혈자리를 통해 이 시기 침구학의 학술적 경향과 인조의 질병의 양상을 아울러 파악할 수 있다.

■ 辨證分析 : 인조년간에 駝酪粥은 脾胃虛弱을 치료하기 위해 수차례 사용되었다. 1641년(인조 19년 2월 7일), 1644년(인조 22년 10월 3일)의 기록에도 駝酪粥을 脾胃氣의 不足을 치료하기 위해 사용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東醫寶鑑·湯液』에서 酪(타락)에 대해 “味甘酸無毒止煩渴熱悶心膈熱痛, 療身面上熱瘡肌瘡”이라고 설명하고 있는데, 이를 통해 인조의 평소 질병에 대한 일부 내용을 판단할 수 있다. 그리고 아래에서 치료를 분석하면서 알 수 있듯이 인조는 정신적인 고통으로 신음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 치료분석 : 李馨益이 시술한 혈자리에 대한 기록만 있고 그 침법에 대한 내용은 나오지 않아서 그가 창안한 燔鍼術을 여기에 사용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글자가 파손된 부분이 많아서 몇 개의 혈자리가 누락되어 있지만 사용하고 있는 혈자리는 間使, 人中, 大淵, 申脈, 風府, 承漿, 大陵, 上星, 曲池, 內庭 등이었다. 여기에 나오는 혈자리는 대체로 十三鬼穴에 속하는 것들이 많다. 十三鬼穴은 人中(鬼宮), 少商(鬼信), 隱白(鬼壘), 大陵(鬼心), 申脈(鬼路), 風府(鬼枕), 頰車(鬼床), 承漿(鬼市), 勞宮(鬼窟), 上星(鬼堂), 會陰(鬼藏), 曲池(鬼腿), 海泉(鬼封) 등이다. 이 13개의 혈자리 가운데 7개를 취하고 있고 나머지 덧붙인 間使, 太淵, 內庭 등도 정신계통의 질환을 주치하고 있는 것을 볼 때 아마도 인조는 이 시기 정신적 충격으로 고통받고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金南一
경희대 한의대 醫史學敎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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