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혜정 칼럼] 아름다운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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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혜정 칼럼] 아름다운 선택
  • 승인 2009.05.15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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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대한민국의 한의사이며 젊은 한의사이며 개원한의사이고 여한의사이다. 나는 대한한의사협회 소속의 한의사이나 청년한의사회의 회원도 아니며 개원한의사협회의 회원도 아니며 여한의사회의 회원도 아니다. 내가 대한한의사협회의 회원이 된 경위는 의료법에 명시된 의료인으로서 마땅히 협회가입의 의무가 있기 때문이고, 이는 내가 국가로부터 면허증을 받는 순간부터 국가가 부여한 의료인으로서의 권리획득과 함께 자동으로 부여된 나의 의무이다.

나는 청년한의사회에 가입해야 할 의무도, 개원한의사협회에 가입해야 할 의무도, 여한의사회에 가입해야할 의무도 없다. 더불어 나는 소아과 진료도 하고 피부과 진료도 하지만, 한방소아과학회나 피부과학회에 가입해야 할 의무는 없다. 물론 내가 원하면 가입할 수도 있고 소정의 권리를 누리며 의무를 행해야 한다.

이는 청한도 개원협도 모두 아는 사실이다. 청년한의사회가 “너는 청년이니 당연히 청한의 회원이다”라고 하지 않고 개원협 역시 “너는 개원을 했으니 개원협회비를 내라”고 하지 않는다. 그러나 유독 이 점에 있어서 여한의사회는 많은 혼란에 빠져있는 듯하다. 그것은 ‘여한의사’라는 명칭이 주는 차별성이 선천적인 것에 있으며 동시에 여한의사회가 한의사회 내에서 어떠한 필요성과 명분을 가지는지 스스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음을 반증하는 예라 할 수 있다.

명시하건대, 법리와 정관상 대한민국의 여한의사가 여한의사회의 회원이 되어야 할 그 어떤 당위성도 명분도 없다. 당연히 여한의사라는 이유만으로 여한의사 회비를 납부해야 할 필요성도 전혀 없다. 이 점은 일찍이 본인의 제기로 여한의사회 측에서 여한의사들에게 회비독촉문건을 보낸 것에 대한 사과를 한 사안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류은경 여한의사회장은 이번 여한의사회 대의원총회에 대한 글에서 “대의원 여러분은 여한의사 1700여명을 대표하는 임무를 갖고 계십니다”라는 표현을 함으로써 여한의사회의 위치가 무엇인지 역할이 무엇인지 망각하는 듯한 발언을 하고 있다.

여한의사회의 대의원은 1700여한의사를 대표하지 않는다. 1700여한의사 모두가 여한의사회원이 아니며, 그들 대의원이 전체 여한의사들에 의해 옹립되지 않았기 때문에 아무런 대표성도 가지지 못한다. 단지 여한의사회의 회원들의 대표일 뿐이다.
왜 ‘여한의사회’라는 명칭을 걸고도 전체 여한의사를 대표하지 못하는 현실에 이르렀을까?

간단하다. 여한의사들에게 ‘여한의사회’가 절실히 필요한 단체가 아니기 때문이다. 개원협도 청한도 그들만의 색이 있고 특징이 있으며 그에 동참하길 원하는 사람들이 회원이 된다. 청한은 한의계의 정치적인 목소리, 진보적인 목소리를 담당하며 사회참여를 하고 있다. 개원협은 개원가의 매뉴얼 약재정보 개원가의 유행강의 소개 등의 역할을 한다. 그리고 그것이 필요한 사람은 회원이 되고 권리를 누리고 의무를 이행한다.

여한의사회의 존립근거는 어디에 있을까? 불과 몇 십 년 전만 해도, 여자한의사는 드물었고 여한의사는 간호사로 오해받는 일도 있었다. 여한의사회의 존재는 ‘여자한의사들이 있다’라는 사실을 대내외적으로 알리고 공식적인 행사(가령 봉사활동, 여성단체모임의 참여) 등을 통해 존재를 알리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존재가치가 있었고 한의사협회 내에서 보호하고 지원할만한 가치가 있는 단체였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이제 여한의사의 존재는 많이들 알고 있고, 여한의사회를 통해 여한의사의 위상이 알려지는 시대도 아니다. 단지 정기적 세미나와 여한의사회장배친선골프대회로 명맥만을 유지하며 마땅히 존립근거를 찾을 수 없게 되었다면, 자진 해체하는 것도 여한의사와 한의계에게 있어 아름다운 모습일 것이다. 가야 할 때가 언제인지 알고 가는 자의 뒷모습이야말로 참으로 아름다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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