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균 칼럼] 스승님 회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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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균 칼럼] 스승님 회상
  • 승인 2009.05.08 1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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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의 날이 다가오니 손잡고 가르쳐 주시던 스승님의 생각이 나서 회상을 해 봅니다.
의대 본과 4학년, 처음 임상 실습을 나갔을 때 나는 내과부터 돌게 되었다. 내과는 여러 파트로 나뉘는데 한 파트가 6명 정도로 구성되고 거기서 또 나누어 외래와 병실 중환자실 등등을 돌게 된다. 나는 외래부터 하기로 되었는데 실습 첫날에 과장님 방으로 가니 엄청 긴장되었다. 첫 환자가 아주 예쁜 젊은 아가씨였는데 느닷없이 교수님의 말씀이 떨어졌다.

“나 선생, 진찰 좀 해” “예?! @#!??.. 아.. 예!” 같은 또래의 젊은 여자 환자를 옷을 다 벗기고 진찰을 해야 한다는 것이 그렇게 진땀나는 일인 줄은 몰랐다. 아무튼 정신없이 머리끝부터 얼굴 목 어깨 겨드랑이 팔 가슴 배 골반 서혜부 다리 발까지 전부 진찰을 꼼꼼히 했다. “무슨 병이야?” “예!!??” 교수님께서는 보일 듯 말 듯 웃으시면서 다시 진찰을 하시고는 처방을 하셨다. “진찰은 책에 있는 대로 처음부터 끝까지 자세히 해야 하는 거야!” “알겠습니다.” 그날 하루 외래에서 있는 동안 교수님께서는 언제나 책에 있는 순서대로 진찰을 하는 모습을 보여주셨다.

의대의 임상 실습 시에는 침대 곁의 강의(bed side teaching)라고 해서 강의 소재가 될 만한 환자 케이스를 골라서 교수님과 함께 학생강의를 위한 회진(round)을 한다. 이때 경험한 것은 평생 잊지 못하는 산교육이 된다. 한두 가지 예를 들어 보자.
심장파트를 돌 때의 일이다. 이첨판 폐쇄부전(mitral regurgitation)으로 심장에 잡음이 들리는 환자였다. 4년차 의국장의 프리젠테이션이 끝나고 교수님의 말씀이 이어졌다.

“이 환자는 Grade2의 수축기 잡음(systolic murmur)이 들린다. 모두 들어 봐라.” 우리는 각자 자기의 청진기로 들어 봤지만 들을 수 없었다. 우리가 안 들린다고 하니까 “그래? 내가 잘 못 들었나? 의국장 한번 들어보게.” “Grade2의 수축기 잡음이 들립니다.” 의국장의 말이었다. “그래? 이상한데…어디 자네 청진기 한번 줘 보게” 하더니 내 청진기로 들어보셨다. 당시 내 청진기는 의료기 상에서 산 싸구려 청진기였다. “흠, 이것은 좀 문제가 있는데. 이것은 청진기가 문제다”고 하셨다.

내가 용기를 내서 “교수님 청진기를 좀 빌려 주십시오” 해서 운 좋게 교수님 청진기로 청진을 해보게 되었는데, 정말 Grade2의 수축기 잡음이 ‘슉~! 탁 슉~! 탁’ 하면서 잘 들렸다. 교수님 말씀은 대략 Grade2 정도의 차이가 난다고 하셨으니 우리 청진기로는 거의 안 들릴 수밖에 없었다. 교수님의 청진기로 들어본 심장의 잡음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교수님 중에 유명한 간장학자가 계셨는데 유머도 많으시고 언제나 맘씨 좋은 웃음을 띠고 있으시면서 환자에게도 항상 자상한 진료를 하셨다. 임상 실습에도 항상 분명하고 정확하게 알려주셔서 우리는 항상 감동을 받았다. 간계내과 학생 회진 때 일이다. 병실로 들어가면서 교수님께서 “나 선생, 거기 불 좀 켜, 환자 눈 좀 보게(학생들에게도 student doctor라고 해서 선생이라는 칭호로 부르셨다).” 나는 “교수님, 눈은 자연광으로 봐야 하니까 커튼을 열겠습니다”고 했다. “어, 눈치 챘네? 그래 맞았어. 눈이 icteric 한지(황달이 있는지) 아닌지는 자연광으로 봐야 해, 잊지마!” 이렇게 재미있게 강의를 해서 잊지 않도록 하셨다.

“이 환자는 간염 환자인데, 간이 종대(enlargement)되어 있어서 늑골 하연에서 2FB(finger breath) 만큼 만져진다. 모두 만져 보도록 하라” 고 하셨다. 우리는 다들 열심히 해보았지만 전혀 알 수 없었다. “만져지나?” “안 만져지는데요….” 그러자 교수님께서 내손을 잡고 “자, 보자. 이렇게 하고 숨을 들이 쉬세요. 내쉬고 하면서 자~!! 만져지지?” “네!! 2FB 만져집니다.” 분명하게 손을 탁 치는 간의 촉감이 전해졌다. 이때의 감동 역시 지금까지 잊지 못한다.

“그런데 그 간이 단단한 정도는 어떻지?” “네, soft합니다.” “그래, soft는 입술정도, firm은 코끝 정도, hard는 이마 정도의 단단함을 말하는 거야, 표현을 정확히 해야 뜻이 서로 통하는 거다”라고 입술, 코끝과 이마를 차례로 가리키면서 말씀하셨다. 몇 십 년이 지난 지금에도 이때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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