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현 칼럼] 한약의 내재적 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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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현 칼럼] 한약의 내재적 가치
  • 승인 2009.04.24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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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아동을 치료하다 보면 주소증인 언어지연, 주의산만뿐만 아니라 밥도 이전보다 더 잘 먹게 된다. 감기가 덜 걸리고 짜증이 줄거나 안색이 좋아지는 한약의 긍정적인 효과를 경험할 때가 많다. 하지만 이런 과정은 쉽지만은 않다. 처방에 앞서 진단의 과정도 중요하다. 과거 병력, 부모 면담, 한의학적 망문문절, 각종 검사 자료의 검토, 증상과 호전 여부 평가 등을 검토해야 될 때가 많다.

뿐만 아니라 진료실에서는 한약에 대한 까다로운 질문과 걱정의 소리를 들을 때도 많다. 한약을 오래 먹어도 과연 간이나 몸에 괜찮은지? 중금속의 문제, 왜 한약은 보험급여가 안되고, 이렇게 비싼지? 약 맛이 쓰고 거북스러운데, 과연 잘 먹을 수 있을지, 거기에다 가끔 언론에 한약에 대한 부정적인 뉴스가 도마 위에 오르면 더욱 난감하다.

갈수록 한약도 그 안전성, 효과성에서 엄격한 검증을 요구받고 있다. 특정 질환에 대한 일정한 치료효과를 위해 전혀 알지 못하던 미지의 물질에서 개발된 의약품은 어떤가? 제약회사의 자본과 연구를 토대로 투여되는 의약품은 동물실험부터 임상 1상, 2상 3상 등의 임상시험, 시판 후 이상반응 등을 거쳐야 한다. 그러고도 치명적인 부작용이 뒤늦게 보고되어 시판 중지되어 사라지기도 한다.

한약도 갈수록 근거중심의학(EBM)의 관점에서 보다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연구와 임상적 근거가 늘상 지적된다. 무작위 이중맹검(RCT), 체계적 문헌고찰(Systemic review), 한약의 안전성 확보 등 넘어야 할 산이 아직 많다. 침구치료에 비하면 복합처방을 가지고 임상연구 하는 일은 쉽지도 않고, 개별 한약재 문제도 산더미처럼 문제가 많아 보인다. 더구나 가장 많이 쓰는 첩약 등은 보험급여가 전혀 안 된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제약산업의 자본력을 바탕으로 과학적 연구의 성과, 보험급여의 혜택을 받는 의약품에 비해 열악한 한약이 생존하는 것은 내재적인 가치가 있어서이지 않을까?

수 천 년 간의 치열한 임상경험과 한의학적 氣味이론을 토대로 처방되는 한약은 단순히 개별 한약재의 조합은 아니다. 방제는 병증에 대한 진단행위와 치료관이 내재된 전문적인 한방의료행위의 결과인 것이다. 한의사가 환자의 병증에 쌍화탕을 처방했다는 것은 거기에 맞는 진단과 치료방식을 결정했다는 것으로 쌍화차를 끓여 먹는 것과는 다른 영역이다. 약방의 감초, 생강조차도 때론 약이 되지만, 오남용 되었을 때는 독이 될 수도 있다. 여러 질환에 동일한 약제가 쓰일 수도 있고, 한 가지 처방도 다양한 질환에 활용되기도 한다.

치료효과도 단일증상뿐만 아니라 다방면에서 역동적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그러기까지는 개별 한약제의 조제, 가감, 수치법제, 탕전, 환제, 산제로 투여되는 과정은 숙련된 전문적인 지식과 경험의 결과이다.
그러므로 한약의 가치를 평가할 때는 개별 한약재 못지않게 한방의료행위결과로서의 임상적 성과를 주목해야 할 것이다. 안전성문제, 효과성, 임상연구, 진료비 수가체계 등에서도 이런 점이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최근 한약복용실태에 대한 환자들의 인식도 연구를 살펴보면, 한의사에 의해 처방된 한약효과에 대해서 대체로 만족해하는 편이다. 안전성에 대해서 한약의 부작용경험도 생각보다는 그리 많지 않았고, 위장장애 등도 가벼웠다고 한다. 다만 비급여로 인해 가격에서 부담을 느낀다고 한다. 매일 한약을 처방하는 임상가의 입장에서는 한약에 대한 불신과 문제점 못지 않게 한약에 잠재된 지적 자원과 임상에서의 내재적 가치가 바로 재평가되길 바란다. 오랜 임상경험을 보건대, 한약은 국민건강증진과 치료에 분명히 효과적인 도움을 주고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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