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대 1961~2003 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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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대 1961~2003 展
  • 승인 2003.03.19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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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렬한 한국적 추상의 미학

그림설명-‘생성시대’ 1966

한국 현대미술의 선두격인 추상화가 김형대(67) 화백이 3월 9일까지 평창동 가나아트센터(02-720-1020)에서 대규모 회고전을 갖는다.

식민지 시대에 태어나 6.25전쟁과 산업화의 질주 과정을 겪어온 화백은 고비마다 부닥친 방황과 좌절, 울분과 저항을 전시회라는 틀을 부수고 길거리 ‘벽’에다 퍼부었다.

1960년과 1961년 전위적인 젊은 그룹 ‘벽(壁)’의 동인이었던 그는 앵포르멜 추상계열 작업을 하며 전통 화단에 도전장을 냈다. ‘벽’은 덕수궁 벽에 전위적 작품을 전시했다고 해서 붙어진 이름. 화백은 1961년 ‘환원B’로 국전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상을 받기도 했는데 ‘환원B’는 추상화로는 처음으로 국전 특선의 영예를 안아 국전이 추상화에 문을 여는 계기가 됐다.

한 때 회오리 형태의 간결하고 강인한 앵포르멜 계열 추상작업을 선보이기도 했으나 점차 내면으로 파고 든다. 격렬하고 표현적이었던 화폭은 세월과 연륜을 더하며 점점 더 단순해진다.

‘극소화, 미니멀로 가고있다’는 그는 ‘주인공 없는 그림, 또 표현하고자 하는 특정 형상이 있는 것이 아니라 부분 부분이 평등하게 모여 전체를 이루는 그림’이라고 최신작을 소개했다.

추상화의 선두 세대이면서도 화백은 샛강, 옛 건물, 한복감 등 우리 것에서 강렬한 영감을 얻었다고 말한다.

먼저 여의도 샛강의 이미지. 작가가 살던 영등포 문래동에서 하얀 모래밭이 펼쳐진 샛강까지 걸어다니며 유년시 절을 보냈다. 벌거벗고 멱을 감다가 신발을 잃어버린 그 곳에서 강의 물줄기와 나눈 대화가 작품으로 살아났다.

다음은 조계사의 단청. 중학교 1학년때 넋놓고 바라보았던 단청의 쇠서형(牛舌形) 목조각에서 리듬과 절단, 반복과 교착의 전통미감을 읽었고 그의 목판화의 주제로 고스란히 반영됐다.

마지막은 비단의 빛깔. 작가는 어머니가 일하던 동대문시장에 드나들면서 일찌기 색동의 아름다움에 심취했다. 포목가게에 널부러진 비단을 보며 익힌 색감을 현대적 추상으로 되살려 놓왔다.

이같은 과정을 거친 화백은 40년간 추상의 고단한 외길을 걸으며 한국적 삶의 고색창 연함을 화폭에 담는데 주력했다. 따라서 전시도 그의 발자취가 담긴 이력서를 연대기순으로 뒤쫓고 있다. 형식적으로는 서양화 장르이지만 내용상으로는 전통적 조형과 색채를 드러내려 부단히 애써온 화업을 조망하는 것이다.

화백은 회오리처럼 흐름이 빠르면서도 선과 면이 간결한 앵포르멜 추상작업 ‘생성시대’ 연작으로 출발했다. 이어 60년대 중반 이후에는 ‘심상(心象)’ 시리즈를 내놓으며 화면의 격렬성과 표현성에서 내면화한 추상으로 내달았다. 율동적 흐름이 자유로운 리듬과 조화 속에 나타난 것도 이 무렵이다.

80년대 중반부터 지금까지는 ‘후광(後光)’ 시기로 요약된다. 율동성을 화면 뒤에 숨긴 가운데 심연에서 우러나오는 단색조의 광휘를 추구하고 있다. 화려한 듯하면서도 심오한 화면의 ‘후광’ 연작은 고희를 앞둔 화백의 연륜을 엿보게 하는 작품들이다.

최근 들어서는 더욱 농익은 기량을 과시한다. 어두운 색을 바탕에 깐 뒤 하얀 색 등 밝은 색채로 그 위를 차례차례 덧씌움으로써 평면화이면서도 입체의 깊이를 한층 강 화하고 있다. 이같은 변화에 대해 작가는 “한지를 통해 들어오는 빛의 은은한 효과를 드러내는 잔광의 유희”라고 표현했다.

김 영 권(백록화랑 대표, 서울 백록당 한의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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