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규 칼럼] 위기극복과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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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규 칼럼] 위기극복과 논문
  • 승인 2009.03.13 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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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원의와 협회, 대학과 학회, 연구원 등 우리 한의계도 이제는 전문분야가 성숙단계에 접어 든 것 같다. 모처럼의 도약 분위기가 세계적인 경제위기로 위축이 되는 느낌이지만 모든 것이 변한다는 원리대로 위기는 기회를 가져오고 어려움에 닥쳐 더 큰 도약을 준비할 수 있다는 희망도 가져본다. 한의계의 위기극복에 논문의 역할을 이야기하면 이상적이라거나 비현실적인 학자의 넋두리로 들릴 수도 있다.

수년 전 개원의로 계시는 선배분의 학위논문과 관련하여 상담을 한 적이 있다. 자신의 임상경험을 바탕으로 학위논문을 쓰고 싶은데 지도교수와 뜻이 맞지 않아 진척이 어렵다는 하소연이었다. 임상을 하지 않는 기초 전공교수지만 개원의들의 경험이 소중하다는 생각을 늘 하고 있었기에 도움을 드리겠다는 약속과 함께 임상경험의 내용을 들은 뒤 논문을 설계하고 공동연구를 진행했다.
물론 학위논문이 아니라 예비연구였고, 동물실험이 아니라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임상연구였다. 2년에 걸친 연구로 개원의가 직접 참여하는 연구였기에 연구에 참여하는 한의사나 연구의 대상자로 참여하는 학생들 모두가 흥미를 느낄 수 있었다.

최종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는 한의사와 학생 모두에게 공개하고 기대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은 이유에 대한 토론을 하면서 한의사는 자신의 경험을 객관적으로 되돌아보고 부족한 점을 스스로 알게 되었고, 학생들은 개원의의 가설과 검증 그리고 결과를 모두 보면서 한의학의 임상경험이 어떠한 오류가 있을 수 있는지 구체적인 사례를 직접 경험하는 좋은 기회가 됐다.

한의학이 책과 도서관 문화라면, 서양의학이나 과학은 논문과 실험실 문화라고 할 수 있다. 이제 한의학도 책보다는 논문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물론 예전에 비하여 한의학계도 SCI, 학진, 국제학술대회, 포스터발표 등과 관련된 기사에 자주 노출되는 것을 보면 논문에 대한 관심이 늘어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제부터 위기극복을 위하여 제대로 된 논문에 집중해야 한다. 연구과정의 석사생들에게 논문지도를 하면서 무엇을 쓸 것인지 고민하지 말고 자신이 답답해하는 문제를 먼저 도출하고, 어떻게 쓸 것인지 고민하지 말고 완성될 때까지 몇 장이고 다시 쓰는 연애편지처럼 짧고도 감명 깊게 쓴다면 간직하여 다시 보고 싶을 정도로 좋은 논문이 될 것이라고 강조한다.

이제는 이러한 노력을 개원의, 대학, 연구원이 함께 해야 한다. 최근까지도 개원의는 각종 임상모임에서 비싼 교재와 등록비로 후배상대의 경험팔기를 하고, 대학은 개원의나 정책입안자 누구에게도 관심이 없는 논문 만들기에 바쁘고, 연구원은 연구원대로 정부의 연구비 수탁에 유리하고 평가점수가 잘 나올 수 있는 연구하기에 골몰하고 있다.
이제부터라도 위기이후의 전성기를 준비하기 위해서, 개원의는 임상경험을 아이디어로 제공하고, 대학은 학생교육에 도움이 되는 논문쓰기에 주력하며, 연구원은 한의학의 영역확대를 위한 차세대 기반을 다지는 연구에 집중하면서 상호협력의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

경험이 중요한 기술분야를 기초학문인 과학이 발전시켜 온 역사처럼, 소중한 경험을 학문적으로 발전시켜 교육에 투입하고 미래를 대비하는 연구를 진행한다면, 대학교육에 불만을 품고 졸업이후에 비싼 비용을 지불하며 사교육에 의존하거나 선후배가 경험을 거래하는 풍토가 개선될 것이다. 위기를 맞아 책보다는 논문을, 경험보다는 이론의 중요성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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