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공통적 초상을 느낀다
월드컵 개최를 기념하여 2년의 준비과정 끝에 선을 보이는 이번 전시는 ‘축구’라는 스포츠를 통하여 전 세계인이 하나가 되는 기본 이념을 예술적으로 승화시킨다는 취지로 국립현대 미술관에서 8월 4일까지 ‘바벨 2002’전이 열린다.
전시는 크게 ‘인종-얼굴’과 ‘언어-대화’의 두 개의 하부주제로 나누어 진행된다.
첫 번째 주제 ‘인종-얼굴(RACE - FACE)은 주로 자신의 이웃 혹은 타인의 얼굴을 소재로 작업하는 작가들이 참여하여 인종과 문화의 차이를 넘어 인류의 다양한 모습들을 예술적으로 변주해 낸 작품들을 선보인다. 여기에는 척 클로스, 제이슨 브룩스, 정원철 등 타인의 얼굴을 극사실적으로 꼼꼼히 재현한 얼굴에서부터 얀 페이밍, 마를렌 뒤마, 브라이언 맥과이어 등과 같은 드로잉에 기초한 대상과의 정서적인 교감을 전제로 하는 작품들, 그리고 나라 요시토모, 줄리언 오피, 오를랑 등 마치 漫畵처럼 가볍고 희화적으로 혹은 유형적으로 처리된 얼굴들이 함께 선보인다.
그밖에 토마스 루프, 마르코스 로페즈 등의 사진작업이나 이순종, 귈쉰 구스타파 등의 비디오 작업 등도 얼굴에 대한 이색적인 해석을 보여줄 것이다. 이 밖에도 사우디 아라비아, 코스타리카, 에콰도르 등 국내에서 쉽게 접하기 힘든 제 3세계 현대미술의 일단을 함께 비교하며 감상할 수 있는 드문 기회도 아울러 가질 수 있다.
두 번째 주제 ‘언어-대화 (LANGUE - DIALOGUE)’는 언어 혹은 문자를 소재로 작업하는 작가들의 작품이 한 자리에 모인다.
어쩌면 이 주제 하에 모인 작가들이야말로 첫 번째 바벨 이후의 의사소통 단절의 보다 직접적인 후손들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들은 한 손에는 현대사회의 고립에 대한 첨예한 비판의식을, 다른 한 손에는 새로운 예술적 소통형식에 대한 탐구를 들고 난해한 줄타기를 시도하고 있는 작가들이다. 카메룬 작가 파스칼 타요(Pascale Tayou)의 어지러운 벽면낙서를 보면서 들어서는 ‘언어-대화’전시에서는 제니 홀저의 전형적인 전광판작업에서부터, 벤 보티에, 김창열, 김홍주 등 문자의 형태와 의미를 직접적인 조형수단으로 활용하는 작가들, 이치하라 히로코, 밥 스미스, 뷕 코직 등 인터넷이나 첨단 기기를 활용한 새로운 의사소통을 모색하는 작업 그리고 마리오 메르츠, 구 웬다 등 숫자 혹은 문자를 설치형식으로 소화하고 있는 작가들을 한 자리에서 만날 수 있다. 이들 작가들의 눈에 비친 인류의 모습과 의사소통의 방법들을 접하면서, 우리는 다양한 외면을 넘어 존재하는 인류의 공통적인 초상, 즉 우리 자신의 모습을 인식하는 계기가 되리라 믿는다. 더 나아가 내가 너를, 네가 나를 바라보는 시선들과 함께 나누는 대화를 통하여 예술 안에 구현된 공존의 지혜, 인류 전체에 대한 연민과 애정을 느끼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김영권(백록화랑 대표, 백록당한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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