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歷代名醫醫案148] 尹昉의 醫案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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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歷代名醫醫案148] 尹昉의 醫案③
  • 승인 2009.02.13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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尹昉(1563~1640) : 조선 중기의 문관으로서 영의정 尹斗壽의 아들이며 李珥의 門人이다. 1582년(선조 15) 진사가 되고 1588년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후로 인조 때 우의정을 역임하였다. 그는 醫藥에 대한 지식이 많았던 文官으로서 藥房都提調의 자리에서 提調 崔鳴吉, 右副承旨 李景奭 등과 함께 醫藥을 논하였다.

■ 제목 : 寒熱往來案

■ 내용 : ○ 藥房都提調인 尹昉, 副提調 李聖求가 다음과 같이 보고하였다. 이로 인하여 侍御醫가 들어가 개략적으로 임금님의 증후를 들어보니, 처음에는 感冒로 인하여 추웠다 열났다 하는 증상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이에 李惟聖, 閔棡과 모든 御醫들과 상의하니 무릇 사람이 宿疾이 있으면 반드시 感冒한 후에 內傷을 발하니 이에 위로부터의 宿疾입니다. 內傷하면 表가 반드시 虛해져 風寒이 쉽게 들어오고, 風寒이 外襲하면 熱氣가 內鬱하니, 이러하여 寒熱往來의 증후가 있게 된 것입니다. 자주 忍冬茶를 마시면 發散이 지나치게 되어 表氣가 더욱 虛해집니다. 針의 道는 瀉는 있고 補는 없으니 이것도 또한 發散의 부류입니다. 이러한 차가운 계절을 당하여 한결같이 發散만을 위주로 한다면 萬全의 術이 아닐까 두려우니, 小柴胡湯에 當歸, 白芍藥酒炒, 白朮 各一錢, 陳皮, 知母鹽酒炒, 羌活 各七分하여 연달아 四五貼을 복용시키고 鍼藥으로 하여금 병행하여 그 功을 모으는 것만 못합니다. 진실로 본 것이 있으니 소홀히 할 수가 없습니다. (『승정원일기』 인조12년 1634년 11월 19일)
○ 정오에 임금께서 養和堂에서 침을 맞았다. 藥房副提調 李聖求, 記事官 李尙逸, 趙壽益, 李行遇, 御醫 申得一, 朴泰元, 李馨益이 침을 놓았다. 受針穴은 間使二穴, 人中一穴, 手大指二穴, 大淵二穴, 申脈二穴, 風府一穴, 耳前二穴, 承漿一穴, 勞宮二穴, 上星一穴, 曲地[曲池]二穴이었다. (『승정원일기』 인조12년 1634년 11월 20일)

■ 설명 : 인조가 한겨울에 寒熱往來의 증상이 생겨서 이를 小柴胡湯加減方으로 치료하고 있는 醫案이다. 11월 19일에 침을 놓은 것에 대해 비판하는 내용도 나오는 것으로 보아 인조, 都提調, 御醫들 상호간에 의견의 차이가 존재하는 것으로 보인다.

■ 辨證分析 : 시기적으로 겨울이기에 感冒를 받아 寒熱往來의 증상이 나타나게 되었다. 感冒가 든 원인을 오래된 內傷의 宿疾로 파악하고 있다. 內傷으로 表도 虛해져 風寒이 外侵하여 이러한 증상이 나타나게 된 것이다. 게다가 평소에 忍冬茶를 많이 마셔 發表가 지속적으로 되었고 침을 지속적으로 맞아서 더욱 몸을 瀉하게 되어 外感이 쉽게 들어왔다는 것이다. 이튿날 침을 놓고 있는데, 鍼醫의 중심에 있었던 李馨益은 重臣들과 대립적 입장이 많았던 인물이다.

■ 治療分析 : 小柴胡湯은 寒熱往來의 主劑이다. 『東醫寶鑑·雜病·寒』에 “少陽證往來寒熱”에서 “血氣虛, 腠理開, 邪氣因入, 與正氣相搏, 結於脇下, 邪正分爭, 往來寒熱, 休作無時, 不欲飮食而嘔, 宜用小柴胡湯”라 하고 있는데, 바로 이 원칙에 따른 것이다. 나머지 약물은 隨證加減으로서 當歸, 白芍藥酒炒, 白朮로 補虛, 陳皮, 知母鹽酒炒, 羌活로 固陰升提한 것으로 볼 수 있다. 鍼穴로 頭項强痛에 쓰는 風府, 承漿, 脾寒에 쓰는 間使, 勞宮, 脊背强痛에 쓰는 人中, 鼻塞에 쓰는 上星, 發熱에 쓰는 曲池, 咳嗽에 쓰는 太淵 등을 쓰고 있는데, 이로부터 인조의 증상을 더욱 유추할 수 있다.

金南一(경희대 한의대 醫史學敎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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