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혜정 칼럼] 돌아온 탕자
상태바
[장혜정 칼럼] 돌아온 탕자
  • 승인 2009.01.28 15:0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webmaster@http://


예전 친구가 했던 말 중에 가장 기억 남는 건 “돌아온 탕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내가 그 길의 끝까지 가봤는데 거긴 아무것도 없었어. 그러니 가지 말아라’라고 말하지 말라는 것이다. 내가 갔기에 없는 끝이지만 누군가에겐 무엇일 수도 있는 그 끝에 대해 그 사람이 아무것도 없음을 알아오는 그 과정을, 네가 판단한 아무것도 없음을, 유연성과 가능성을 탕진한 탕자가 되어 돌아오지 말라는 뜻이다.
지금은 ‘한방치료의 효율성과 놀라운 재현성, 그리고 하루하루 매순간 고전의 의미가 이 뜻이었구나’라며 진정으로 감동하며 선현들의 치밀한 열정과 과학정신과 논리성에 감복하고 감동하지만. 난 본디 한의대 갈 생각도 없었고 학부시절 지지리도 한의학에 대해 헤매던 사람 중의 하나였다. 내가 유일하게 믿고 신뢰하는 건 수학이었고, 자연과학이었다.

그러던 내가 한의학에 대해 일말의 가능성을 느끼게 된 건 본과1학년 IMF금융위기가 찾아왔을 때였다. 경제뉴스에 관심도 없고 문외한이었던 나에게 금융구조조정이란 일련의 일들은 다이나믹하게도 한의학의 치료관점과 놀랍도록 비슷했으며 그후 사극안에서 벌어지는 정치적 힘의 균형, 그리고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이 썼던 책략. 그 모든 게 동의보감 내경 구절 하나하나를 떠올리게 했다.
내가 동의보감을 뒤져보는 대부분은 어떤 질환에 어떤 탕약을 쓰는가가 아니라 뉴스를 보다가 자연다큐멘터리를 보다가 양자역학에 관한 책을 보다가 수학의 정수론을 보다가 동의보감을 펼쳐보는 것이다.
그곳엔 왜 우주가 어떻게 생성되었는지, 왜 강물은 굽이쳐 흐르는지, 왜 안개가 끼는지, 왜 비가 오는지에 대한 설명이 있었고, 현대적 시각에서 결과적으로 그 결과에 다다르는 다른 알고리즘을 가지고 훨씬 효율적인 방법으로 접근하고 있었다.

의자가 천문과 지리 역사를 알아야 한다는 건, 천문 지리 역사가 모두 생리와 동일한 알고리즘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안에 내재된 공통된 원리를 찾아내는 것!
그렇게 한의학에 관심 없는 자연과학맹신자였던 나는 동의보감을 자연과학적 입장에서 관찰하였고, 그것을 습득하였을 때 인체에 적용하는 것이 다이나믹하고 매우 재미있었다.
더불어 현대의 자연과학을 더 쉽게 예측할 수 있게 되었고, 나는 여전히 수학과 물리학을 공부하고 있다. 그리고 놀랍게도 자연과학이 한계에 다다랐을 때 그들이 찾은 ‘새로운 관점’이 한의학적(또는 동양과학적) 관점과 유사한 부분이 있었고 그 ‘새로운 관점’의 과학에 있어 몇몇 부분은 전공생들보다 훨씬 수월하게 알고리즘을 짜낼 수 있었다.

한의학에 철저히 회의적이었던 나는 그 누구보다 열렬히 사랑하고 합리성을 주장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러나 역시 마찬가지로 학부 때 누구보다 동양의학을 신뢰하고 믿음을 보냈던 지금은 한의사가 된 동료들이 너무나 철저하게 한의학을 배척하게 되는 모습을 본다. 또한 그만큼이나 철저하게 양방을 신뢰하고 동경하는 모습을 보면 가슴깊이 답답해져 온다.
나 또한 다시 한 번 한의학에 대한 이러한 신뢰가 깨지는 때가 올지도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내 뒤에 오는 후배들에게 “내가 한의학을 끝까지 가봤는데 아무것도 없었다”라는 이야기를 할 때는 매우 신중해야 한다. 내가 진정 끝까지 가봤는지 그리고 내겐 아무것도 아니었던 것이 그들에게도 아무것도 아닐지는 알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