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성의 진료의 기술(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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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성의 진료의 기술(7)
  • 승인 2009.01.28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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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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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진의 키워드, 신뢰와 희망

만약 환자가 “원장님, 명의라는 소문 듣고 왔습니다. 제발 저 좀 치료해주세요” 라고 애원하면서 활짝 열린 마음으로 오면, 긴 얘기 필요 없습니다. 그냥 활짝 웃어주면서 “네, 저희 가족처럼 생각하고 성심껏 치료해드리겠습니다” 라고 하면서 손 한번 꽈악 잡아주면 됩니다. 그런데 어디 그렇습니까. 우리가 만나는 대부분의 환자들은, “어디... 원장 나리께서 나를 치료하실 수 있겠습니까?” 이겁니다.
앞에 앉은 환자에게 열을 내가며 30분 이상 설명을 했건만, 정작 환자는 수납창구에서 약값이 너무 비싸다면서 그냥 간다면, 과연 약값이 문제일까요? 좋아질 거 같으면 비싸도 돈 씁니다. 그냥 가는 이유는 원장님이 믿음직스럽지 못해서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환자가 “먹는 약이 있다, 남편과 상의해보겠다, 약값이 비싸다” 등의 핑계를 댈 때, 어떻게 해서든 뒤돌려차기를 해서 끝내 구매하도록 해야 할까요? 그렇게 하려면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기술은 쓰지 말아야 합니다. 신뢰가 없는 상태에서 약을 쓰면 환자에게 결국 또 다른 불안이 생겨나게 됩니다. 플라시보는 커녕 노시보(nocebo)가 생길 겁니다. 노시보는 플라시보의 반대를 갖는 효과로서, ‘효과가 없는 약일 것 같다. 이 약을 먹고 부작용이 생기면 어떡하지? 돈만 버리게 되면 어떡하지’ 등의 생각으로 약의 효과가 감소되는 것을 말합니다.

자, 그렇다면 환자는 어떻게 우리의 치료를 받아들이게 될까요? 굉장히 중요한 키워드입니다. 바로 ‘신뢰와 희망’입니다. 환자가 생각하기에, ‘아, 이 원장님 괜찮은 거 같다, 내 몸을 맡겨도 되겠다, 내 병을 제대로 알고 있다, 좋아질 수 있겠구나.’ 환자에게 이런 신뢰와 희망이 느껴질 때에 치료를 받아들이게 겁니다.
사실 환자들은 원장님의 실력을 잘 모릅니다. 치료를 받아보지도 않은 상태에서 환자가 그걸 어떻게 알겠습니까? 그러나 원장님의 성의는 압니다. 지금 그 자리에서 원장님이 얼마나 성심껏 자기를 대하고 있는지, 이건 척 보면 압니다.

대신 환자를 염려하십시오. 환자를 치료한다는 말은 treat가 아니라 care입니다. 진심으로 환자를 염려하되, 그 진심을 전달하는 기술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환자가 원장님을 ‘괜찮은 의사’로 느끼면 나머지는 그냥 따라오는 겁니다.
그런데요, 어떤 원장님은 초진할 때 성의를 보이기 위해서, 열심히, 정말 시시콜콜한 것까지, 환자가 귀찮아할 정도로 다 묻습니다. 그러나 초진을 하는 과정에서 너무 변증구인에만 집착하면 더 중요한 것을 놓칠 수 있습니다. 환자를 눕혔다, 젖혔다, 오링테스트도 했다, 팔을 들었다 놨다 하면서 열심히 환자 파악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성의를 다 하였건만, 환자의 느낌은 ‘별로’ 일 수 있습니다. 왜냐면 딱딱한 커뮤니케이션만이 오갔고, 환자에게 좋은 느낌(feel)을 주는 따듯한 마무리 멘트들을 제대로 안했기 때문입니다.
변증구인에만 집착하는 나머지 자기가 지금 만나고 있는 사람이 ‘불안과 고통과 낙심 속에서 힘들어 하고 있는 연약한 인간’이라는 것은 까맣게 잊은 채, 그저 하나의 ‘조사대상’으로만 생각한 겁니다. 원장님이 진료실에 마주 하는 대상은 질환이 아닙니다. 사람입니다.

이재성
한의사, LK의료경영연구소 소장
前 MBC 라디오동의보감 진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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