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영주 칼럼] 어디까지가 ‘한약’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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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영주 칼럼] 어디까지가 ‘한약’인가?
  • 승인 2009.01.16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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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한의계의 화두 중 하나는 한약 ‘안전성’과 ‘한약의 위기’였다. 이것을 계기로 한약재 관리가 더욱 철저해지고, 한약의 제형 다양화에 대한 많은 논의와 노력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은 매우 다행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앞으로 해결해야 할 많은 문제들이 있고, 그 중 건강기능식품과 일반의약품 문제를 짚어 보고자 한다.

몇 년 전 한약 안전성 연구를 수행하고 있을 때 이런 말을 해준 의사가 있었다. “한의사가 처방한 것만을 한약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한의사들 밖에 없다. 의사도 일반인들도 모두 다른 형태로 유통되는 것을 한의사 처방 한약과 엄격하게 구별하지 않는다. 연구든 홍보든 이런 사람들의 의식을 염두에 두어야만 한다.” 이런 현실은 한약의 저변이 뿌리 깊다는 것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그러한 ‘광의의 한약’이 제대로 관리되지 않을 때 한의사와 한의학이 그대로 피해를 받게 만들기도 한다.

우선 한약재를 원료로 한 건강기능식품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 최근 많은 부작용이 보고되고 있는 홍삼제품, 암 치료에 효과가 있다고 광고되는 삼백초, 어성초, 미슬토(상기생), 상황버섯 등에 대해 한의학의 관점에서 약효와 적응증을 잘 정리하여 환자 교육과 상담이 이루어지고, 효과의 검증과 오남용 방지에도 한의계가 적극 나서야 한다고 생각된다.

일반의약품으로 판매되는 한약제제의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방풍통성산 제제가 ‘살사라진’이라는 비만 치료제로 시장에 돌풍을 일으키자, 양약에서 복제약이 출시되듯이 ‘살포시’라는 제품이 또 등장했고, 의사신문 등에 대대적인 광고도 하고 있다. 방풍통성산은 많이 사용되는 훌륭한 처방이지만, 비만 환자 모두에게 맞는 약이 아님은 분명하고, 증에 맞지 않는 사람이 장기 복용했을 때 부작용이 생길 수밖에 없다. 벌써 약 복용 후에 이런 저런 문제로 병의원에 내원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노인층의 통행이 많은 서울 종로 4가와 5가 사이의 지하도들에는 한약을 선전하는 대형 광고들이 붙어 있다. 당뇨에는 옥천원, 식체에는 신효환, 변비에는 장크린 에프..... 검색해 보아도 구성 약재들이 나오지 않아 어떤 처방인지 궁금한 것도 있었고, 단순 소화제라면 몰라도, 당뇨약을 변증 없이 한 가지로 만들어 사용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싱가포르에서 발표된 한 연구에서는 약인성 간손상의 원인물질로 추정되었던 中性藥(캡슐, 태블릿 등의 형태로 제조 판매되는 한약) 31가지 중 9가지(29%)에 양약이 혼입되어 있었다고 보고했다. 우리나라에서는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을 수 있도록 확실한 감독, 관리가 이루어지고 있는지도 걱정스러웠다.

일반의약품으로 허가, 판매되는 것이니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이런 사태를 그저 바라보고만 있어야 하는 걸까? 한의사의 진단과 처방이 있어야만 복용할 수 있는 약임에도 불구하고 약사의 권유로 판매와 복용이 이루어지고 있도록 손을 놓고 있다면 한의사의 한약에 대한 전문성을 주장할 수 있는 근거는 점점 약해지지 않을까 심히 우려된다.

또한 이름만 들어서는 한약이라 상상할 수 없는 많은 일반의약품에 한약이 주요 구성성분으로 들어 있다. 종합감기약인 래피콜에는 향소산이, 하벤에는 갈근탕 엑기스가 들어 있다. 목이 아프다고 하면 약사들이 건네주는 마이티신, 세파렉신은 양약성분이 전혀 들어있지 않은 은교산이며, 입 안에서 녹여 먹는 해클트로키는 감길탕가인삼이 주성분이다.

한약재의 일부 성분을 추출 또는 합성해서 가미한 것이 아니라 복합처방을 그대로 사용하는 약이 이렇듯 부지기수인데, “감기를 한약으로 치료하자”라는 말에 펄펄 뛰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일반의약품으로 판매되는 한약, 한약/양약 복합제제에 대한 관리·감독 나아가 한의사의 처방권을 되찾아오는 문제에 대해서도 대책 수립이 절실한 시점이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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