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성의 진료의 기술(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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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성의 진료의 기술(3)
  • 승인 2008.12.12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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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성

이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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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박과 희망 사이

진료실에서 30분 이상 나름 정성껏 환자에게 설명을 해줬는데, 막상 환자가 수납창구에 가서는 약값이 비싸다며 그냥 돌아갑니다. 그렇다면 환자는 과연 약값이 비싸서 그냥 간 것일까요? 정말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원장님에 대한 신뢰, 그리고 나아질 것에 대한 희망이 있다면 환자는 그보다 더 비싼 값도 치를 수 있습니다.

진료실에서 환자에게 건네는 말들은 한 편의 짧은 연설입니다. 환자를 치료할 ‘실력’은 쌓았는데 환자로 하여금 치료를 받게 할 ‘능력’이 부족하다면, 쌓아온 실력이 너무 아쉽습니다. 실력도 중요하지만 환자를 끌어가는 능력도 길러야 합니다. 제한된 시간 속에서, 앞에 앉은 환자에게 원장님의 실력과 진심을 느끼도록 해줘야 합니다. 원장님은 자신의 실력과 진심을 과연 몇 퍼센트나 환자에게 전달할 수 있습니까? 60퍼센트라 대답하시는 분도 있고, 150퍼센트라고 대답할 수 있는 분도 있을 겁니다. 얄팍한 상술이 아니라 진실을 소통시키는 기술을 기르셔야 합니다.

불임 때문에 부산에서부터 온 환자가 한 분 있었습니다. 저를 찾기 전에 부산에서 불임으로 유명하다는 여자 원장님께 갔었는데, 처음 그 원장님을 만났을 때 들었던 말은, “이렇게 뚱뚱한 몸으로는 절대 임신할 수 없다!”는 말이었습니다. 환자는 화가 났고, 수치심을 느꼈답니다. 환자의 가슴에 비수가 꽂혔고, 그래서 이를 악물고 15kg를 빼서 다시 갔더니, 그 원장님 왈, “살 뺀다고 다 임신이 되는 게 아니에요, %^&*(*)$%&$...” 환자가 저에게 이렇게 말하더군요. “그 여자 정말 나쁜 사람이에요. 어쩌면 그렇게 차갑고 쌀쌀맞은지... 아주 거만해보였어요. 원장님은 인터넷에서 보니까 따듯하신 거 같아서 찾아왔어요.”

임신을 원하는 또 한 환자의 이야기입니다. 그녀는 유산을 겪고 나서 동네에서 나름 용하다는 한의원에 갔답니다. 할아버지 같은 원장님이었는데, 맥을 딱 짚더니, “지금은 자궁이 제대로 수축되지도 않았어. 이런 몸으로는 절대 임신할 수 없어. 지금 임신하면 계속 유산돼. 세 달 동안 약을 먹어도 될까 말까야.” 이랬답니다. 그런데 그때 누가 옆에 있었냐면, 시어머니가 같이 있었다는 겁니다. 시어머니 옆에서 며느리는 완전한 유죄 판결을 받은 겁니다. 그 현장에서 그 환자분은 얼굴이 울그락불그락 해졌고 결국 눈물을 쏟았답니다.

두 케이스 모두 진료했던 원장님의 의학적인 소견은 옳았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환자를 대하는 마인드는 분명 문제가 있었던 거 같습니다. 환자의 자존심이나 환자의 상황에 대한 배려는 전혀 없었던 거죠. 마인드는 말투와 인상으로 표현됩니다.
환자 가슴에 못질하고, 최악의 가능성을 부각시키는 화술, 이제는 한의사들도 이런 걸 잘 하게 된 것 같습니다. 한의학은 터치가 있는 의학이었고, 들어줌이 있는 의학이었습니다.

결과로써의 질병보다는, 문제가 일어난 환경을 캐는 데 강점이 있는 의학이었습니다. 협박하기보다는 희망을 부각시키는 의학이었습니다. 협박마케팅으로는 롱런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기계와 수치에 의존하는 서양의학 전문가와는 다른 진료 기술이 있습니다. 터치와 들어줌의 의학으로서의 진료 컨셉을 다시 세우고, 양방과는 확실히 다른 무엇인가를 환자로 하여금 느끼게 하는 것, 한의원의 성패는 여기에 달려 있습니다.

이재성
한의사, LK의료경영연구소 소장
前 MBC 라디오동의보감 진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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