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영주 칼럼] 冬至, 희망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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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영주 칼럼] 冬至, 희망의 노래
  • 승인 2008.12.05 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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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마다 좋아하는 계절이 있는 것처럼, 좋아하는 기념일도 다를 것이다. 크리스마스나 발렌타인데이도 아니고, 민족의 명절인 설이나 추석도 아닌 동지날, 늘 필자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그 날이 다가오고 있다.
밤의 길이가 가장 긴 동지가 지나면서 낮이 다시 길어지지만, 지구 복사열의 법칙 때문에 소한, 대한 추위가 더 매섭다는 것은 고등학교 지구과학 상식이다. 그래서 서양에서도 이 날을 축제일로 보내거나 1년의 시작일로 삼은 나라들이 있었으며, 크리스마스도 그 즈음으로 정해졌다는 것 또한 널리 알려져 있다.

冬至가 필자에게 특별한 의미로 다가온 것은 한의대 수업 시간에, “冬至에 一陽이 始生”이라는 말을 배운 때부터였다. 힘든 시절이었기 때문인지, 밤이 깊고 혹한은 이제부터 시작인 것처럼 보이더라도 눈으로 보이지 않는 천지의 기운은 이미 바뀌고 있다는 말이 그렇게 가슴 벅찰 수 없었다. 그 뒤로부터 그것은 하나의 주문이 되었다. “그래, 지금 더 이상 버틸 수 없을 것처럼 힘들다면, 이미 가장 힘든 것은 지나간 거야” 이렇게 되뇌이면서 터널을 빠져나오곤 했다.

동지의 법칙은 냉엄한 과학의 법칙이며, ‘인과율’이다. 동지가 지나가면 태양에너지의 양이 늘어나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때까지 축적된 복사냉각은 한 달 이상 후과를 미칠 수밖에 없다.
한국의 정치경제 현실이 암담한 것은 남의 탓이 아니고, 우리 모두가 선택한 결과이다. 한의계가 어렵다면 노력하지 않았던 안일한 과거를 반성해야만 한다. 집단적으로든 개인적으로든 원인을 제공했다면, 겪어야 할 결과를 피할 순 없다. 겪어내야만 한다.

그러나 인과율은 또한 ‘희망의 법칙’이기도 하다. 一陽이 始生하여 陽氣를 꾸준히 축적해 나가면 봄은 반드시 돌아오기 때문이다. ‘담대한 희망’, 요즘 화두가 되고 있는 말이다. 희망을 가진다는 것, 어려움에 맞닥뜨렸을 때, 불확실성에 직면했을 때, 아직 눈에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희망을 품는다는 것은 진실로 담대함과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또한 그 주인공은 단지 꿈꾸는 것이 아니라 한발 한발 나아가는 노력과 준비를 계속할 때 기회가 찾아오고, 꿈을 이룰 수 있음도 보여주었다.

얼마 전 TV에서 방송된 한 발레리나의 이야기도 가슴을 뭉클하게 했다. 발 모양이 변형될 정도로 연습을 많이 했다는 유명한 일화는 그녀의 반쪽 모습에 불과했다. 무용단 입단 후 무대에 오르기까지의 긴 슬럼프 기간, 전성기 때 또다시 부상으로 몇 년간 공백을 가진 후 처음부터 다시 시작했던 과거 이야기가 더 큰 감동으로 다가왔었다. 그 어려움 속에서도 “하루도 100% 아닌 날이 없었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생명을 담은 씨앗은 겨울의 추위 속에서 水의 응고력을 받아야만, 봄의 木으로 生할 수 있음을 누구보다 잘 아는 우리들이다.

寶王三昧論의 한 구절을 들려드리면서 희망의 노래를 맺고자 한다.
“세상살이에 곤란함이 없기를 바라지 말라. 세상살이에 곤란이 없으면 업신여기는 마음과 사치한 마음이 생기나니, 그래서 성인이 말씀하시되, 근심과 곤란으로써 세상을 살아가라 하셨느니라…일을 꾀하되 쉽게 되기를 바라지 말라. 일이 쉽게 되면 뜻을 경솔한데 두게 되나니, 그래서 성인이 말씀하시되, 여러 겁을 겪어서 일을 성취하라 하셨느니라…이와 같이 막히는 데서 도리어 통하는 것이요, 통함을 구하는 것이 오히려 막히는 것이니…요즘 세상에서 도를 배우는 사람들이 만일 먼저 역경에서 견디어내지 못하면 장애에 부딪칠 때 능히 이겨내지 못해서 법왕의 큰 보배를 잃어버리게 되나니 어찌 슬프지 아니하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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