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세영 칼럼] 행림춘만(杏林春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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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세영 칼럼] 행림춘만(杏林春滿)
  • 승인 2008.11.21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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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의 홍수! 전 세계를 거미줄처럼 엮는 인터넷이 생활화된 시대에, 더군다나 지구상에서 제일가는 초고속 유무선망을 갖춘 우리나라에서, 날이 갈수록 실감이 더해 가는 말이다.
물론 한의계도 예외는 아니다. 강산도 변한다는 세월 탓인지, 기초 이론 및 임상 실제에 대한 다양한 정보들이 이전보다 걷잡을 수 없게 많아졌기 때문이다.

침법(鍼法)만 해도 그렇다. 정경(正經)의 혈위(穴位)와 아시혈(阿是穴)을 위주로 삼는 체침(體鍼)은 말할 것 없고, 사암침법(舍岩鍼法)이나 태극침법(太極鍼法)도 이미 고전의 범주에 속하지 않는가? MPS(Myofascial Pain Syndrome; 근막통증증후군) 이론에 따라 방아쇠 점(trigger point)을 자극하는 침법, 특정의 기혈(奇穴)에 놓는 동씨침법(董氏鍼法), 진맥에 의거하여 체내 장부의 불균형을 조화롭게 바로잡는다는 화침(和鍼), 혈성(穴性)을 고려하며 정확한 혈위(穴位)에 집중하는 일침요법(一鍼療法) 등도 알려진 지 꽤 되었고, 최근엔 미소안면침, 평침, 주행침, 삼극침법, 소침도침법, 황구침법, 격팔상생침법, 곡운침법, 석호침법 등등 근 40 여종 이상의 이름도 생소한 침법들이 여기저기서 소개되지 않던가?

과유불급이라지만, 사실 빈약하기보다는 풍족한 게 좋고 또 바람직하다. 근래 한의계의 정황이 어렵고 힘들다고 말하는 까닭은, 이전보다 내원 환자수가 현저히 줄어들었고 그에 따라 수입 또한 급격히 감소했기 때문 아닌가? 학문에 대한 지식정보만큼은 많이 쌓여야 되는 것이다. 문제는 이들 정보에 대한 평가와 공유 방법이다. 신문의 광고란과 팝업 창을 장식하는 각종 강좌들의 개최 안내문을 접할 때마다, 이들 강좌가 얼마나 올바르고 유용한지, 아울러 수강 시 지불해야 할 강의료는 과연 적정한지 궁금하지 않던가?

개인적으로는, 일단 기백만원의 수강료가 책정된 강좌-아무리 강호 제일의 무림 비법을 전수해 준다 해도-는 영 못마땅하다. 이는 각고의 노력 끝에 얻은 그 사람만의 소중한 지식정보를 날강도와 다름없이 거저 얻겠다는 도둑놈 심보 때문만은 아니다. 그 역시 천지 대자연을 운운하는 한의사로서, 자신만의 비기(秘技)를 가르쳐줄 정도면 소위 ‘행림춘만(杏林春滿)’-삼국시대 오(吳)나라의 동봉(董奉)이 환자들에게 치료비를 받는 대신 살구나무를 심게 했다는데서 비롯된 고사성어로 훌륭한 의사의 미덕을 뜻함-의 주인공일진대, 그런 명의가 실 소요경비 이상의 금전을 요구한다는 게 쉬 납득되지 않아서이다. 동료 선후배들로부터 받는 인정과 칭송에 따른 명예를 돈으로 환산하기란 도통 불가능하지 않은가?

이런 점에서 경남 거창 소재 약산약초원에서 지난 6개월 여 동안 이루어진 ‘실전 한의학 강좌’는 한의계 전체의 귀감으로써 전혀 손색이 없다고 생각한다. 음양오행에 관한 3권의 스테디셀러(『음양이 뭐지』, 『오행은 뭘까』, 『음양오행으로 가는 길』)로 이미 한의계의 검증을 거친 강사분들이 후배들과 마음만을 주고받으며 열과 성을 다 하였고, 수강료 명목으로 거둔 많지 않은 금액이나마 지역 사회 무의탁 노인들의 간식비 등으로 쾌척하였다 하니, 이야말로 우리 모두가 추구해야 할 정녕 아름답고 바람직한 모습 아니겠는가?

맹자님께서는 ‘사생취의(捨生取義)’, 곧 목숨보다는 의로움을 취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으니, 유익하고 알찬 정보는 신문이나 책과 같은 지면을 빌어 공개되었으면 싶다. 삶과 바꾸는 것이기는커녕 오히려 ‘예만행림(譽滿杏林)’의 일임에 분명하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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