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화승 칼럼] 임상시험과 한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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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화승 칼럼] 임상시험과 한의학
  • 승인 2008.10.24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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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에서 최초의 임상시험은 1747년 스코틀랜드의 외과의사인 James Lind에 의해 수행되었다. 그는 괴혈병 환자 12명을 2명씩 여섯 그룹을 만든 후 각각의 그룹에 식초, 바닷물, 오렌지, 레몬, 사이다, 겨자와 마늘 섞은 것 등을 섭취하게 하였는데 이 중 감귤류(오렌지, 레몬)를 먹은 군이 매우 뛰어난 효과를 보인다고 보고하여 감귤류의 섭취가 괴혈병 예방 및 치료에 효과가 있음을 입증하였다.

이후 큰 진전을 보이지 않던 임상시험은 1900년대 항생제, 항암제의 개발과 함께 의료인들이 좀 더 안전성과 유효성의 확실한 근거에 대한 필요성을 인지하면서 급속도로 발전하였다. Grimes와 Schulz가 2002년 Lancet에 발표한 것에 의하면 임상시험은 크게 실험적인 것과 관찰적인 것으로 구분된다. 실험적인 것은 우리가 잘 아는 무작위배정임상연구가 대표적이고 관찰적인 것으로는 분석이 되어 있는 횡단연구(cross-sectional study), 증례-대조연구(case-control study), 코호트 연구(cohort study) 등이 있고, 분석이 아닌 기술만 되어있는 증례연구(case study)와 연속증례연구(case series study) 등이 있다.

무작위배정법은 황금률이라고 불릴 만큼 시험군과 대조군 간의 비틀림(bias)을 제거하는 매우 좋은 과학적 접근방식이다.
따라서 현대의 신약개발과 또 근거중심의학에서의 근거의 기준을 대부분 이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무작위배정을 이용한 Ⅱ상, Ⅲ상 임상연구는 적게는 몇 십 명부터 많게는 다기관, 다국적 연구를 진행하여 몇 천 명까지를 모아야 하는 엄청난 자본이 필요한 연구방법이다.

여기서 의문이 드는 것은 과연 한의학의 치료기술들을 반드시 이런 방법으로 접근해야만 하느냐는 것이다. 이때 주목할 만한 내용이 바로 Byar D 등이 1990년도에 New England Journal of Medicine에 발표한 주장으로 여기서는 한의학과 같은 널리 인정이 되어진 방법이나 환자에게 부작용이 심하지 않고 또 심각한 부작용이 예상되지 않는 치료법들을 연구할 때 반드시 대조군을 넣어야 할 필요는 없다고 말하고 있다.

물론 이것이 근거중심의학을 지향하는 현대의학의 사조에 부합하지 못한다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한의학의 모든 방법들을 일일이 많은 돈을 들여가면서 실질적으로는 서양의학처럼 대규모로도 못할 것이면서 이렇게 무작위배정 임상시험에 목을 매야만 하는가에 대해서는 회의도 뒤따른다.

과거로부터 한의학의 임상경험들은 증례의 질적기술(Qualitative descrip tion)을 따르고 있었다. 우리가 주목해 볼만한 임상연구방법, 즉 많은 연구비를 들이지 않더라도 근거를 확보할 수 있는 방법으로는 연속증례연구, 횡단연구, 증례-대조연구, 코호트 연구 등의 관찰연구를 들 수 있다. 연속증례연구는 3례 이상의 비슷한 사례를 모아서 기술한 것으로 연구가 시발될 수 있는 증례보고 다음의 최소한의 근거연구를 말한다.

횡단연구는 현 시점의 주제에 대한 접근을 원인과 결과가 혼재한 상태에서 기술한 연구이고, 증례-대조연구는 결과를 아는 상태에서 원인을 찾기 위해 들어가는 후향적 연구이고, 코호트 연구는 원인을 아는 상태에서 결과를 확인하기 위해 진행하는 전향적 연구이다. 이들은 실제로 임상을 진행해 나가면서 얼마든지 그 연구결과를 도출할 수 있는 연구방법으로 어쩌면 근거를 요청하고 있는 현 시점에서 한의계에 매우 중요한 단서를 제시할 수 있는 방법이라 할 수 있다.

의자의야(醫者意也)라는 고유한 한의학의 접근도 중요하고 과학적, 분석적인 서양의학의 접근도 중요하다. 이들 사이에서 우리에게 가장 적합한 연구방법을 잘 찾아내어 조율할 수만 있다면 한의학의 미래에 좀 더 서광이 비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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