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세영 칼럼] 명실상부(名實相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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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세영 칼럼] 명실상부(名實相符)
  • 승인 2008.10.17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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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에 비하면, 확실히 TV ·라디오·신문 등의 각종 대중매체에서 한의학 관련 소식 - 한약재에 농약·중금속·표백제·발암물질이 포함되었다는 등의 부정적 보도를 제외한 - 을 접하기가 훨씬 어려워졌다. 누구는 의료일원화를 위한 의사협회의 조직적인 로비 탓이라 하고, 누구는 한의사협회의 적극적인 홍보 마인드 부족 때문이라 하며, 누구는 미리미리 매스미디어에 직접 뛰어들지 않은 우리들 자신의 책임이라고 한다. 사실 모두 맞는 말이다. 지금 이렇게 되기까지는 이들 여러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했음에 분명하니까……. 허나 그렇다고 해서 한의사가 신문 방송에 아예 등장하지 않는 건 아니다. 때로는 우연찮게 동기나 선후배의 얼굴·목소리·글귀 등을 마주하고서 반가운 마음이 물씬 일지 않던가?

그런데, 한의사란 이름을 달고 나온 동료의 말이나 글을 접한 뒤, 가슴 뿌듯한 느낌이 들 때는 그리 많지 않다. 명색이 한의사이건만, 그 유창하고 유려한 말과 글이 도통 한의사의 것이라 생각되지 않기 때문이다. 대중과의 소통이 주된 목적이므로 어쩔 수 없겠거니 하면서도, 그의 달변과 달필을 구성하는 내용을 따져보면 한의사라기보다는 차라리 양의사나 약리학자로 여길만한 용어들로 가득한 까닭이다. 심한 경우에는, 모 개그 프로그램의 한 코너처럼 “이거 한 번 잡사 봐. 아주 좋아” 식의 표현까지 서슴지 않으며 숫제 영양사나 약장수의 입장까지 취할 지경이니, 이름만 한의사일 뿐 실상은 전혀 한의사가 아닌 것이다.

이렇게 ‘명실상부(名實相符)’하지 못한 한의사, 시쳇말로 ‘무늬만 한의사’에 의한 한의학 홍보(?!)는 한의계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아니 도움은커녕, 자칫하면 한약을 식품으로 전락시키고, 한의학의 단점만을 부각시키는 등 오히려 해악을 끼치기 십상이다. 처방과 혈위(穴位)의 명칭을 제외하곤 온통 서양 의학·약리학·식품영양학 등의 용어를 구사하는데, 누가 한의학이라 인정하겠는가? 이런 질병에(‘병증’이란 표현을 쓰면 그나마 양반이다) 이런 한약재 먹으면 좋다면서 알려주는데, 누가 한의원에 진료 받겠노라 찾아오겠는가?

TV·라디오 등의 시청각매체이건, 신문·잡지 등의 인쇄매체이건, 매스미디어는 항상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삼는다. 때문에 출연자나 기고자로 참여한 한의사는 비록 그가 한 사람의 개인에 불과할지라도, 대중매체에 드러나는 그 순간에는 한의사라는 직능단체 전체를 대표하기 마련이다. 한의사 중에서도 유독 특이한 한의사로 소개되는 자리가 아니라 한의학 전반의 내용을 소개하는 코너라면 더더욱 그렇다. 보고 듣는 일반 대중들은 그의 말과 글을 빌어 방송과 언론에 소개된 내용을 그 한의사 한 사람의 의견으로 간주하기도 하지만, 대개는 한의계 전반의 소견으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따라서 방송과 언론에 나서는 한의사는 ‘명실상부’한 한의사라야 한다. 질병과 건강에 대한 한의학적 인식체계의 장점과 성과에 대해 한의학 용어를 구사하며 친근하게 깨우쳐 주는 한의사! 마치 아스피린이나 타이레놀 먹으면 된다는 말은 일체 하지 않으면서 오로지 질병의 전반적 개요 설명에 집중하는 양의사처럼, 처방이나 한약재는 일체 거론하지 않으면서 한의학적 병증 풀이에 치중하는 한의사! 쉽지 않은 일임에 틀림없지만, 전 한의계를 대표하려면 그만큼 철저하게 고민하고 노력해야 하지 않겠는가?

이름과 실체가 부합한 ‘명실상부’는 언제나 아름답고 바람직하다. 『논어』의 표현을 빌면, 겉과 속이 다르지 않은, 형식과 내용이 잘 어울리는, 진부하지도 야하지도 않은 소위 ‘문질빈빈(文質彬彬)’한 ‘군자(君子)’의 모습이기 때문이리라! 매스미디어에서도 명실상부한 한의사가 군자의 위용을 발휘해주길 기대하고 또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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