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혜정 칼럼] 껍데기와 알맹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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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혜정 칼럼] 껍데기와 알맹이
  • 승인 2008.10.06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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麻黃을 에페드린이라는 입장에서 쓰는 醫者와 스테로이드를 寒水의 작용이라고 생각하고 약을 쓰는 醫者 중 누가 더 한의사적인 것일까.
한의계에 넘쳐나는 논문들에는 전자의 방법이 비일비재하다. 어떤 경혈이 대뇌활성에 미치는 효과, 어떠한 탕약이 어떤 질환(양방병명)에 미치는 효과, 어떤 약물의 약침이 자율신경에 미치는 효과 등등 하나같이 한약과 경혈이라는 껍데기를 쓴 조악한 논거와 끼워맞추기 식인 경우가 비일비재하며, 결국 이러한 논문은 한의사도 양의사도 제약회사도 학계도 인용할 수도 인용할 가치도 없는 논문인 경우가 많다.

왜냐하면 일관된 논리적 툴에서 벗어나 있기 때문이고 그것이 응용의 갈피를 잡지 못하게 하는 부분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이들 논문은 “과학의 흉내”를 낸 것이지 과학이라 할 수가 없다. 그리고 이것이 결국 한의계 자체적으로 SCI급 저널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금원사대가나 사상의학의 이제마, 사암도인의 생리 병리와 치료방법에 대한 이해와 새로운 관점의 제시방법을 보면
1. 동양과학의 논리를 인정한다.
2. 그 논리에 근거한 기존의학을 탐구하고 임상에 적용한다.
3. 그 논리체계 안에서 솔루션이 나오지 않을 경우 그 논리체계의 기저 논리를 다시 살피고 새로운 논리체계를 기저논리에 부합되게 건설한 뒤 논증을 펼친다 라는 매우 논리적인 방법을 사용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들의 논거를 뒷받침하는 기초학문, 즉 동양과학이 이미 세계적 인정을 받지 못하는 현실에서 그 논거에 기초한 임상 결과물 또한 인정받지 못하는 건 당연한 일이며 더불어 순수 한의학적인 논문이 한의학의 기저논리인 동양과학의 논리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인용될 수 없음은 자명한 일이다.

한의학에서 가장 인용이 많이 되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어떤 질환도 아니고 약초도 아니고 혈자리도 아니고. 바로 陰陽 五行 五運 六氣 三陰三陽이다. 이 논거가 인정받으면 이 논거를 근거로 한 응용논문도 더불어 인정의 여지가 남고 응용의 실마리가 될 수 있다.
그러한 점에서 90년대 과학철학이라는 잡지에 실린 서울대학교 소광섭 교수의 “음양오행의 수리 물리학적 모형”은 대단히 가치 있고, 그 비선형계를 설명하는 단초가 되어 해양 생물 제어 기상 등의 비선형계 분야에서 응용 가능한 모델을 제시했으며 나아가 8행 모델의 상생상극에 대한 응용논문의 근간이 되기도 했다.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이 침과 한약이라는 도구인가. 그 도구를 운용할 수 있게 해주는 동양과학논리인가.

陰陽 五行 五運 六氣 三陰三陽, 穴과 氣味에 대한 것은 의학뿐만 아니라 상수학을 기저로 한 동양지리 동양건축 동양기상학 동양도시공학에 모두 쓰이던 기본 논리였다. 그 모든 응용학문이 실질적으로 과학이라는 카테고리에서 밀려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이 대단한 의학은 그렇게 기저과학이 붕괴될 때까지 끈질기게 생명을 유지했다.
마지막 동양의학자들로서 동양과학의 meme을 간직해온 우리는 치료방법을 어설프게 과학화하기 이전에 그 기본원리부터 과학의 틀에 넣어야 할 의무가 있다. 우리는 침과 한약을 독점할 권리만큼이나, 이 시대와 인류에게 동양과학의 meme을 간직하도록 허가된 또는 의무된 사람들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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