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세영 칼럼] 등화가친(燈火可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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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세영 칼럼] 등화가친(燈火可親)
  • 승인 2008.09.12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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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영청 달 밝은 한가위도 지나고, 이제는 완연한 가을이다. 소위 ‘등화가친’ - 당(唐) 대의 대문호 한유(韓愈)가 아들의 독서를 권장하기 위해 지은 시(詩) 《부독서성남시(符讀書城南詩)》 중의 한 구절인 ‘등화초가친(燈火稍可親)’에서 비롯됨 - 의 계절로 접어든 것이다. 이렇게 가을은 마음의 양식을 추수하기에 최적의 시기인지라, 서점가·출판가는 온라인 오프라인 가리지 않고 이맘때면 늘 가을맞이 기획전 등을 벌여 보다 짭짤한 수입을 올리곤 한다. 단, 한의 서점·출판계는 예외인 듯 싶다. 다른 분야는 풍성하게 거두어들이는 그야말로 ‘용평(容平)’의 계절이건만, 왜 한의계는 유독 ‘숙살(肅殺)’의 기운을 받는 것일까? 이유는 뻔하다. 책을 읽지 않기 때문이다.

사실 책은 삶 그 자체라고 생각한다. 전인들은 그들의 삶에서 겪은 바를 책으로 정리하였을 것이며, 우리들은 선현들이 전해준 책에서 읽은 것을 오늘날 우리들의 삶에서 직접 확인하고 구현하려 하기 때문이다. 내경·상한론·신농본초경 등의 귀중한 서물(書物)들이 없었다면 한의사가 될 수 있었겠는가? 누구든지 사람들과 더불어 지식·경험·지혜·정보 등을 주고받으려면, 아니 세상과 소통하는 삶을 꾸려나가려면, 책에 관심을 갖고, 또 읽어야 한다. 말로도 의사소통이 불가능한 건 아니지만, 보다 정교하고 정확한 의미 전달은 글을 통하지 않으면 안 되는 탓이다. 게다가 요즘이 어떤 사회인가? 이른바 지식정보화 사회 아니던가? 의미대로라면 책 읽는 사회, 책 권하는 사회, 더 나아가 책을 많이 읽지 않으면 안 되는 사회일 듯한데, 현실, 특히 한의계의 현실은 영 그와 반대로 가는 느낌이다.

지금 당장 한의학 서적을 주로 펴내는 출판사의 이름을 상기해 보라! 대략 몇 군데나 생각나는가? 모르긴 해도 대여섯 군데 이상 떠올리기 힘들 것이다. 그나마 이제껏 꿋꿋하게 버텨 온 출판사 한 곳은 얼마 전 파산하였다는 소식이 들리고, 또 한 곳은 더 이상 책을 찍지 않는다는 말이 나올 지경이니……. 물론 동의보감·의학입문 등 고전 원서만 읽고서도 부족함이 없다고 느낄 수 있지만, 새로 나온 책이라고 해서 모두 양서는 아니겠지만, 그런 저런 상황을 감안하더라도 한의학 전공자들이 책 읽기를 등한시한다는 인상을 지우기란 쉽지 않다.

전공서적, 교양서적 불문하고 사람들이 읽으려는, 또 소장하려는 좋은 책은 흔히 두 가지로 구분된다. 정확하고 풍부한 지식과 정보를 담아 활용 가치가 높은 책과 스스로의 삶을 진지하게 돌이켜보게 하는 책! 전자가 앎·지식·전공 관련 위주라면, 후자는 깨달음·지혜·교양관련 위주일 텐데, 지금 우리에게 더욱 절실한 관심이 요구되는 쪽은 전자라고 여겨진다. 새삼스레 교양을 찾지 않더라도 유불선(儒佛仙)의 사상이 고스란히 녹아든 한의학을 공부한 덕택에 ‘이도요병(以道療病)’·‘허심합도(虛心合道)’ 등의 지혜는 벌써부터 깨닫지 않았는가? 새로 나온 한의서들을 적극 구매하여 한의 서점·출판계가 번창한다면, 이 또한 한의학의 외연(外延)을 넓히는, 시쳇말로 한의학 관련 파이를 키우는 일이지 않겠는가?

송(宋) 대의 대철(大哲) 주자(朱子)께서 말씀하셨다던가?
“爲學之要는 莫先於窮理하고, 窮理之要는 必在於讀書라!”
굳이 우리말로 해석하지 않고 없는 멋 부리며 토만 달더라도 무슨 뜻인지 다 알 것이다. 한의학 관련 신간 서적들에 더욱 관심을 갖고, 이왕이면 적극 구매하며, 저자에게는 아낌없는 질정과 격려를 보내도록 하자!
책을 읽는 것이야말로 학문의 긴요한 방법이고, 세상과 소통하는 길이며, 삶을 꾸려나가는 일이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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