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비평] 생물과 무생물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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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비평] 생물과 무생물 사이
  • 승인 2008.07.25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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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은 조작할 수 없다는 담백한 고백

협상을 다시 하라며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그토록 많은 촛불을 켜고서 시위를 벌였건만, 끝내 미국산 쇠고기는 국내에서 시판되기에 이르렀습니다. 아직도 국민들 대다수는 재협상을 꾸준히 요구하지만, 한 번 통과된 것을 뒤집기는 여러모로 어려울 듯 보입니다.
“설마 미친 소가 내 식탁에 오르기야 하겠어?”라며 방관자적 입장을 취하다가도, ‘재수 없으면 접시 물에 코 빠뜨리고서도 죽는 수가 있다’는 말을 떠올리면, 기실 여간 찜찜한 게 아닙니다.

어쨌든 매스컴에서는 광우병과 연관된 각종 내용들이 몇 달간 연일 계속되었는데, 저는 그 시간에 차라리 이 ‘생물과 무생물 사이’라는 책을 알리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30개월령 어쩌고저쩌고 프리온 단백질 이러쿵저러쿵 등 단편적인 지식 소개보다는, 총체적인 생명관에 대한 경각이 우선이지 않겠어요?

이 책의 저자 후쿠오카 신이치는 분자생물학을 전공하는 의사입니다. 데카르트가 생각했던 기계적 생명관의 궁극적인 모습 마냥, 허구한 날 실험실에 처박혀 인체라는 분자기계를 이리 쪼개고 저리 붙이며 극미세의 유전자 실험을 일삼는 최첨단 서양의학자인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생명체는 기계가 아니다”라고 주장합니다. 곧 생명이란 생명체의 구성 요소가 모여 생긴 구성물이 아니라 각 요소의 역동적인 흐름으로 유지되는 효과라는 관점이지요. 어떻게, 이 기회를 빌어 좀 거만을 떨어 볼까요? 시간을 고려하지 않은 공간만의 세분화로는 인체의 신비를 절대 밝힐 수 없음을 너희들은 이제야 깨달았느냐? 우리들은 한의학을 전공한 덕택에 ‘인신소우주(人身小宇宙)’, 즉 인체는 시공간의 합일체임을 이미 알고 있었다면서…….

제목에서 암시하듯, 글은 바이러스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됩니다. 물질처럼 일체의 대사가 없으면서도 물질과 달리 스스로 증식하는, 이른바 자기복제능력을 지닌 바이러스! 생명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근래의 생명과학이 도달한 답 중 하나가 자기복제시스템인데도 불구하고, 이 바이러스란 존재로 인해 ‘생명은 스스로를 복제하는 것’이라는 정의가 부적절할 수밖에 없음을 고민하면서 서두를 펼치는 것입니다.

이후부터는 저자의 화려하고 섬세한 글 솜씨에 탄성을 발하며 그저 눈만 맡기면 됩니다.
생명의 본질에 대한 질문에 답을 얻고자 20세기의 기념비적인 업적들과 그 인물들 - DNA는 이중나선 구조임을 밝힌 왓슨과 크릭, 생명의 형질을 변환하는 유전자는 단백질이 아니라 DNA임을 밝힌 에이버리, 생명현상까지도 결국 물리학이나 화학으로 설명 가능하다는 슈뢰딩거, 생명이란 대사의 계속적인 변화이며 그 변화야말로 생명의 진정한 모습이라는 쇤하이머 등등 - 에 대한 이야기가 흥미진진하게 펼쳐지기 때문입니다.

저자가 보여주는 생명과학의 숨 가쁜 진화사를 다 거치고 종착역에 이르면, 밀려드는 감동을 주체하기 힘듭니다. 녹아웃 마우스(어떤 특정 유전자가 작용하지 않도록 한 실험용 쥐)를 이용한 실험에서 예상되는 결과를 얻지 못한 사실에 낙담할 게 아니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사실에 놀라워해야 한다는, 생명의 역동성 안에 존재하는 동적 평형이 갖는 유연한 적응력과 자연스러운 복원력에 감탄해야 한다는, 결국 생명을 기계적으로 조작할 수는 없다는 솔직 담백한 고백! 이토록 폐부를 찌르는 깊은 감명을 쉽게 받을 수 있을까요? 〈값 1만2천원〉

안세영(경희대 한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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