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최승훈 WHO WPRO 전통의학 고문 퇴임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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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최승훈 WHO WPRO 전통의학 고문 퇴임인터뷰
  • 승인 2008.07.18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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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혈부위, 용어 표준화 작업 주도에 보람느껴”
“한의학 세계화에 앞서 확고한 국내기반구축 선행돼야”

“여러 전통의학 전문가들과 함께 전통의학의 표준화 초석을 다질 수 있었기에 한의사로서 너무나 고마운 기회였다. 아낌없는 지원을 해 준 한국의 한의사들과 한국 정부에도 진심으로 감사하고, 무엇보다 한국에 돌아오니까 행복하다.”
6년간의 세계보건기구 서태평양지역 사무처(WHO WPRO) 전통의학고문직 임기를 마치고 지난 4일로 경희대 한의대에 복귀한 최승훈 교수(50·병리학교실·사진)는 돌아온 소감을 이렇게 밝혔다.

▶WHO에서 보낸 6년

2003년 필리핀으로 떠날 무렵부터 어느 정도 소임을 다하고 가장 성공적인 때 돌아오고 싶었다는 그는 당초 계획했던 일들을 모두 마무리하고 돌아올 수 있었기에 아쉬움은 남지 않는다고 했다. 최 교수는 “지난 4월 침구경혈부위표준 책자 출판이 결정되면서 사무처에 공식적으로 사임을 표명했다”며 “4년간에 걸쳐 심혈을 기울인 작업이었기 때문에 나로서는 가장 성공적인 임무수행이라고 생각했기에 한국으로 돌아오는 데 적기라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서태평양지역 전통의학 고문직은 1984년 일본의 쯔다니가 맡으면서 처음 생겼고, 이후 중국의 첸켄이 근무한데 이어 한국의 한의사가 맡은 것은 최 교수가 처음이었다.
그는 37개국이 참여하고 있는 WHO WPRO 전통의학의 인프라스트럭처는 보통 4개 그룹으로 나뉘는데, 주로 표준화사업을 중심으로 많이 참여를 한 나라들은 첫 번째 그룹인 한·중·일과 호주·홍콩 등 두 번째 그룹들까지라고 했다.
WHO에서 근무하는 동안 가장 많이 배운 건 참는 법이었다고 말하는 최 교수는 하고 싶은 말을 다 했다가는 자칫 분란을 일으킬 수도 있어 수없이 참으면서 상황을 슬기롭게 대처하는 법을 배울 수 있었다고 기억을 떠올렸다.

그는 “아직 후임자가 결정되지는 않았으나 한국·중국·일본·호주의 전문가들이 보이지 않는 경쟁을 하고 있는 것 같다”면서 “내가 있는 6년간은 전통의학이 보편화되기 위한 기본요건을 갖추기 위해 표준화를 집중적으로 추진하던 때였다면, 후임자는 그것을 더욱 공고히 해나가고 또 자기 나름대로 비전을 가지고 시대에 맞는 사업을 진행해 나가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가시적인 성과들

그는 국제적으로는 중국의 중의학이 가장 널리 알려져 있고, 일본도 침구분야에서 상당히 국제화를 많이 시도하고 있는데 비해 한국의 한의학은 그동안 질적으로나 양적으로 크게 성장했으나 대외적으로 충분히 알리지 못한 점이 있었다면서 그동안 각종 회의나 행사를 주관하면서 한·중·일 삼국은 동격이라는 기본전제하에 삼국간의 협력관계를 유도했으며 이를 통해 한국 한의학의 국제적 위상제고에 기여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뿌듯함을 느낀다고 말했다.

최 교수는 지난해 7월 ‘국제전통의학표준용어집’을 발간한 것과 최근 ‘국제침구경혈부위표준’을 제정·발간한 사실이 가장 감격스러운 일이라고 했다. 표준화는 기존에 다양했던 내용들에 대한 여러나라의 합의를 도출하고 재정리해야 하는 작업이기 때문에 때로는 고통스럽고도 아주 힘든 과정이었지만 무사히 성공적으로 수행된 것 같아 매우 기쁘다는 것이다.

이밖에도 지난해 12월 완성돼 출간을 앞두고 있는 임상진료지침 가이드라인과 곧 각 국 병의원에서 시험단계에 들어갈 ICTM -EA(국제전통의학질병분류)의 알파버전 초안완성, 기타 침과 약에 관한 가이드라인 개발 등을 대표적인 성과물로 꼽았다.
최 교수는 특히 한·중·일을 비롯한 서태평양지역 전문가들과 다양한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그들 사이에 비교적 단단한 연대의식을 갖게 된 부분들로 인해 각 국 간의 전통의학에 대한 이해를 넓히고 전통의학에 대한 수준을 상향시키는 데 많은 도움이 됐다고 언급했다.

▶“한의학의 위기 해법은 있다”

돌아와 보니 해야 할 일들이 많은 것 같다는 최 교수는 한의학이 위기이기는 한데 어떻게 보면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했다. 국민들은 효과가 있으면서 부작용이 없고, 경제적인 부담이 적으면서 사용이 간편한 의료를 기대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는 “양방이 됐든 한방이 됐든 그러한 국민적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면 결국 그 의학은 도태될 수밖에 없다”면서 “지금 그러한 조건에 제대로 부응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최근 한의학이 점점 위기로 빠져들고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렇다고 해서 도저히 돌파구나 해법이 없지는 않다는 최 교수는 탕약을 예로 들면서 “효과가 분명히 있는데 실제적으로 효과가 있느냐 없느냐를 떠나 이제는 객관적 근거를 내놓으라고 얘기하고 있다. 또한 탕제를 계속 고집하다보니 환자들은 비용이 부담되고 복용하는 데 불편하다고 한다. 이런 것을 해결하려면 하루 빨리 질 좋은 과립제로 제형을 변경해 보험에 포함시키도록 한다면 국민들이 기대하는 조건들은 충분히 충족시킬 수 있다”고 강조했다.

대만의 경우 이미 8,90년대에 몇 개의 제약회사들이 질 좋은 과립제를 생산, 공동으로 품질관리를 해 현재 미국과 호주, 동남아의 한약들은 전부 대만의 과립제들이 차지하고 있다면서 이것이 바로 세계화라고 했다.
최 교수는 “세계화를 하려면 우리자신이 세계화를 할 수 있는 내부 컨텐츠가 있어야 한다”며 “그런 것들을 할 수 있는 어떤 채널이나 방법론들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데, 실질적으로 기대에 못 미치고 있는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따라서 세계화를 외치고 대외적인 것을 생각하는 것보다도 우선 한의학이 국내에서 확고한 기반을 구축하는 것이 선행돼야 하고, 그것이 된다면 자연스럽게 세계화는 이뤄지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앞으로의 계획

한의학이 그의 전부라고 표현하는 최 교수는 마닐라에서도 각 국을 어떻게 하면 잘 아우를 수 있을지, 표준화를 실행하는데 어떠한 전략으로 해나갈 지 등 이런 여러 가지 생각들로 밤잠을 못 이루는 때가 많았다고 털어놓았다.

85년도에 대전대 교수가 되고, 88년도에 경희대로 옮긴 이후 지금까지 다섯 번이나 해외에 체류했다는 최 교수는 아마도 앞으로는 해외에 나가지 않을 것이라며 이제 대학에 복귀한 만큼 WHO에서 일하면서 느낀 여러 가지 생각들이나 희망을 대학에서 실현시켜 나가고, 그동안 축적한 국제 전문가 네트워크를 활용해 국내 한의학을 국제화하고 수준을 향상시키는 데 최선을 다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또 WHO에서 근무하면서 매일 일기를 써왔다면서 때가 되면 그곳에서의 단상들을 담은 책을 내고 싶다고 했다.

한편 그동안 가족의 동의나 협조가 없었다면 어떠한 일도 할 수 없었을 것이라며 지금까지 자신을 믿고 따라준 아내와 자녀들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아내 임성혜(50) 씨와의 사이에 8월 미국 예일대 정치학박사과정이 예정된 딸 수온(25) 양과 카이스트에 재학 중인 아들 규화(20) 군을 뒀다.

민족의학신문 강은희 기자 leona01@mj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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