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혜정 칼럼] 근거중심의학의 근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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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혜정 칼럼] 근거중심의학의 근거
  • 승인 2008.06.13 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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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한의학의 과학화” 라는 말을 대체하여 근거중심의학 이라는 말이 자주 쓰이고 있다. 근거중심의학(EBM, Evidence Based Medicine)은 권위가 아닌 근거에 입각하여 치료하고, 그 치료를 DB화하여 체계적으로 관리하면서, 의사의 수행 평가와 대학 교육에도 반영하는 것을 말한다.

의료에 있어서 종전의 과학의 개념은 질병의 ‘실체’를 찾아 그 ‘실체’를 제거하는데 있고 이는 동일한 병명을 가진 환자로부터 동일한 ‘병인’을 제거하면 병으로부터 ‘해방’된다는 기계론적 사고가 내재되어 있었다. 그러나 이는 생체의 유동성을 고려하지 않아 세균성 전염병이 창궐하는 시대가 아니라, 복합적 요인에 의한 만성적인 질환(성인병)이 만연하는 요즘에는 그 한계를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한의학은 임상적 우수성에도 불구하고 이전의 서양의학식 좁은 의미의 과학에서 ‘과학적 실체’의 제시요구에 부응하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근거중심의학은 병에 있어 병인을 “가시적으로 찾아야 한다”거나 치료에 있어서 “해부학적, 생화학적 성분이나 실체”를 강요하지는 않는다. 현대의 과학도 ‘실체’를 찾기보다는 ‘통계에서 계통성을 찾아내는’것으로 이미 그 방향을 바꾸고 있다. 즉, 실체는 알 수 없지만, 재현성 있고 유의미한 수치의 DB가 발생한다면, 그 ‘실체’가 무엇이건 간에 그 병과 그 치료법 사이의 유관함을 인정한다는 것이다. 이는 기존의 환원적 기계적 사고뿐만 아니라, 블랙박스 이론이나 시스템 이론의 상당부분도 포괄하여 수용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이러한 방식은 의료 산업화와 사회화, 예방의학과 보건정책 등의 경제·사회적 시스템과 결합되기 용이하므로, 궁극적으로는 의료 연구개발(R&D)의 근간으로 작용될 수 있다. 즉, 개별 실험실이나 연구실 단위에서 수집되던 “이론적 실험적 근거” 대신 로컬과 현장에서의 “결과적으로 어떤 방법으로 어떤 사람이 치료 되었는가” 라는 객관적 근거를 더 비중있게 연구하고 이를 다시 임상에 활용하는 방향으로 전환해야할 시점이다.

예를 들어, “골반, 어깨넓이의 비례와 A라는 치료법 사이의 관계”같은 발상은 기계론적 의학에서 의미가 없다. 그러나 개인별 체질(양인이나 음인 등)을 인정하는 한의학에서 양인이 상대적으로 음인보다 상체비율이 더 크다는 점을 임상에 활용하고 있고, 이러한 인과관계가 유의미한 통계치를 보인다면, 그 치료법은 그 근거에 따라 운용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근거중심의학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근거’를 마련하는 것이다. 이 근거는 한약을 성분 차원에서 분석하거나, 침구경혈을 해부생리적·전기적으로 연구하는 차원에서 생성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 대상에 적합한 합리성을 갖춘 모델링 작업이 더욱 중요할 수 있다.
모델과 실체(임상)의 연결에 논리적 모순이 없다면 받아들이고, 그 결과를 임상에 활용하면서 통계적 유의미성을 지속적으로 관찰하는 것이 근거 마련에 도움이 된다.

따라서 국민에게 한의학에 대한 확실한 신뢰를 주기 위해서라도 임상 한의사가 의료 통계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하고, 학계는 기계적·환원적 실험에서 벗어나 한의학의 한의학을 위한 한의학에 의한 가장 한의학적인 방법론으로 “효율적인 모델링”을 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는데 앞장서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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