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규 칼럼] 狂牛病 논쟁을 狂憂病적으로 보지 말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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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규 칼럼] 狂牛病 논쟁을 狂憂病적으로 보지 말아야
  • 승인 2008.05.19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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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에게 발병하는 전염성 뇌질환인 광우병(狂牛病)과 관련된 최근의 이슈를 바라보는 시각은 그야말로 천양지차다. 일반 국민들 특히 어른, 중고등학생들이 부정확하고 근거가 없는 비과학적인 괴담수준의 정보를 인터넷과 휴대전화 문자를 통하여 선동하는 세력에 의하여 광우병(狂憂病)적인 사회현상에 휩쓸리고 있다는 의견과, 어떠한 이유에서건 국민 한 사람의 건강에라도 위해요소가 있다면 안전하고 건전한 먹거리를 먹을 권리를 가진 국민으로서 투표권과 관계없이 누구라도 문제를 제기하고 재협상을 촉구할 수 있다는 권리차원의 의견으로 대립하고 있다.

이 대립된 의견에는 다양한 주제가 복합되어 논쟁 또한 복잡하게 전개되고 있다.
국민의 건강권을 넘어 국민의 생명권이 달린 문제와 관련된 대립을 바라보는 한의학계 종사자의 느낌은 남다를 것이다. 10여년 전 김영삼 정부 때 양약사의 한약취급 문제로 촉발된 소위 ‘한약분쟁’ 당시 ‘국한위(국민건강 및 한의학수호위원회)’를 만들어 4년간 투쟁을 하였던 한의사 그리고 명동성당에서 밤을 지새우며 국민건강과 관련된 시민단체의 역할을 절감하였던 대학교수들, 분쟁의 중심에서 7년제(?) 학창시절을 마친 학생들 모두 지금은 광우병사태에 걱정하는 국민들, 학생들, 자녀들의 건강을 걱정하는 현장에 있기 때문이다.

이번 논쟁이 복잡하지만 한의학 전공자의 입장에서는 ‘과학’과 ‘건강’의 두 가지 주제가 논쟁의 핵심으로 보인다.
특히 서양의학이나 서양약학과 상대하여 ‘과학-비과학’이라는 논쟁을 수없이 경험하였기에 ‘과학적이지 않은 괴담수준의 논의’라는 표현을 곱씹어 보지 않을 수 없다. 물론 ‘과학만능주의자’ 혹은 ‘과학불신주의자’가 아님은 당연한 전제이다.

‘과학’ 특히 실험실수준의 과학은 아직까지 거시적 대상인 우주에 대하여 가설수준에서 그 끝을 추론하고 있으며, 미시적으로는 그 대상을 분자단위에서 관찰하여 새로운 사실을 쏟아내지만 인체라는 몸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해석에서는 제한된 조건범위에서만 참으로 활용되고 있다. 수많은 과학적인 논문도 인종에 따라 개인차에 따라 그 해석이 달라질 수 있으며, 부분이 전체를 대신할 수 있는가의 문제도 많은 논의를 필요로 한다.

그런데 한의학의 자연철학에서는 ‘있는 그대로’ 혹은 ‘타고 난 대로’를 중요한 가치로 삼고 있다. 이러한 의학철학에 따르면 소는 예전부터 그래왔듯이 풀을 먹는 초식동물이어야 하며, 우리나라 사람은 우리 풍토에 맞는 음식을 먹어야 된다는 것이다.
적어도 그렇게 하면 우리 몸에 과학으로 예측할 수 없는 갑작스런 이변은 초래되지 않을 것임에 누구라도 동의할 것이다. 과학논문이 가지는 조건, 한계를 생각하면 오랜 경험에서 만들어진 자연철학의 원칙은 여전히 유효하다. 특히 문제가 발생한 지 채 100년도 되지 않은 희귀한 경우에는 말할 것도 없다.

그리고 개인이거나 단체를 막론하고 ‘건강’과 관련하여 확률론적이거나 연구차원의 논의는 무의미한 경우가 많다.
왜냐하면 생명은 오로지 하나이기 때문이다. 병원에서 매우 낮은 확률임에도 불구하고 수술이나 부작용이 있는 치료를 해야 할 경우 환자들로부터 과학적, 윤리적인 입장에서 위험부담을 사전에 충분히 이해할 수 있도록 알려주고 그 위험을 감수하겠다는 ‘동의서(informed consent)’를 받는 이유도 바로 하나뿐인 생명과 연관되기 때문이다. 건강의 논의에서 과학, 통계, 확률은 대통령선거의 사전출구조사의 그것과 전혀 다르다.

광우병에 대한 우려에서 출발된 국민들의 건강권과 생명권을 광우병(狂憂病)적으로 해석하며 계몽주의 방식으로 접근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되는 이유는 바로 자신의 건강과 관련된 더 안전한 먹거리를 요구할 수 있는 국민들 스스로의 선택문제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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