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歷代名醫醫案124] 李유의 醫案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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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歷代名醫醫案124] 李유의 醫案①
  • 승인 2008.05.09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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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유(1417~1468) : 조선의 제7대 왕인 世祖의 이름. 자는 粹之. 醫學을 존중하여 의학의 학습을 권장하였으며, 스스로 醫方을 이해하고 있어서 醫官에게 깊이 의존하지 않고 자신의 병을 스스로 논하기도 하였다.

■ 제목 : 腫氣案

■ 내용 : 思政殿에 나아가 常參을 받고 정사를 보았다. 2品 이상이 入侍하여 술자리를 베푸니, 右參贊 成奉祖, 判中樞院事 沈澮, 知中樞院事 崔恒 등이 술을 올리었다. 임금이 말하기를, “姜政丞이 종기가 났는데 술을 마시고자 하므로, 내가 이를 듣고 명하여 약간 완화시킨 十宣散을 먹으라고 하였더니, 먹은 뒤에 조금 나아가는 것 같아서 기쁘다. 이 藥은 效力이 많으니, 여러 宰樞들도 마땅히 알아 두어야 한다.” 하니, 모두 말하기를, “그러합니다.” 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처음에 종기가 생겼을 때는 매우 좋지 못한 것이다. 姜정승은 이미 化膿한 뒤에 약을 먹었다. 사람이 病과 더불어 서로 勝負를 삼아서 사람이 이기면 좋고 병이 이기면 좋지 않은데, 지금 姜정승이 이기었으니, 매우 기뻐할 만하다.” 하였다.

■ 설명 : 姜政丞은 姜孟卿을 말한다. 姜孟卿(1410~1461)은 이 시기에 영의정으로 있었으며 腫氣로 고통을 받고 있었다. 세조는 이에 十宣散을 먹을 것을 권하였고, 姜孟卿이 이를 따라서 좋아진 것을 이야기 하고 있다. 세조는 1463년(세조 9년)에 친히 『醫藥論』이라는 글을 지어 의사들에게 경종을 울리기도 하였다.

■ 변증분석 : 癰疽의 증상에 좋지 못한 예후를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東醫寶鑑』에서는 癰疽의 五惡證으로서 眼白睛黑而目緊小, 不能飮食納藥而嘔食不知味, 腹痛渴甚, 肩背不便四肢沈重, 聲嘶色脫脣鼻靑黑面目四肢浮腫을 꼽고 있다. 강정승이 이 증상들 가운데 몇 개의 증상을 가지고 있었기에 처음 종기가 생겼을 때 매우 좋지 못하다고 말한 것이다. 癰疽의 禁忌로 “손님을 기다려 술과 고기로 연회를 여는 것(待賓客酒肉宴會)”이 포함되어 있기에 술을 마시지 말라고 권하고 있는 것이다.

■ 치료분석 : 十宣散은 일체의 癰疽瘡癤을 치료하는 처방으로서 癰疽瘡癤이 형성된 후에는 빨리 곪기고 아직 형성되지 않았으면 빨리 흩뜨려 곱이 저절로 나오고 惡肉이 저절로 제거되게 하여 통증을 멈추게 하고 排膿生肌하는 약이다. 人蔘, 黃芪, 當歸, 厚朴, 桔梗, 肉桂, 川芎, 防風, 白芷, 甘草 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를 가루내어 매번 三錢을 溫酒에 타서 먹이는데 술을 마시지 않는 사람은 木香湯에 타서 먹인다. 十宣散은 內托시키는 대표적인 처방으로서 內托은 『東醫寶鑑』에서 “積毒이 藏府에 있으면 마땅히 먼저 胃를 도와 氣를 길러 根本을 堅固하게 하고 行經活血藥으로 보좌하고 經絡과 時令을 참고하여 毒氣로 하여금 外發하도록 하여 施治를 빨리 하면 안에서부터 사그라지게 할 수 있으니, 이것이 內托의 의미이다”라고 정의하고 있다. 강정승은 化膿된 후이므로 氣血이 大虛하므로 毒이 陷하여 托裏之法을 하루라도 빨리 써야 할 시점인 것이다. 이에 十宣散을 쓴 것이다.

金南一
경희대 한의대 醫史學敎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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