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학, 패러다임, 그리고 21세기의 고민(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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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학, 패러다임, 그리고 21세기의 고민(7)
  • 승인 2008.04.18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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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수

박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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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마음의 전우(하) ■

지난 회의 괘는 ‘지수사(地水師)괘’였습니다. 땅속에 물이 있는 형국이니 물은 자꾸만 아래로 아래로 흘러내리는 성질이 있습니다. 그래서 수괘(水卦) 가운데 효인 양효(陽爻)가 맨 아래로 내려가게 되면 곧 그림과 같은 ‘지뢰복(地雷復)괘’가 되며 이는 ‘돌아옴, 회복됨’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언제 돌아오는가? 역경에서는 7일이 되면 돌아온다고 하였습니다. 곧 ‘칠일래복(七日來復)’입니다. 우리가 쓰는 달력도 7일이 지나면 다시 월요일이 시작됩니다.

상한론(傷寒論)에서도 ‘태양병에 두통 등이 칠일 이상 되면 스스로 낳게 되는 경우가 있으니 이것은 사기가 그 경락을 옮겨 다님이 다 되었기 때문이리라(太陽病 頭痛 至七日以上 自愈者 以行其經盡故也)’라는 조문에서처럼 7일 만에 회복되는 이치가 있음을 밝힌 바 있습니다.
이러하듯 돌아오는 것은 형통하다고 하였습니다(復은 亨하니). 언제까지 마냥 아래로 내려가거나 앞으로만 나가거나, 아니면 위로 올라만 갈 수도 없을 것입니다. 물론 계속되는 후퇴도 언젠가는 회복됨이 있다는 뜻도 될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돌아오는 데 있어서 어떻게 해야 허물이 없을 것인가? 여기에 다시 덧붙이는 말을 달아 놓았습니다. 곧 출입함에 있어 병(탈)이 없어야 하고 친구가 와야 허물이 없다는 것입니다.
‘병’을 의미하는 ‘疾’은 때로는 ‘빠르다(예: 疾風)’라는 뜻으로도 쓰입니다. 회복함에 있어서 너무 서두르지 말라는 뜻으로도 해석될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사람은 몸이 아프거나 병이 들면 우선적으로 빨리 나아지는 것을 바라게 됩니다.

그러나 질병으로부터 회복되는 것이 때로는 ‘시간’을 필요로 합니다. 의사의 치료는 그 시간을 ‘단축’하는 데 의미를 가지는 것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축구를 하다가, 혹은 발을 헛디뎌 넘어져서 발목을 삐게 되면(이른바 捻挫) 발목에 부종(浮腫)이 있는 경우 2주에서 길게는 8주 정도의 회복기간이 필요합니다.
양방 정형외과에서는 안정이 필요한 경우 깁스(gips)붕대로 발목을 고정시키기도 합니다. 한의학에서는 침치료와 한약처방으로 회복기간을 단축하게 됩니다. 군병원에서는 때에 따라 양방정형외과에서 깁스를 받은 채로 간혹 한의과에 와서 깁스를 풀고 침을 맞고 다시 깁스를 하고 돌아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예전에(96년~00년 사이) 제가 홍천지역의 군병원(철정병원)에서 근무할 때 같은 병원에서 근무했던 정형외과 군의관과 친하게 지냈었습니다. 그 선생님이 응급환자 후송을 맡아서 서울로 가던 중 빗길이라 미끄러워서 그만 사고가 난 적이 있습니다.
앰뷸런스 앞이 찌그러지고 그 군의관의 발목도 비틀어져서 마치 삔 것처럼 다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한동안 걸어다니는 데 많이 불편해 했었습니다. 물리치료도 받고 하면서 나에게 와서 침도 몇 번 맞았습니다. 어디에 침을 놓는 것인지 궁금해 하기도 하였었습니다.

저는 군대에서 체침법(體針法-아시혈위주의)을 사용했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많은 군의관들이 ‘침술’에 대해서 궁금해 했고 때로는 배우기를 원했던 것 같습니다.
마취과 군의관도 한의과 외래에 와서 침놓는 장면과 구체적인 침자리가 어디인지를 보고 가기도 하였습니다.
물론 저도 양방의사들의 여러 가지 의료행위, 특히 수술실에 들어가서 충수염수술에 참가해 보기도 하고, 정형외과에서의 골접합수술(정말로 뼈를 들어 올려서 나사 같은 것으로 이어주기도 하는)을 옆에서 도와주면서 보기도 하고, 때로는 마취과군의관이 담당하는 인튜베이션(전신마취상태의 환자에게 산소를 인위적으로 제공하기 위하여 튜브-고무관을 입을 통해 기관으로 삽입하는 것)도 시도해 보기도 하는 등 군병원이 아니면 한의사로서 경험하기 힘든 여러 가지 의료행위들을 가까이서 지켜보거나 직접 시행해보기도 하였습니다.

어찌 보면 ‘이권의 투쟁’이 없는 군대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순수한 마음’들의 만남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한 ‘순수함’은 일반 사회에서의 ‘한의학과 의학의 갈등’조차 어느새 녹여버리는 것 이었습니다.
지금은 다들 제대해서, 각자의 영역에서 ‘한의학’과 ‘양의학’의 충돌을 느끼고 있기는 할 것입니다만. 이러듯 ‘국군철정병원’에서 보냈던 4년간의 시절에 대한 아련한 향수가 남아 있던 저였기에 올해 2월의 환자후송을 마치고 복귀하던 헬기의 추락사고로 인한 철정병원의 군의관, 간호장교, 의무병, 조종사, 승무원의 사망소식에 마음이 아파오고 숙연해 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다시 한번 이 자리를 빌려 고인들(고 정재훈, 선효선, 황갑주, 신기용, 최낙경, 이세인, 김범진 님)의 명복을 기원합니다. 그 분들은 비록 같은 시기에 근무하지는 않았지만 같은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던 ‘내 마음의 전우’이셨습니다. <격주연재>

朴完洙(경원대 한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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