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학, 패러다임, 그리고 21세기의 고민(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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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학, 패러다임, 그리고 21세기의 고민(5)
  • 승인 2008.03.21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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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수

박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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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마음의 전우(상) ■

지난 회의 괘는 중화리(重火離)였습니다. 불이 거듭된 것이었으니 타오르는 불도 언젠가는 꺼지게 마련이고, 대개의 불은 위에서부터 꺼지게 됩니다. 불이 타고 나면 재가 되어 흙(地)이 되니 곧 상괘(上卦)인 이괘(離卦)가 지괘(地卦)로 변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지화명이(地火明夷)가 됩니다. ‘明夷’라는 것은 ‘밝은 것(明)이 다쳤다(夷: 상할 이)’는 의미로 알려져 있습니다. 즉 밝음이 상하는 때를 당하더라도 어려움(艱)에 흔들리지 않고 바름(貞)을 지킨다면 이로울 것(利)이라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을 것입니다.

괘의 모양 자체적으로 보면 땅 (地卦) 밑에 불(離卦)이 감추어져 있어서 세상이 아직 어두운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래서 명이괘를 ‘아직은 어둠의 세상(先天時代)’, 그러나 곧 ‘밝음의 세상(後天時代)’이 다가오고 있음을 의미하는 괘로도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 밝음의 세상을 기다리기에 바름을 잃지 말고 어려운 때를 참아 나갈 것을 암시하는 내용이 나온다고 생각됩니다.

누구에게나 어려움을 겪는 시기는 오기 마련입니다. 그럴 때일수록 흔들리지 말 것을, 바름에서 벗어나지 말 것을 당부하는 선현의 가르침이 아닐까 합니다.
학문에는 스승이 있고 문중이 있기 마련입니다. 제게 주역을 가르쳐주신 스승님은 대산(大山) 김석진(金碩鎭) 선생님이십니다. 그리고 한국의 전통무예 십팔기(十八技)를 가르쳐주신 스승님은 해범(海帆) 김광석(金光錫) 선생님이십니다.

저는 이러한 학문을 통하여 기식공부(氣息工夫: 氣功), 내공(內功), 정공(靜功), 동공(動功), 도인(導引) 등을 수련해 올 수 있었습니다. 즉 주역공부를 통하여 정공(靜功)을 수련하고, 십팔기를 통하여 동공(動功)과 도인(導引)을 수련해 나갈 수 있었습니다.
한편으로는 그러한 수양(修養)과 연기(練氣)를 통하여 ‘이도료병(以道療病)’과 ‘허심합도(虛心合道)’의 의미를 헤아려 보기도 하였습니다. 이러한 수련들은 어찌 보면 인간이 겪는 ‘고통’의 치유책을 ‘내안’에서 찾아보고자 하는 노력의 일환이기도 한 것입니다.

한의학에 있어서 ‘자아(自我)’의 존재성은 ‘도(道)’와 겹쳐져서 제시되는 경우가 많다고 생각됩니다. 즉 구체적으로 ‘자아’를 부각시키기 보다는 ‘도’라는 일반적인 ‘존재성’의 보편 논리를 설정하고, 그 설정된 ‘존재성’에 합치되는 것을 ‘자아의 완성’으로 방향지운 것이 아닐까 합니다. ‘천인합일(天人合一)론’이나 ‘천인상응(天人相應)론’, ‘천지인(天地人)삼재(三才)론’ 등이 바로 인간의 본질적 존재성을 자연의 존질성과 합치시키는 대표적인 사상입니다.

인간과 자연을 궁극적 ‘동일체’라고 보는 관점은 16세기 유럽의 르네상스 사상으로부터 오늘날 서구의 중심사상으로 자리 잡고 있는 ‘인간에 의한 실존’이라는 세계관과는 사뭇 다른 것입니다만 그렇다고 해서 르네상스 이전 중세유럽을 대표하고 있던 ‘신의 섭리에 의한 우주론’과 같은 것이라고는 할 수 없을 것입니다.

동양의학의 ‘천인합일’이나 ‘천인상응’에 나오는 ‘천(天)’ 즉 ‘하늘’은 아직까지도 우리들의 생활 속에서 ‘하늘의 뜻’이란 의미로 살아 있습니다. ‘하늘의 뜻에 거슬리지 말고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 동양의 전통학문, 특히 동양의학·한의학의 바탕에 면면히 흘러내려오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하늘’은 중세유럽, 즉 ‘신본주의(神本主義)’에서의 ‘하늘’과 똑같은 것은 아니라는 것은 여러분들도 다 아시리라 믿습니다. 어찌보면 ‘종교적’이라기보다는 ‘삶의 기본철학’이라는 개념에 더 가까운 ‘하늘의 뜻에 따른다’는 생각은 한의학에 있어서 양생(養生)과 건강유지에 있어서 중요한 골격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러한 관점에서 인체의 생리현상을 관찰하고 질병을 해석해 나가기 때문에 당연히 현대 서양의학의 질병인식체계와 다른 형태를 보이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의해서 보아야 할 것은 서로 다른 ‘패러다임(paradigm)’은 이미 ‘사물과 현상’을 인식하는 시점에서부터 다른 ‘관(觀; viewpoint)’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즉 노란 안경을 끼면 세상이 노랗게 보이는 것과 적외선투시안경을 끼면 맨눈으로 보는 것과는 다른 것을 관찰할 수 있는 등의 ‘관찰자의 성향 혹은 관찰방법’에 따라 같지 않은 ‘관찰결과’가 나올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서로 다른 ‘관찰결과’를 바탕으로 문제를 인식하고 그에 대한 ‘해법’을 제시하기 때문에 서로 다른 패러다임은 서로 다른 문제해결책을 제시한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패러다임을 구체화하는 ‘실현자들’은 어떻게 탄생되는지에 대해서 다음의 글에서 고민해보도록 하겠습니다. <격주연재>

朴完洙(경원대 한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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