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학, 패러다임, 그리고 21세기의 고민(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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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학, 패러다임, 그리고 21세기의 고민(4)
  • 승인 2008.03.07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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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수

박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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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패러다임의 충돌(하) ■

달이 있으면 해가 있고 물이 있으면 불이 있는 것이 음양오행의 기본적인 패러다임이다. 그래서 지난 회에 소개한 중수감(重水坎)괘의 대응괘(對應卦)가 중화리(重火離)괘가 되니 이는 주역 상경(上經)의 맨 마지막에 걸려(離) 있는 괘(卦)인 것이다.
괘의 순서로 설명하기로는(서괘전:序卦傳) 중수감(重水坎)의 감(坎)은 ‘빠지는 것(陷)’이니 빠지다 보면 어디엔가 붙게 되어 있어서(有所麗) 걸리게 되므로 걸릴 리(離)로 받게 된다. 즉 걸리는 것(離)은 붙는 것(麗)이라 중화리(重火離)가 되는 것이라 하였다.

이 ‘걸림’의 의미로부터 복희(僕羲)는 노끈을 매어(作結繩) 그물(網罟)을 만들었다고 하니 이는 계사전(繫辭傳)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또한 걸려서 엉키다보면(履 錯然) 서로가 실례를 범하게 되니 공경(恭敬)하면 허물이 없게 될 것(无咎)이라 했다.
서로 다른 패러다임은 서로 다른 해석의 ‘대상’을 선택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때로는 그 대상이 겹치는 경우도 있다.

위 사진에 나온 환자는 이라크인으로서 갑자기 발생한 구안와사(口眼蝸斜)때문에 제마병원을 찾았고 결국은 한의과로 와서 침치료를 받게 된 환자였다. 말도 잘 안통해서 발병원인을 정확히 알 수는 없었지만 대략적 추측으로는 피곤한 상태 즉 정기(正氣)가 부실(不實)한 상태에서 정지(情志)가 편한지 못하여(情志傷) 발생한 것으로 판단되었다. 이 환자의 경우는 6주 여가 지나서 감기지 않았던 왼쪽 눈이 감기게 되었으니 다행스러운 경우였다. 구안와사 환자의 약 10% 정도는 완치가 되지 않아서 얼굴의 모습이 약간은 이상한 형태로 남는 것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양의학에서는 이러한 통계수치를 갖고 안면마비(Bells palsy) 환자의 90%는 그냥 두어도 저절로 나아지기 때문에 별다른 치료가 필요치 않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다만 바이러스성(herpes zoster 감염에 의한)인 경우에 대비해서 항바이러스제를 투여해야 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물론 뇌의 일부분의 장애로 유발되는 중추성 안면마비와 안면신경이 지나가는 부분의 종양발생, 나병(leprosy), 외상에 의한 안면신경 절단·손상 등에 의한 마비는 예외적인 상황으로 분류하여 특별한 대처를 요구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안면신경이 분지해서 뻗어 나오는 부위(예풍혈: 翳風穴 부위)에 통증이 있었거나 벌겋게 부어오른 증상과 함께 발생하는 구안와사는 한의학적으로 풍열(風熱)에 의한 실증(實證)으로 판단할 수 있으며 그러한 증세가 없는 경우는 허화(虛火)·혈허(血虛) 등으로 인한 허증(虛證)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양의학에서도 특히 귀뒤(耳後) 부분의 염증 소견과 귀 주위의 통증소견에 대해서 바이러스성 혹은 대상포진성 안면마비로 추정하는 경우가 많으며 이런 경우에는 반드시 항바이러스제제(acyclovir 등의)를 사용해야만 후유증을 최소화 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물론 군 병원에 이런 환자가 오면 양방 이비인후과에서 스테로이드 제제나 항바이러스제제를 투여받으며 한방과에서는 침치료를 병행하는 경우도 있기는 하다.

이와 같이 한의학의 패러다임과 양의학의 패러다임은 많은 차이점을 보이고 있다. 서로 다른 패러다임이 때로는 충돌을 야기할 수도 있지만 늘상 그러한 것은 아니다.
어찌 생각해보면 서로의 발을 밟았을 때 공경하는 마음으로 양해를 구하듯, 조금은 공경하는 마음으로 다른 패러다임을 대하다 보면 허물이 줄어들 수도 있을 것이다.

그것이 곧 거듭된 밝음(重明)으로 써 바름에 붙게 되어(以麗乎正) 이에 온 세상을 화하여 이루게 되는(乃 化成天下) 이치가 아닐까. 충돌을 피하고 경제를 살리자는 이 시대의 소망이 암소를 기르면(畜牝牛) 길하리라(吉)는 중화리괘의 뜻과 닿는 면이 있는 것 같다. <격주연재>

朴完洙(경원대 한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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