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정월대보름
상태바
[문화칼럼] 정월대보름
  • 승인 2008.03.07 13:0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webmaster@http://


가장 큰 보름이라는 뜻의 음력 정월 보름인 ‘대보름’은 설날, 한가위와 함께 대표적인 우리의 명절이다. 도시에서만 살았던 필자는 잘 몰랐는데, 시골에서는 한가위보다도 더 큰 명절이었다고 한다. 대보름날의 각종 풍속은 전체 세시풍속 중 1/4이 넘을 정도로 풍부하고 설 풍속을 합치면 전체의 절반이 넘는다고 하니 예전 대보름의 풍경이 상상이 간다.

아침에 일어나서 제일 먼저 만나는 사람에게 “내 더위 사가라”고 외치던 ‘더위팔기’부터 잣, 호두, 밤, 은행 등을 껍질째 깨물면서 ‘일 년 열두 달 무사태평하고 부스럼, 뾰루지 하나 나지 맙시다.’ 하고 축원을 하던 ‘부럼 깨물기’, ‘쥐불놀이’<사진> 등 예전에 자주 볼 수 있었던 풍속들을 지금은 찾아볼 수가 없다.

70년대 말 초등학생 시절, 봄방학을 앞둔 대보름날이면 많은 친구들이 학교에 부럼을 가져와 깨먹곤 했다. 호두를 걸상 다리로 눌러 깨던 친구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 혼분식 장려로 도시락에 잡곡이 섞여있는지 점심시간마다 검사를 맡던 먹을 것이 부족하던 시절에는 부럼이 오랜만에 먹는 반가운 간식이었지만, 피자, 치킨, 햄버거 등의 간식을 흔하게 먹는 요즘 어린이들에게는 환영을 받지 못하는 것 같다.

예전에는 대보름날 한강변에 많은 사람들이 나와서 쥐불놀이를 즐겼고 때문에 화재사고도 많았었는데 요즘은 그런 뉴스를 보지 못한 것 같다. 2008년 대한민국 대보름의 위상은 달력에서 확인해 볼 수 있다. 필자가 갖고 있는 모든 달력과 다이어리 어디에도 2월 21일에 정월 대보름이란 표시가 없었다. 심지어 민족의학신문과 서울시한의사회 이름의 달력에도 대보름은 없었다. 처갓집에 걸려있던 이사할 때 손 없는 날이 표시되어 있는 달력에만 대보름이 있었다.

대보름 1주전 2월 14일. 제과업체에서 확실하게 띄우고 있는 국적불명의 발렌타인데이에는 전국이 초콜릿으로 들썩였다. 여자가 남자에게 사랑을 고백할 수 있다는 성(聖) 발렌타인 데이가, 직장동료, 친구 등 남자들에게 초콜릿을 주는 날로 변했다. 주위의 동료들에게 가벼운 선물을 하는 게 나쁘지는 않은데, 1주 뒤의 잊혀진 명절 대보름이 눈에 밟혀 마냥 좋을 수는 없었다. 여러 가지 나물과 오곡밥을 먹는 풍습을 기억이나 하고 있는지? 제과점마다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초콜릿과 슈퍼마켓 한 귀퉁이에 초라하게 진열되어 있는 부럼이 전통문화에 대한 우리의 인식을 보여준다.

국보 1호 숭례문이 불타 없어지는 상상도 못할 일이 벌어지는 나라. 문화재로서의 가치와 아픈 역사의 교육적 가치를 갖고 있는 옛 중앙청 건물을 미련 없이 허물어버린 나라. 한옥마을을 제외하고는 전통가옥을 찾아볼 수 없는 빌딩 숲 속의 서울. 우리가 소홀히 여기던 우리의 초가집이 문화상품이 되고, 우리가 하찮게 여기던 전통음식이 웰빙음식으로 각광을 받고 있다. 고(故) 박동진 명창의 “우리 것은 소중한 것이여”란 외침이 귓전에 메아리친다.

김호민(서울 강서구 늘푸른한의원장)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