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학, 패러다임, 그리고 21세기의 고민(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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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학, 패러다임, 그리고 21세기의 고민(3)
  • 승인 2008.02.15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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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수

박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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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패러다임의 충돌(상) ■

갑자기 “꽝”하는 소리가 들렸다. 정신이 번쩍든다. 주위를 둘러보니 잠자고 있던 동료 군의관들이 놀란 표정으로 일어서고 있었다. 이어서 사이렌소리가 울린다. 대피하라는 방송이 쏟아져 나온다. 헬멧과 방탄조끼를 서둘러 입고서는 천막숙소의 가림막을 헤치고 방공호 쪽으로 뛰어갔다. 아마 새벽 5시 정도는 된 것 같다. 이곳은 해가 일찍 뜨는 터라 밖은 벌써 환한 상태였다.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약 3평 내외의 방공호에는 벌써 병사들이 몇 명 와 있었다. 모두들 실제 상황이라는 데에 약간은 긴장한 얼굴들이다. 이곳 이라크에서는 기지 밖에서 안쪽으로 쏘아대는 반군들의 박격포에 대비하는 대피훈련을 평시에도 실시하고 있었다. 이미 몇 차례, 제마병원은 아니지만, 다른 외국군 기지는 박격포 공격을 받은 적이 있었던 것이다. 한 발의 박격포 외에는 별다른 추가적인 폭탄공격은 없는 것 같았다.

나중에 확인된 이야기로는 우리 제마병원으로부터 약 500m 떨어진 곳에 박격포 1발이 떨어졌다는 것이었다. 안도의 한숨과 함께 가슴에 서늘한 기운이 잠시 도는 것 같았다. 만약 그 폭탄이 우리들의 숙소에 떨어졌다면, 하는 생각이 떠올랐던 것이다.
폭탄이 떨어지고, 대피를 하고 이런 것이 모두 실제 상황인 것이다. 책에서나 보고, 영화에서나 보던 상상속의 이야기가 아니라. 잠을 잘 때는 방탄헬멧도 벗고, 방탄조끼도 벗고 잘 수밖에 없다. 그런 상황에서 폭탄이 떨어진다면 거의 무방비상태에서 피습을 당하고 마는 것이다. 아마 이라크의 어린이들과 노약자들, 민간인들도 비슷한 공포를 경험하고 있을 것이다.

이런 공포가 왜 있어야 하는 것인가. 전쟁은 어디에서부터 오는가. 우리가 20세기에 겪었던 주요한 전쟁은 ‘이데올로기의 충돌’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한 충돌은 21세기에 넘어오면서 많이 완화되고 ‘화해’의 분위기로 흐르고 있다.
그러나 21세기 초반에 겪게 되는 이 충돌, 곧 ‘전쟁’은 어디로부터 오는 것인가. 이른바 ‘문명의 충돌’이란 것인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21세기의 충돌은 ‘패러다임의 충돌’로부터 야기되는 것이 아닐까.

20세기말부터 시작되어 21세기 초반에 다시 커진 이라크 전쟁을 어떤 사람들은 ‘종교 간의 충돌’이라고 설명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단순히 ‘종교의 충돌’이라고 단정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세상에는 다양한 종교가 있으며 그러한 다른 종교들이 있다고 해서 꼭 충돌이나 전쟁이 일어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패러다임의 충돌’이라는 개념이 떠오르는 것이다.

1960년 초에 토마스 쿤(Thomas S. Kuhn)은 이와 같이 ‘이데올로기’와는 다른 또 다른 개념의 역사적 동인(動因; 움직임과 변화의 원인)으로 ‘패러다임(paradigm)’이라는 의제를 설정하여 그 때까지 이루어져 왔던 ‘과학혁명(scientific revolution)’에 대하여 분석하고 설명하는 논리전개를 ‘과학혁명의 구조(The structure of scientific revolution)’라는 책에서 처음으로 갈파하였다.

이 발표이후 그에 대한 격렬한 논쟁과 비판이 과학계뿐만 아니라 철학계에서도 일어났으며, 논란의 소용돌이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자연스럽게 ‘사회변화’의 화두로 ‘새로운 패러다임’이라는 논조가 심심치 않게 등장하고 있는 것이 오늘날의 현실이다. 토마스 쿤은 이미 20세기의 중반에, 다가올 21세기의 소용돌이와 충돌에 대한 예견으로 ‘패러다임’의 의미를 직감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비록 그가 언급한 분야는 ‘과학’이었지만, ‘혁명’이라는 단어로서 ‘충돌’의 개념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 바로 ‘패러다임’이기 때문이다.

지난 번 글의 수지비(水地比)괘는 중지곤(重地坤)괘 6개의 효(爻) 중 5번째의 효가 동(動)한 것이다. 그러므로 구오(九五)효가 되는 데 상괘(上卦) 구오효의 짝이 되는 것이 바로 하괘(下卦) 육이(六二)효이다. 즉 구오효에 응(應)하여 육이효가 동(動)해서 음효(陰爻)가 양효(陽爻)로 바뀌는 것으로 육이(六二)의 구이(九二)됨이다. 이는 곧 중수감(重水坎)이니 ‘겹치는 감(習坎)은 믿음이 있고(有孚), 오로지 마음이 형통해야 하며(維心亨), 행하되 본받음(숭상됨)이 있어야 하고(行有尙), 험한 것을 하더라도 믿음을 잃어서는 안된다(行險而不失其信)’고 하였다. 충돌의 와중에라도 믿음을 잃지 않고 떳떳한 행동을 해야 한다는 것이니 쉬운 일은 아닌 것이 ‘전쟁의 윤리’라 생각된다. <격주연재>

朴完洙(경원대 한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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