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의 임오년 무슨 일이 있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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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의 임오년 무슨 일이 있었나
  • 승인 2003.03.18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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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세자 죽고 임오군란 터져

새해 2002년은 임오년. 크고 작은 일들이 올해는 특별히 많이 예정돼 있다. 국내적으로는 대선과 자치단체장 선거가 있고 월드컵 본선과 아시안게임도 열린다. 올해는 얼마나 많은 사건·사고들이 이어지고 유명인사들이 사라져갈지 두고 볼 일이다.

과거 역사 속의 임오년에는 어떤 일이 있었을까? 500년전까지만 거슬러 가보기로 하자.

우선 바로 전 임오년인 1942년을 보자.

이해는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시기였으며, 그 시기에 한국 또한 많은 상처를 입은 해였다.

42년 1월 일본은 대동아전쟁 완수대회를 열고 전쟁을 승리로 이끌기 위해 광분했다. 국방헌납금 명목으로 한반도에서 430만원이라는 거금을 강제모금하는 등 전쟁막바지에 부족한 물자조달을 위해 놋그릇과 수저, 비녀, 반지 등을 공출하거나 강탈해갔다.

일제의 감시와 탄압이 극을 치닫던 기간으로 한글운동을 탄압한 ‘조선어학회사건’도 이해에 있었다. 학술단체를 가장한 독립운동을 했다는 죄명으로 16명이 기소당했으며 결국 이윤재 등은 복역 중에 사망했고 최현배 이희승 정인승 등은 해방후 모두 풀려났다.

올해 환갑을 맞는 임오 말띠생의 예로서 이건희 삼성 회장과 유상부 포철 회장, 한나라당 이부영 의원 등이 있고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도 말띠생이다.
한의사협회의 회원명부(2000년판)에 등재된 1942년생 한의사는 모두 85명으로 나타나 있다.

외국의 유명인사로는 제일 먼저 떠오르는 사람이 영국의 세계적 이론물리학자인 스티븐 호킹. 그는 영국에서 미시의 세계를 지배하는 양자역학과 거시의 세계인 상대성이론을 하나로 통합한 ‘양자중력론’을 주창했다.

다시 60년을 더 거슬러 올라가면 조선말기의 혼돈기에 이른다. 세계의 열강들이 저마다 조선을 삼키기 위해 광분하는 시기다. 1882년 4월 미국은 제물포에서 강제로 한·미통상조약을 조인케 한다. 잇달아 영국 제독이 군함을 이끌고 제물포로 들어오고 이에 질세라 나흘 뒤 독일 제독이, 다시 닷새 뒤에는 프랑스 제독이 제물포에 들어와 통상교섭을 벌인다. 5월에는 청국 군함이 월미도에 진을 치고 청나라 주재 러시아 공사는 수교를 요청한다. 결국 조·영수호조약, 조·독수호조약이 강제로 조인된다.

6월 9일 일본식 군제(軍制) 도입과 부패한 민씨일파의 학정에 반항해 임오군란이 발생한다. 군인들은 일본교관과 순사 등 13명을 처단하고 일본 공사관을 포위했다. 이날 민비는 변복해 충주로 도피했으며 일본공사는 일본으로 도망을 가기에 이른다. 김장손 유춘만 등의 난군은 민겸호의 집을 습격하고 민겸호 이최응 김보현 등을 살해했다. 대원군이 재집권에 나섰으나 조선의 사태에 위험을 느낀 청국과 일본은 재빨리 출병하여 내정에 간섭했다. 특히 청군은 대군을 출동시켜 7월13일 대원군을 납치해 그의 정권은 33일만에 붕괴되고 말았다. 민비는 8월에 환궁했으며 두 지도자는 처형당하고 청일두나라 군대가 서울에 주둔을 시작했다. 이 사건은 훗날 갑신정변의 계기가 됐다. 일본은 손해배상과 사과, 주동자 처벌 등을 요구하며 억지로 조약을 체결했으니 이것이 제물포조약이다. 정부는 일본인 사망자 가족에게 배상하고 박영효 김옥균등을 일본에 보내 사과의 뜻을 전하기도 했다. 원산 부산 인천이 개항됐으며 태극기가 고안되고 독일인 외교고문 묄렌도르프를 초빙했다. 그에게 민겸호의 집을 하사했는데 이 집이 조선 최초의 양옥집이라는 기록이 남아 있다.

이 해에 태어난 사람의 예로서는 민족운동가인 古堂 曺晩植과 일제에 맞서 한의학부흥운동에 앞장 섰던 晴崗 金永勳선생이 있고 외국인으로는 뉴딜정책으로 유명한 미국의 32대 대통령(재임 1933∼1945) 프랭크린 루즈벨트를 먼저 꼽을 수 있다. 그는 최초의 4선 대통령으로 45년 4월 뇌일혈로 사망했다.

‘젊은 예술가의 초상’ ‘율리시즈’를 발표한 영국 소설가이자 시인인 제임스 조이스, 가이거 계수기를 발명한 독일의 물리학자 한스 가이거가 태어나고 진화론, ‘종의 기원’으로 유명한 영국 생물학자 찰스 다윈(1809∼1882)이 사망했다.

이 해의 과학적 사건으로는 세균학의 원조로 불리는 독일의 로버트 코흐(1843∼1910)가 베르린의 한 생리학회에서 결핵균의 발견을 발표했으며 독일의 세포학자인 발트 플레밍은 동물세포에서 유사핵분열 현상을 확인했다. 이때는 국내에서도 의사이자 국어학자인 지석영이 종두법 보급에 한창이던 시절이다.

독일 고고학자로 미케네 문명과 트로이 문명의 발견자로 일컬어지는 하인리히 슐리만, ‘멘델의 법칙’을 발견해 ‘유전학의 아버지’로 불리우는 오스트리아 생물학자이자 성직자인 그리거 J.멘델, 그리고 프랑스의 화학자이자 미생물학자로 저온살균법을 고안하고 광견병 백신제조에 성공한 루이스 파스퇴르가 모두 1822년 말띠생이다. 독일 출생의 영국 천문학자로 천왕성을 발견한 프레데릭 허셜은 이 해 사망했다. 브라질이 포르투갈로부터 독립하고 투르크제국으로부터 혹독한 지배를 받던 그리스가 독립을 선언한 것도 바로 이 해다.

1762년에는 영조의 둘째 아들인 사도세자(장헌세자, 1735∼1762)가 뒤주속에 갇혀 8일만에 굶어죽었고 조선 후기 실학자이자 문인인 茶山 丁若鏞(1762~1836)이 태어났다.

프랑스의 사상가이자 소설가인 장 자크 루소가 ‘사회계약론’과 에밀을 발표하고 볼프강 모차르트가 5세의 나이에 음악가로 데뷔한 것도 1762년이다.

1642년 임오년에는 위대한 과학적 업적을 남긴 두 과학자가 하나는 태어나고 하나는 사라져간 해다. 사라진 별은 이탈리아의 천문학자·물리학자·수학자인 갈릴레이 갈릴레오(1564~1642)요, 태어난 이는 영국의 물리학자이자 천문학자인 아이작 뉴턴(1642∼1727)이다. 갈릴레오는 목성의 위성을 잇달아 발견하고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을 지지한다는 죄로 많은 곤욕을 치렀으며 뉴턴은 만유인력의 법칙과 미적분법, 빛의 스펙트럼 등 대발견을 이룬 과학자다.

오진아·나영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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