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북경 여행기(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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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칼럼] 북경 여행기(4)
  • 승인 2007.11.16 1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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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경 여행 3일째. 서태후의 여름 별장으로 유명하여 표지판에 ‘Summer Palace’라고 적혀있는 <이화원> 관광부터 시작했다.
인공 호수라고 믿기 어려울 만큼 넓은 ‘곤명호’에 떠 있던 연꽃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경회루에서 보았던 연꽃과는 많이 다른 느낌이다.
이런 넓은 별장을 짓느라고 투입되었을 인력과 재물을 생각하면서 대단한 사치스러움에 혀를 차기도 하지만, 후손들에게 커다란 관광자원을 물려주었다는 현재의 긍정적인 결과를 바라보면서 역사의 아이러니에 미소를 짓게 된다.

인공적으로 화려하게 만들어 놓은 북경의 여러 관광지를 보면서, 명(命)을 이루려고 할 때 경계해야 할 태심(怠心), 욕심(慾心)인 奪侈懶竊(탈치나절) 중에서 태음인에 치심(侈心)을 배속하신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서태후의 일생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니 선악을 떠나서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다간 여장부라는 생각이 들었다.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서슴지 않고 벌인 잔인무도한 행위들이 결국은 부메랑처럼 자신의 가슴에도 비수를 꽂았지만, 여느 황제도 누리기 힘든 부귀영화를 한 몸에 누린 대단한 여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함께 여행을 하던 여성분들이 모두 부러워할 만큼. 비오는 날에도 편하게 경치를 구경할 수 있게끔 호수 주변에 지붕을 죽 세워놓았고, 눈으로 보기만 하는 음식, 냄새만 맡는 음식, 직접 먹는 음식으로 구분되는 진수성찬을 받았다고 한다.
전투훈련을 하는 군인들 중 맘에 드는 사내와 잠자리를 같이 하고 다음 날 동이 틀 무렵 그 사내의 목을 잘라 깃대에 꽂았다는 이야기에는 소름이 돋았다.

같은 장소에서 계속 끔찍한 살인을 저지르고도 눈 하나 꿈쩍 안 했을 서태후와, 궁녀의 혼령이 두려워 처소를 옮겼다니는 황제와 비교가 되었다. 서태후의 고향이 백두산 근처라는데, 아무래도 태음인은 아니었을 것 같다. 아니면 일말의 죄책감마저 없는 비박탐나인(鄙薄貪懶人)이던지.
황제가 하늘에 제사를 지내던 천단공원을 방문했다. 북경관광을 설명하는 웹페이지에서 여러 차례 봐서 친숙해진 건물 ‘기년전’이 반갑다. 색깔과 방위, 숫자 등 여러 의미가 부여된 아름다운 건물이다. 천단공원은 우리나라의 탑골공원처럼 많은 노인들이 시간을 보내는 곳이다.

중국인이 훔쳐서라도 꼭 가지려하는 세 가지가 ‘건강, 음식, 도박’이라고 한다. 공원에서 마작을 하고 있는 중국인을 많이 볼 수 있었는데, 이런 설명을 듣고 보니 한가롭게 도박을 하고 있는 중국인의 모습이 아름다운 풍경으로 보였다.
청나라의 건륭제는 장수하면서 오랜 기간 제위를 지킨 황제인데, 그의 건강비법은 매일 머리를 빗는 것이라고 한다.
소양인범론에 “매일 머리 빗는 것(日梳)은 소양인에게는 금기이고, 태음인 80세 노인이 머리 빗는 것을 좋아하여 매일 머리빗은 지 40년이 되었다.”는 내용이 있는데, 건륭제도 태음인이었던 것 같다.

김호민
서울 강서구 늘푸른한의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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